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11월이 되면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는 사람들이 있다. 아침에 몸이 무겁고 피로가 잘 풀리지 않으며, 달고 자극적인 음식이 당긴다. 우울감이 찾아오고 집중력도 흐려진다. 단순한 계절 감상이라 여기기 쉽지만, 이는 계절성 정서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로 불리는 의학적 변화다.
해가 짧아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햇빛이 부족해지면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이 감소해 우울감이 생기고, 멜라토닌은 과도하게 증가해 졸리고 무기력해진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는 전체 인구의 약 5%가 SAD를 경험한다고 보고한다. 특히 일조량이 큰 폭으로 줄어드는 가을 말에서 초겨울 사이, 증상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국내 역시 늦가을 이후 병원을 찾는 환자가 꾸준히 증가한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추위가 심해지면 활동량이 감소하고 실내 생활이 늘어난다. 관절을 걱정해 움직임을 줄이거나, 야외 활동을 미루다 보면 생체리듬도 더 쉽게 흐트러진다. 결국 몸과 마음이 동시에 겨울에 갇히는 것이다. 기온과 일조량이 동시에 변하는 11월은 SAD 촉발 요인이 가장 많이 겹치는 시기다.
생활 관리만으로도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핵심은 햇빛과 가벼운 움직임이다. 오전에 30분 정도 바깥을 걸으며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뇌는 빠르게 반응한다. 흐린 날에도 실외 자연광은 실내 조명의 몇 배 이상 밝다. 실내에 오래 머문다면 조명을 밝게 하고 창문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운동은 무리하지 말고, 실내 자전거·가벼운 걷기 등 관절에 부담이 적은 활동을 우선 선택한다.
수면 리듬도 중요하다. 주말이라도 과도하게 늦잠을 자거나 밤에 스크린을 오래 보는 습관은 생체시계를 흔들어 우울감을 키운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거나 코코아·우유처럼 숙면을 돕는 음료를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식습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단 음식을 찾게 되지만, 당분과 가공식품 위주의 식단은 혈당 변화를 키워 기분 기복을 악화시킨다. 오메가3를 포함한 생선, 견과류, 바나나처럼 세로토닌 합성에 관여하는 식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마음의 문제로 오인하기 쉽지만, SAD 역시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우울감이나 의욕 저하가 2주 이상 지속되면 전문 진료를 고려해야 한다. 대표 치료법인 광선 요법은 밝은 조명을 일정 시간 노출하는 방식으로, 신경전달물질 균형을 회복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보고돼 있다.
짧아진 가을만큼 마음의 온도도 함께 떨어지는 시기다. 추위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생활 속에서 조금의 빛과 리듬을 되찾는 것만으로도 계절이 주는 우울감은 충분히 완화된다. 너무 빨리 사라진 가을이 아쉽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위로는 스스로에게 따뜻한 반복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