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소흥(紹興)은 운하가 흐르는 물의 도시이자 이름난 술의 고장이며 수많은 위인을 배출한 명사의 고장이다. 사진은 물 위를 미끄러지듯 오가는 오봉선(烏篷船). 중국관광청 제공
항주에서 동남쪽으로 한 시간 남짓 달리면 유서 깊은 역사 도시 소흥(紹興)에 이른다. 치수 영웅 우임금이 제후들을 모아 논공행상을 했다는 회계산 자락에 자리한 소흥은 중국 역사의 오랜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는 고도다.
소흥은 역사만큼이나 문학과 예술의 향기가 짙은 도시다.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노신(魯迅)이 태어나 성장했고, 남송의 위대한 시인 육유(陸游)의 슬픈 사랑이 서려 있으며, 당나라 최고의 풍류객 하지장(賀知章)이 태어나 말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노신고리(魯迅故里)
■노신의 고향에서 공을기를 만나다
소흥 시내에 자리한 노신고리(魯迅故里)는 노신이 태어나 청소년 시절까지 자란 마을이다. 그가 살던 집과 가족의 채마밭이었던 백초원, 어린 노신이 공부했던 삼미서옥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노신이 12살부터 17살까지 공부했던 삼미서옥은 수경오(壽鏡吾)라는 학자가 운영하던 서당이다. ‘삼미(三味)’는 독서의 세 가지 맛이라는 뜻이다. 유가의 경전을 읽는 맛은 담박한 밥맛이요, 제자백가의 서적을 읽는 맛은 짭짤한 젓갈 맛이요, 역사서를 읽는 맛은 고기를 씹는 맛이라는 것이다. 독서의 즐거움을 음식의 맛에 비유한 재미있는 이름이다.
노신이 공부하던 책상 한쪽에는 ‘일찍 조(早)’자가 새겨져 있다. 지각하여 스승에게 꾸중을 들은 노신이 다시는 늦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새겼다는 글자다. 삼미서옥 건너편 노신기념관에 들어서니 노신의 유명한 시구가 눈길을 끈다. “눈썹을 치켜세우고 천 사람의 손가락질에 냉정하게 맞서겠지만, 고개를 숙여 기꺼이 어린아이를 태우는 소가 되겠다.”
1932년에 지은 칠언율시 ‘자조(自嘲)’의 한 구절이다. 불의한 권력에는 굴하지 않되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선 기꺼이 헌신하겠다는 노신의 문학정신이 담겨 있다.
함형주점 앞에 서있는 공을기 동상
노신기념관을 나서면 그의 문학세계를 상징하는 함형주점(咸亨酒店)이 여행객을 맞는다. 노신의 단편소설 ‘공을기(孔乙己)’의 무대다. 공을기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몰락한 지식인이다. 남루한 장삼을 걸치고 주점을 찾아 술을 주문하지만, 앉을 형편이 못 돼 막일꾼들 틈에 서서 술을 마신다. 손님들은 그가 나타날 때마다 도둑질을 했다며 놀려댄다. 공을기는 책을 훔치는 것은 독서인의 일이라며 고리타분한 문자를 늘어놓는다.
이 작품은 봉건 과거제도의 폐단과 몰락한 지식인의 비참한 운명을 그린다. 하지만 노신이 주목한 것은 공을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그를 조롱하는 이들 역시 허름한 옷을 입고 서서 잔술을 마시는 가난한 막일꾼들이다. 자신들도 사회적 약자이면서 자기보다 더 비참한 처지의 사람에게는 연민 대신 조롱을 보낸다.
도둑질하다 붙잡혀 다리가 부러진 공을기가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주점에 나타나도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주인은 외상값을 독촉하고 손님들은 또 도둑질을 했느냐며 비웃는다. 공을기는 웃음소리 속에서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사라진다.
함형주점 앞에는 지금도 장삼을 입은 공을기의 동상이 서 있다. 관광객들은 그를 어루만지며 즐겁게 사진을 찍는다. 함형주점에서 나와 길을 건너면 오봉선 선착장이 나온다. 오봉선은 대나무로 엮은 검은 지붕을 덮은 작은 배다. ‘오(烏)’는 검다는 뜻이고 ‘봉(篷)’은 배의 지붕을 뜻한다. 사공은 두 발로 큰 노를 젓고 손으로 작은 노를 움직여 방향을 조절한다. 좁은 수로를 미끄러지듯 오가는 오봉선은 소흥 수향 풍경의 정령과도 같다.
