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은 미국 음악사의 분기점으로 손꼽힌다.
102년 전, 1924년 2월 12일 뉴욕 에올리언 홀(Aeolian Hall)에서 열린 공연 ‘현대 음악의 실험(An Experiment in Modern Music)’에서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가 초연됐기 때문이다.
지휘자 겸 밴드리더 폴 화이트먼이 기획한 이 무대에서 25세의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은 신작의 피아노 독주를 맡아, 재즈 밴드 편성과 관현악적 색채를 결합한 새로운 협주곡 어법을 대중 앞에 내놓았다.
거슈윈은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작곡가는 아니었다. 뉴욕 브루클린의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며 정규 음악원 교육보다 현장 경험으로 성장했고, 10대에는 ‘틴 팬 앨리(Tin Pan Alley)’에서 악보 판매용 피아노를 치며 대중음악의 문법을 몸에 익혔다.
이후 브로드웨이·대중가요에서 성공을 거둔 그는 콘서트 음악으로도 영역을 넓히려 했고, ‘랩소디 인 블루’는 그 시도의 결정판이 됐다.
작품의 탄생 과정은 급박한 '속도전’으로 전해진다.
거슈윈은 처음부터 이 공연을 위한 작품을 확정해 둔 상태가 아니었으나, 언론 보도로 신작이 갑자기 예고되며 일정이 급박해졌다.
그는 기차 이동 중 떠오른 리듬과 도시의 소음에서 착상을 얻어서 곡을 만들었다고 회고했고, 단기간에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스케치를 정리했다.
이어 화이트먼 측 편곡자 페르데 그로페(Ferde Grofé)가 관현악 편곡을 마무리해 어렵사리 초연 무대에 올렸으며 이후, 전설이 됐다.
작품을 이끄는 클라리넷 서주는, 초연 당시 연주자의 글리산도 아이디어가 반영돼 현재 형태로 굳었다는 일화도 널리 전해진다.
자유로운 형식의 ‘랩소디’ 안에 블루노트와 1920년대 대중음악 어법을 끌어들인 이 작품은,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를 실질적으로 낮춘 사례가 되었다.
38세에 요절한 조지 거슈윈이 남긴 이 곡은 102년이 지난 오늘도 콘서트홀과 대중매체를 오가며 ‘현대 미국의 소리’로 재생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