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21세기악회의 기획연주회 징검다리 프로젝트 II "건반으로 그리는 세대 간의 대화"가 열렸다. 원로예술인 공연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무대는 작곡가와 연주자가 세대를 넘어 피아노를 매개로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주최는 21세기악회, 주관은 현대문화, 후원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다.
공연은 Silent Genesis의 세계초연으로 문을 열었다. 이 곡의 작곡가 이재현은 한국과 유럽 무대에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온 인물로, 이번 작품에서는 선율의 여백과 정서적 변화가 고요하게 공존했다. 이어 등장한 홍승희의 비조가는 전통 민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해, 기억 속 익숙함을 새롭게 불러냈다. 두 작품 모두 서정과 실험의 균형이 인상 깊었다.
세 번째로 소개된 이혜성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초록의 엑센트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의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회화적 이미지를 음악으로 확장하며 색채감과 구조감을 힘 있게 드러냈다. 이어 박영란의 그곳으로가 2 Pianos 8 Hands 편성으로 무대에 올랐다. 한국 현대음악계에서 꾸준히 주목받아 온 작곡가는 공간을 활용한 음향 설계로 넓은 스케일의 음악적 움직임을 구현했다.
휴식 이후에는 임지선의 Fantasia on a Theme of Chopin이 이어졌다. 한국 창작음악을 대표해 다수의 관현악 작업을 진행해 온 작곡가는 쇼팽 선율을 바탕으로 서정적 환상을 섬세하게 펼쳤다. 뒤이어 조성옥의 뱃노래 변주곡이 초연돼 전통 선율의 현대적 확장을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이영자의 엘가 사랑의 인사 주제에 의한 환상변주곡이 연주됐다. 오랜 시간 한국 창작음악을 이끌어 온 원로 작곡가의 음악적 품격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번 무대에는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피아니스트들이 총출동했다. 다양한 콩쿠르 수상 경력과 연주 경험을 지닌 연주자들이 솔로와 듀오, 4핸즈, 8핸즈 등으로 편성을 달리하며 피아노가 가진 폭넓은 사운드를 보여줬다. 곡마다 배치된 연주자 조합이 달라지며, 작곡가의 개성과 작품의 질감이 선명하게 부각됐다.
징검다리라는 제목처럼 공연은 원로, 중견, 차세대 작곡가의 창작 언어가 하나의 무대에서 교차한 시간이었다. 초연 작품은 관객의 호흡 속에서 생동감을 얻었고, 이미 알려진 작품 또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다른 결을 드러냈다. 이날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명지영은 “한 시대의 음악이 다른 시대와 손을 맞잡는 장면을 직접 연주자로서 마주했다. 세대가 바뀌어도 음악의 본질은 이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공연”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연주회를 기획한 21세기악회는 1969년 창립 이후 반세기 넘게 한국 창작음악을 이끌어온 단체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작품 발표를 이어오며 한국 현대음악의 연속성을 지켜왔다. 단체는 앞으로도 세대 간 음악적 교류를 더욱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다음 공연은 21세기악회 제56주년 기념 작품발표회 일상의 숨, 시간의 결이 예정되어 있다. 오는 11월 25일(화)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며, 다양한 창작 레퍼토리를 통해 음악 속 시간성과 일상의 감각을 탐구하는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