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민가(民家)
메이지유신 이후 가옥 제한 해제
사무라이 주거 양식 대중에 전수
방과 방 사이 벽 대신하는 미닫이
용마루에 걸린 화마 막는 장식 등
생활문화·민간신앙 곳곳 스며있어
도쿄 외곽 사이타마현 시치부촌에 있는 일본 민가(民家). 타타미 33매 크기의 이 집은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는 일본 전통가옥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전경수 교수
일본은 그야말로 고질적인 계급사회이며, 그 인식은 민주화되었다는 시민국가 속에서도 깊숙하게 자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민(平民) 계급에 속했고, 그 단어를 줄여서 한 글자로 적으면 민(民)이 된다. 민으로 시작하는 글자들의 저변에는 이러한 저간의 계급 개념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민가’라고 하면 평민의 집을 말하고,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창안인 ‘민예’는 ‘평민의 예술’을 줄인 말이다. 그런데, 자연에 존재하는 영혼들에 대한 인식도 일본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터가 있어야 하고, 목재와 관련 재료들이 영혼이 깃들어 있는 자연물로부터 동원된다.
■집터에 깃든 영혼과 공동체 질서
집터는 ‘야시키'(屋敷)라고 한다. 단지 거주장치 또는 부동산이라는 생각에 한정되지 않고, 선조 자체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 집터에서 거주하는 현세의 사람들과 함께 작용하는 주적·영적(呪的·靈的) 공간을 구성한다. 야시키에는 최초로 집터를 마련했을 때의 개척선조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집터의 소유주가 변경되어도 집터의 선망제령은 그대로 있다. 이후에 들어온 소유주가 제대로 공양을 올리지 않을 경우, 동티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집터의 선조에 대한 제사를 모시는 기억 장치로 작동한다.
명치유신 이후 농민의 가옥 제한이 해제되었고, 사무라이 집의 양식이 평민에게 전수되었다. 대문과 담은 사무라이 양식이 별도로 존재하며, 그 풍경은 이토 히로부미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하기시(萩市)에서 잘 드러난다. ‘부케야시키'(武家屋敷)에도 등급에 따라서 집의 크기도 달라진다. 후쿠시마현의 아이즈(會津) 지방에서는 분가할 때, 가회도(家繪圖)를 먼저 그리고 그 집을 지어서 분가시키는 풍속이 있었다. 1917년 창립한 민가연구의 최초 모임인 백모회(白茅會)는 1918년부터 ‘민가도집’을 발행하였으며, 백모회의 회원이면서 고현학(考現學)의 창시자인 콘 와지로(今和次郞)가 주도했던 민가연구회는 1936년부터 ‘민가’라는 학술지를 발행하였고, 지금도 전국적으로 100년이 훌쩍 넘은 민가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그냥 박이 얹힌 서정적인 ‘초가 삼간’ 또는 솟을대문의 ’30칸 기와집’이라는 정도의 인식이 아니라 사회조직과 민간신앙에 이르는 심층적인 서민생활을 보여주는 기초적인 자료들이 대중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도쿄의 외곽인 사이타마현 시치부촌(秩父村)은 산허리를 이용한 양잠과 임업 그리고 잡곡 재배지였다. 그곳의 민가 한 채를 들여다보자.
집의 면적은 기본적으로 ‘타타미'(疊) 매수로 가늠한다. 주옥을 ‘오모야'(母屋)라고 하며, 이곳에 붙은 작업장에는 양잠과 관련된 도구들이 즐비하고, 변소는 가장 서쪽에 위치한다. 오모야의 입구로 들어서면, 신을 신은 채 들어가는 토간(土間)이 나오는데 화롯불에 해당되는 ‘이로리’와 ‘코타츠’가 있는 타타미 3매 면적의 공간이다. 토간은 야간과 비오는 날의 작업장이며, 천정에는 쌀가마니를 걸어 두었다. 그 서쪽에 ‘캇테'(식사, 휴식, 텔레비전, 불단 등이 있음)라는 타타미 6매의 공간이 있다. 남쪽에 타타미 8매의 접객용 ‘자시키’, 그 서쪽에 8매의 침실, 그 뒤로 이어서 ‘헤야’라고 부르는 6매의 방은 이불과 옷을 두는 창고다. 작업장과 오모야의 경계 북쪽에 목욕실과 세탁기가 놓여 있다. 이 집의 면적은 타타미 33매다. 방과 방 사이의 벽은 모두 미닫이 문이다. 결혼식 피로연을 위해서는 필요한 공간만큼 문을 제거하면 하나의 큰 공간이 마련된다. 건물의 중심인 ‘다이코쿠바시라'(大黑柱)라는 기둥에는 신이 정좌한다. 마당은 탈곡, 곡물 건조의 작업장일 뿐만 아니라 집안 길흉의 행사장이다. 아이들과 닭과 개들도 노닌다. 농가 한 집 한 집이 생산과 침식의 장으로 역할하면서, 자급자족 생활의 전통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지붕을 얹는 방식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차곡차곡 띠(茅)나 갈대(葦) 또는 억새(芒) 줄기를 쌓아 올린다. 지붕의 정수리 부분인 ‘무네'(棟)까지 올려서 용마루를 조성한다. 용마루 부분을 단단히 고정시키면서 기능과 장식을 겸한다. 풀을 놓는 수도 있지만, 대체로 ‘카츠오키'(勝男木)로 마무리한다. 가다랑어를 의미하는 ‘카츠오’의 영력으로 화마를 방지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다.
■도쿄 명물 스카이트리도 전통 의례
‘무네지마이'(棟仕舞)라고 불리는 마지막 작업은 성대한 의식이다. 집의 수명을 기원하고, 목수들이 주단목을 올린 후, 청주(靑酒)와 소금, 잉어를 올리며 축원한다. 지붕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마무리하는데, 집이라는 물건이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여겨지는 건축문화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공동체 의식이다. 2012년 준공된 도쿄의 명물 스카이트리에도 상단부에서 현대적으로 변형된 ‘무네지마이’를 실시하였다. 철골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술 뿌리기와 지역 주민 초청 행사로 안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전통 계승의 의례를 치렀다.
시간에 질서가 있듯이 공간에도 질서가 있다. 공간 배치라는 것이 질서 인식의 표현이다. 공간이 무너지면 질서가 무너진다. 서양식 핵가족용이라는 이름의 공장식 아파트가 주류를 이루니 전통적인 3세대 가족이 파괴되었고, 핵만 남기고 다 날라가 버렸다. 사과를 먹다 보면, 한 가운데 씨방과 그것을 둘러싼 까칠한 껍데기만 남는다.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서 겹겹이 둘러싼 육질 부분이 다 없어지고 알맹이만 드러난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다. 우리네 살림살이의 주거공간이 이렇게도 허술하게 변하였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일본 민가의 깊이가 보여주는 의미를 되새긴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