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변방 탈출 꿈꾸는 베트남 반도체… 4년내 '5만 인재' 키운다

국가 주도로 산업 생태계 구축

핵심 인프라 갖춘 하노이국립대

“제조 대신 설계·패키징에 집중”

대학 전공 신설해 전문인력 육성

의대 버금가는 수준의 학생 몰려

응우옌 쩐 투엇 베트남 하노이국립대학교 반도체·첨단소재 연구소장(ISAM·교수)이 지난 4일 베트남 과학기술대에서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도체공학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부 튀 띠엔 통신원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부 튀 띠엔 통신원】 “자, 여러분. 오늘은 불 대수(Boolean Algebra)의 기본 용어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내용은 디지털 논리 설계의 기초이자, 나아가 반도체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지난 4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하노이과학기술대(USTH)의 강의실. 응우옌 쩐 투엇 교수가 반도체공학과 2학년 학생 100여명을 대상으로 반도체 공학 수업을 진행 중이었다. 프랑스 이공계 명문 그랑제꼴(특수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닉 물리학 박사 출신인 투엇 교수는 박사 학위 취득 후 베트남으로 귀국해 현재 하노이국립대학교 반도체·첨단소재 연구소장(ISAM)을 맡는 등 베트남을 대표하는 반도체 분야 석학이다.

투엇 교수의 수업을 수강 중인 학생들은 국가전략산업으로 성장을 시작하고 있는 베트남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엄청나다.

이 대학 반도체공학 전공 2학년인 꾸억아인씨는 “내년에 대만으로 교환학생을 가 반도체 제조에 대해 더욱 공부하고 싶다”면서 “대만 기업에 취업해 경험을 쌓은 후 베트남으로 돌아올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 2024년 9월 ‘2050년 비전, 2030년까지의 반도체 산업 발전 전략’을 밝히며 동남아시아 역내 반도체 허브로의 도약에 나섰다. 이에 맞춰 2023년부터 주요 대학에 반도체공학 전공을 신설해 인력 양성에 나섰다. 반도체 관련 학과의 입학 점수는 전반적으로 높아서 24~28점(만점 30점) 수준으로, 특히 베트남의 MIT로 불리는 백과대학의 미세전자공학 및 나노기술 학과는 28.25점으로 베트남 주요 의대와 합격선을 나란히 하는 등 베트남 최우수 인재가 몰리는 주요 산업군으로 떠올랐다.

■클린룸 갖춘 하노이국립대…”설계·패키징 집중 필요”

투엇 교수는 지난달 29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은 반도체 산업 성장을 위한 기본 조건을 이미 갖췄지만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최소 5~10년 이상의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현재 베트남 반도체 산업을 진단했다.

2025년 3월 설립된 연구소는 베트남 정부의 반도체 인력 양성 계획의 핵심 거점이다. 하노이국립대학교는 약 1만2000명 양성을 맡고 있다. 현재 하노이국립대 산하 자연과학대, 공과대, 베트남-일본대 등에서 연간 약 400명의 학생을 선발해 반도체 공학, 집적회로(IC) 설계, 마이크로전자 기술 등을 교육하고 있다.

투엇 교수는 “학생들은 기초 이론 학습 이후 실제 칩 제작과 공정 실습까지 경험한다”며 “3~4학년 단계에서는 실험실에서 직접 장비를 다루며 실무 역량을 쌓는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대학 내 단과대학들과 협력해 교육을 운영하고, 장비와 연구 인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핵심은 국가 차원의 연구 인프라다. 하노이국립대학교는 현재 1000㎡ 규모 클린룸을 포함한 국가 반도체 연구실 구축을 추진 중이다. 이는 기존 150㎡ 수준의 대학 실험시설을 대폭 확장한 것이다.

산학 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삼성전자, 인텔 등 글로벌 기업의 베트남 내 반도체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해 투엇 교수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진로를 제공하는 중요한 동기”라고 평가했다. 다만 “대학과 기업 간 협력 체계가 얼마나 긴밀하게 구축되느냐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과 관련해 투엇 교수는 선택과 집중을 강조했다. 투엇 교수는 “현재 베트남이 제조 분야에서 선진국과 직접 경쟁하기는 어렵다”면서 “설계, 패키징, 테스트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말했다. 투엇 교수는 “베트남은 인력 경쟁력을 기반으로 자체적인 발전 경로를 설정해야 한다”면서 “설계와 패키징 역량을 확보하면 점차 집적회로 제조 공정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트남 최초 반도체 칩 공장 착공…글로벌 빅테크도 베트남行

베트남은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전(全)주기 산업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설계·패키징 중심 구조를 넘어 제조 공정과 R&D까지 아우르는 ‘국가 반도체 전략’을 추진 중이다. 베트남 정부 정책에 따르면 현재 6000명인 반도체 엔지니어는 2030년 5만명, 2040년까지 1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베트남 정부도 더 이상 반도체 산업의 변방에 머물러 있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1월 16일 베트남 국영기업 비엣텔은 하노이 호아락 하이테크파크에서 27ha 규모 32나노미터(1nm=10억분의1m) 공정 기반 베트남 최초의 반도체 칩 생산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2028년 시범 생산이 목표다. 착공식에는 또럼 공산당 서기장과 팜민찐 총리 등 최고 지도부가 참석해 반도체 산업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반도체 빅테크들도 베트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엔비디아는 베트남 현지 R&D 협력을 확대 중이며, 인텔은 이미 호찌민 인근에서 대규모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베트남 인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생각과 달리 베트남 최우수 공대 출신들의 습득력이나 기본기가 잘 된 편”이라면서 “산학협력을 비롯해 기회만 주어진다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는 인재가 많아 눈 여겨 보고 있다”고 말했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 부 튀 띠엔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