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30대: 목표를 합치는 자산관리
결혼·주거·출산 등 재무과제 줄줄이
예비부부, 공동 목표 설정이 먼저
출산 전 소득 감소·지출 증가 계산 필요
돈 이야기 미룰수록 갈등은 더 불어나
사진=챗GPT
[파이낸셜뉴스] 30대의 통장에는 월급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결혼과 내집 마련, 출산, 노후 준비처럼 굵직한 인생 과제도 줄줄이 청구서를 내민다. 30대는 사회초년생 때보다 수익은 늘지만 감당해야 할 지출과 책임도 함께 커지는 시기다. 무작정 모으고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만으로는 여러 목표를 동시에 감당하기 어렵다. 무엇을 위해 언제까지 얼마를 모을지, 돈마다 순서와 쓰임을 정해야 한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은 ‘공동 목표’가 필요하다. 두 사람 통장을 합친다고 부부의 돈 관리가 완성되진 않는다. 언제, 어디에, 얼마를 사용할지 합의하지 않으면 같은 자산을 두고도 서로 다른 미래를 그린다.
순자산 9000만원인데 결혼자금은 ‘물음표’
경기도 수원시에 거주하는 33세 이준혁씨(가명)와 31세 박소연씨(가명)는 올 연말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들의 합산 실수령 월급은 약 640만원이다. 두 사람이 살림을 꾸리기엔 크게 부족하지 않다.
문제는 양쪽이 돈을 관리해온 방식은 달랐다는 점이다. 준혁씨는 미국 상장지수펀드(ETF)와 개별주식, 코인에 투자해왔다. 소연씨는 정기예금과 적금을 중심으로 천천히 차곡차곡 돈을 모아왔다.
둘의 고민은 예비부부라면 한 번쯤은 결혼 전 던지는 질문이었다.
“결혼하면 월급을 전부 합쳐야 할까요, 아니면 각자 관리하는 게 나을까요.”
지금까지 모아온 두 사람의 순자산은 9000만원이었다. 두 사람의 재무 상담을 맡은 조형근 재무설계사(AFPK)는 이 중 결혼 준비금이 얼마인지, 신혼집 보증금으로 얼마를 사용할지, 비상자금과 출산 준비금은 얼마나 남길지, 장기 투자금은 어느 정도 규모로 둘 것인지 등을 물었다.
두 사람 모두 선뜻 답하지 못했다. 통장은 여러개였지만 돈의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예금과 적금, 주식, 청약통장은 있었으나 그 돈이 각기 어떤 목적으로 존재하는지 구분돼있지 않았다.
때문에 같은 자금을 놓고도 두 사람의 시계는 전혀 다르게 흘렀다. 준혁씨는 투자자산을 10년 이상 굴려 자산을 불리는 데 관심이 컸다. 반면 소연씨는 올 연말로 다가온 결혼비용과 2~3년 뒤 출산에 필요한 돈을 걱정했다. 한 사람은 10년 뒤를, 다른 사람은 당장 수개월 뒤를 바라본 셈이다.
조 설계사는 “예비부부가 월급이나 통장을 합치는 것부터 고민하지만 그보다 먼저 두 사람이 같은 목표와 시간표를 기준으로 자산을 관리하고 있는지 맞춰봐야 한다”며 “공동의 기준이 없으면 자산이 있어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돈에도 ‘이름표’가 필요하다
조 설계사가 원 돈에 ‘이름표’를 붙이라고 조언했다. 관리 방식은 돈의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결혼 준비금, 출산자금 등 가까운 시기에 반드시 써야 할 돈은 손실 위험 없이 지켜야 하고, 장기간 사용할 계획이 없는 여유자금만 장기 투자금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조 설계사는 상품 선택은 그 이후에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목표와 기간이 정해진 뒤 예금, 적금, 청약, 연금저축, ETF 등 어디에 배치할지 판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결혼 후 2~3년 내 자녀 계획이 있는 예비부부에게 출산은 소득과 지출 구조가 동시에 바뀌는 인생의 ‘빅 이벤트’다. 육아휴직이나 근무시간 단축으로 소득은 줄어드는 반면 양육비·보험료·돌봄비용 등 신규 지출이 생긴다. 돈의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어나는 기간이다.
출산자금까지 주식시장에 맡겨두면 가족계획은 시장 상황에 휘둘리게 된다. 자산 대부분을 투자금으로 사용해선 안 되는 이유다. 가까운 미래에 꼭 써야 할 돈은 처음부터 장기 투자금과 분리해야 한다.
결혼과 동시에 가계부에는 연애할 때 보이지 않던 항목들이 대거 등장한다. 결혼 전 예비부부는 결혼 후 매달 고정비를 정리해봐야 한다. 두 사람이 하나의 가계를 꾸리게 되면 신혼집 월세나 대출이자, 관리비, 식비, 교통비, 통신비, 보험료뿐 아니라 부모님 용돈과 경조사비까지 공동지출로 더해진다.
남는 돈을 저축하겠다는 계획은 대개 ‘남는 돈이 없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필요한 것을 사고 남는 돈만 저축하는 방식으로는 신혼집과 출산, 노후 준비에 대비할 수 없다. 공동생활비와 공동저축, 장기 투자금, 개인 용돈을 월급에서 먼저 나누는 구조가 필요하다.
돈의 쓰임을 나누자 막연했던 9000만원에도 자리가 생겼다. 재무상담 후 준혁씨와 소연씨는 결혼 준비금을 별도 계좌로 분리하고, 신혼집 보증금으로 쓸 자금도 따로 구분했다. 최소 6개월 치 생활비를 비상자금으로 설정했고, 자녀 계획을 고려해 출산·육아 준비 계좌도 만들었다. 이렇게 정리한 뒤 남는 금액 중 장기적으로 쓰지 않을 돈만 투자자금으로 분류했다.
돈 이야기를 미루면 갈등은 이자처럼 붙는다
결혼 전 돈 이야기가 불편한 이유는 서로의 습관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소득 차이와 소비 습관, 투자 성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심리적 불편함 탓에 미룬 대화는 결혼 후 더 큰 비용 돌아온다. 주거비와 생활비, 출산비처럼 실제 지출이 시작된 뒤에는 서로의 방식을 조정하기 더욱 힘들어진다.
결혼 전 자산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 더 많이 벌었는지를 따지는 ‘정산의 자리’가 아니다.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 삶을 위해 돈을 어떤 순서로 배치할지 정하는 과정이다.
예비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복잡한 투자 비법보다 함께 지킬 수 있는 재무 규칙이다. 결혼자금과 주거자금, 비상자금, 출산자금, 장기 투자금을 구분하고 각자의 월급에서 공동 목표를 위한 금액을 먼저 배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조 설계사는 “돈보다 목표를 합치는 것이 먼저”라며 “그렇지 않으면 통장을 하나로 묶어도 갈등은 그대로 남는다”고 강조했다.
돈을 벌고, 쓰고, 모으는 일은 평생 반복되지만 재무설계는 늘 뒷전입니다. 하지만 돈에도 나이가 있어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선택하지 않으면 방치되고, 방향을 잡지 않으면 빠져나갑니다. 우리가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돈의 흐름을 짜야 하는 이유입니다.
[머니설계사무소]
는 AFPK 자격인증기관인 (사)한국재무설계협회(IFPK)와 함께 삶의 설계를 지원합니다.
chord@fnnews.com 이현정 김태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