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치로 원칙·예외 뒤집어…”위험은 합의해제 한 쪽이 져야”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기일에 참석해 있다. 뉴스1
[파이낸셜뉴스] 대법원이 가압류가 결정된 채권의 경우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그 채권 계약을 합의해제하더라도 가압류를 무효로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25년만에 판례가 변경된 것으로, 압류의 처분금지효가 채권을 넘어 그 계약을 되돌리는 합의에까지 미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 29일 추심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관여 대법관 11명의 전원일치 의견이다.
원고는 경주에서 바이오가스 발전 사업을 하던 A사의 금전채권자로, A사가 이 사업을 8억5000만원에 B사에 넘기면서 양도대금 채권 중 3억5000만원을 가압류했다. 이후 가압류를 본압류로 이전하는 채권압류·추심명령까지 받았지만, B사와 A사는 그 사이 양수계약을 합의해제하게 돘고 그점을 근거로 지급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 “압류 후 합의해제 위험은 채무자 부담 타당”
종전 법리는 2001년 6월 선고된 대법원 판결이다.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채권의 소멸만을 목적으로 계약을 합의해제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제3채무자는 합의해제를 들어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봤다.
전합은 이를 25년만에 뒤집었다. 재판부는 “합의해제는 압류의 처분금지효가 발생한 상태에서 피압류채권을 소멸시키는 채무자의 행위라는 점에서 피압류채권 자체의 처분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합의해제가 압류 이전부터 유보돼 있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압류 이후 새로 맺는 계약인 만큼, 법정해제나 약정해제와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익형량에서도 결론은 같았다. 재판부는 “압류 후 이루어진 합의해제로 촉발된 법적 위험은 압류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원칙적으로 채무자가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채무자가 무자력일 경우에 대해서도 “그 위험은 스스로 이를 감수하고 합의해제를 한 제3채무자가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고, 이를 합의해제와 무관한 압류채권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 예외사항도…입증은 제3채무자가
다만 전합은 3가지 예외를 뒀다. △법정해제나 약정해제 요건을 갖췄는데 합의해제의 형식만 취한 경우 △피압류채권이 계속적 계약에서 발생하는 장래의 지분적 권리인 경우 △계약과 채권의 내용·성질, 채권의 계약상 비중, 합의해제 경위 등에 비춰 압류만을 이유로 대항력을 부정하는 것이 현저하게 부당하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다. 이 예외는 대항하려는 제3채무자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
재판부는 제3채무자가 부당하게 불리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집행공탁으로 지급 의무를 면할 수 있고, 채무자에게 가압류해방금을 공탁하게 해 집행을 취소시킬 수도 있으며, 이행을 강제당했다면 채무자를 상대로 그만큼의 반환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1심과 2심은 모두 종전 법리에 따라 “합리적 이유 없이 채권의 소멸만을 목적으로 한 합의해제로 보기 어렵다”며 원고 청구를 물리쳤다. 대법원은 그 판단을 떠받치던 법리 자체가 사라졌다고 봤다. 동시에 새 법리의 예외에 해당하는지는 원심에서 심리되지 않았다고 지적해, 환송심이 이를 다시 따지게 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대부분의 경우 채권압류 후 합의해제를 허용하는 획일적 결론에 이르렀던 종전 법리를 폐기하고, 압류재산의 현금화를 통한 채권 만족이라는 강제집행 제도의 목적과 압류채권자의 이익을 채무자의 처분의 자유보다 우선해 보호한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전원합의체가 11명으로 구성된 이유는, 이흥구 전 대법관이 지난 7일 퇴임했고, 노경필 대법관의 경우 지난 7월 14일 법원행정처장 취임하면서 지난 7월 22일자 전원합의기일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법관 1석 공백까지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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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