육유와 당완의 슬픈 사랑이 깃든 심원(沈園)
■천고의 사랑이 잠든 정원, 심원
노신고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름다운 정원 심원(沈園)이 있다. 남송의 위대한 시인 육유와 당완(唐婉)의 슬픈 사랑이 서린 곳이다. 육유는 재색이 뛰어난 당완과 혼인해 행복하게 살았으나,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여긴 어머니의 반대로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세월이 흐른 어느 봄날, 육유는 심원에서 우연히 당완을 다시 만났다. 당완은 재혼한 남편과 함께 봄놀이를 나왔다가 옛 남편과 마주친 것이다. 당완이 남편의 허락을 얻어 옛 남편 육유와 동석하여 술을 따른다. 격해진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육유는 정원 담벼락에 사(詞) 한 수를 써내려갔다. 유명한 ‘채두봉(釵頭鳳)’이다.
슬픈 사랑의 두 주인공인 육유(오른쪽)와 당완
고운 손으로 따르던 향기로운 술
온 성에 봄이 와 버들은 푸르건만
사나운 동풍에 사랑의 기쁨 사라지고
그리움만 가슴 가득 몇 해를 홀로 지냈던가
잘못이야, 잘못이야, 이건 정말 잘못이라고(錯錯錯)!
당완 역시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같은 곡조의 ‘채두봉’으로 화답했다.
세상사 박하고 인정은 모질구나
황혼녘 비바람에 꽃잎 쉬이 지고
새벽 바람에 눈물 자국 말랐네
이 마음 편지로도 전하지 못해 홀로 난간에 기대 중얼거릴 뿐
어려워라, 어려워라, 참으로 어려워라(難難難)!
육유와 당완의 작품이 새겨진 심원 담벼락
육유는 ‘착착착(錯錯錯)’이라며 지난날의 잘못을 탄식하고, 당완은 ‘난난난(難難難)’이라며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한다. 당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흘러 일흔을 넘긴 육유는 다시 심원을 찾아 옛사랑을 추억하며 시를 남겼다. “가슴 아픈 다리 아래 봄 물결 푸른데, 일찍이 놀란 기러기 같이 아름다운 그대 모습 비추었지.” 심원의 다리 아래 흐르는 봄 물결은 예나 지금이나 푸르지만, 그 물결 위에 비치던 아름다운 여인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심원 뜨락에 서서 옛 사람들의 슬픈 사랑을 되새기다가 문득 눈을 들어보니 오래된 우물가에 저녁 꽃잎이 하롱하롱 떨어진다. 소흥주 한 잔이 그리워진다.
■감호가 낳은 풍류객 하지장
소흥 서남쪽 교외에는 거울처럼 맑은 호수 감호(鑑湖)가 있다. 한때 ‘팔백리 감호’라 불릴 만큼 광활했던 호수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크게 축소되었지만, 소흥의 풍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감호는 중국 최고의 황주(黃酒)로 꼽히는 소흥주를 빚어내는 물의 고향이다. 소흥주는 쌀을 주원료로 빚어 오랫동안 숙성시키는 술로, 호박빛 색깔과 깊은 향취가 특징이다. 옛날에는 딸을 낳으면 술을 빚어 땅에 묻었다가 딸이 시집가는 날 꺼내 잔치에 썼다고 하는데, 이것이 유명한 ‘여아홍(女兒紅)’이다.
소흥 서남쪽에 자리한 감호(鑑湖)의 가을 풍경
감호가 빚어낸 것은 명주만이 아니다. 당나라 최고의 풍류객 하지장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하지장은 측천무후 때 과거에 급제해 현종 때까지 고위 관직을 두루 역임한 시인이자 서예가였다. 특히 술을 몹시 좋아해 당나라의 유명한 술꾼 여덟명을 노래한 두보의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첫머리를 장식한다. “하지장이 말을 타면 배를 탄 듯 흔들흔들, 어질어질 우물에 빠져 물속에서 잠을 자네.” 술에 취해 말을 타고 가다가 우물에 빠져서도 잠을 잔다니, 참으로 대단한 주당이다. 하지장은 이백을 처음 만나 그의 시를 읽고는 “그대는 하늘에서 인간 세상으로 귀양 온 신선이로군!”이라며 감탄했던 사람이다. 하지장은 여든여섯의 나이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감호로 돌아왔다. 반백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그는 저 유명한 ‘회향우서(回鄕偶書)’를 지었다.
어려서 집을 떠나 늙어 돌아왔더니
사투리는 그대로건만 머리칼은 하얗구나
마을 아이들 나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웃으며 묻네 손님께선 어디서 오셨나요?
김성곤 방송통신대 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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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