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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과 시스템이 키운 ‘최고의 맛’…펀치볼·엔비 사과, 농가를 일으키다 [밭디세이]

― 사과의 미래

고지대·분지에서 자란 ‘양구 펀치볼’

큰 일교차에 당분 더 많이 쌓여

‘스마트과수원특화단지’ 정책 지원도

뉴질랜드 품종 계약재배 ‘예산 엔비’

회사가 생산·유통 등 모든 과정 관리

농가는 맛·빛깔 등 품질에 집중 가능

“우리가 먹는 것은 어디서 오는가.” 농업전문기자가 전국 논밭을 헤매고 다녀와 살아있는 먹거리를 기록합니다. 쌀 한 톨, 열매 한 알, 고기 한 점에는 농민의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이 제대로 맞물릴 때 농업은 지속가능합니다. 기후위기·농촌소멸 등 거친 변화 속에서 길을 찾는 한국 농업의 여정을 ‘밭디세이'(밭+오디세이)로 전합니다.

지난달 16일 강원 양구 해안면 펀펀농장에서 연둣빛 시나노골드 사과가 자라고 있다. 평면 수형을 통해 사과가 빽빽하게 자라 재배가 편리하다. 사진=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양구(강원)·예산(충남)=최용준 농업전문기자】”얼어 죽는다고 다들 말렸던 곳이 이제 사과 재배 최적지가 됐다.”

귀농 16년차 김현욱 펀펀농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강원 양구 해안면의 사과밭에서 연둣빛 ‘시나노골드’를 쓰다듬었다. 수확을 일주일 앞두고 한 알 한 알 눈을 맞췄다.

이날 낮 최고 기온은 영상 25도, 최저가 영상 11도다. 14도에 달하는 일교차가 ‘양구 펀치볼 사과’를 만든다. 사과는 기온 차가 큰 곳에서 더 달고 단단해진다. 낮 동안 사과나무는 광합성을 하며 당분(탄수화물)을 만든다. 밤에는 호흡을 해 에너지를 유지하는데 주로 낮에 만든 당분을 소모한다. 밤 기온이 낮으면 사과나무 호흡이 줄어 당분 소비가 줄고, 낮에 만들어진 당분이 과실에 더 많이 쌓인다. 사과는 본래 연평균 기온이 영상 8~11도인 서늘한 북부 온대 기후에서 잘 자란다. 김 대표가 붉은 감홍 한 알 건네며 “20브릭스 정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일반 사과는 당도가 10~14브릭스 정도다.

펀치볼이란 사과 브랜드는 지명에서 따왔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종군기자가 해안면 지형이 화채를 담는 그릇과 닮았다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접경지·고지대·분지 최적지에서 사과가 자라는 것이다. 기후위기로 여름이 무더워지며 재배적지는 북으로 향한다. 강원도 사과는 2020년 8215t(전체의 1.9%)에서 2025년 2만1875t(4.9%)로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기존 최대 산지인 경북은 같은 기간 65.8%에서 62.7%로 축소됐다. 오는 2050년 재배적합지는 중부 산간지역만 남을 전망이다.

■스마트과수원특화단지, 재배적지 우선으로 생산기반 지원

양구군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스마트과수원특화단지 사업을 선제 도입했다. 20㏊ 내외 과수원에 생산기반 조성, 정보통신기술((ICT) 장비 등을 지원한다. 지원 비중은 국비 30%, 지방비 30%, 자부담 40%다. 국비 예산은 지난해 12억7800만원에서 올해 91억3500만원으로 대폭 늘었다. 대상지는 강원, 산간지 등 미래 재배적지의 신규 과수원, 과수화상병 폐원 과수원, 주산지 노후 과수원 순으로 정한다. 재배에 적합한 지역인지를 정책 지원에서 최우선 순위로 보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오늘밤 비가 올 텐데 가물다가 갑자기 물을 먹으면 열과 피해(갈라짐)을 입을 수 있다”며 자동살수장치인 ‘포그’를 버튼 하나로 켰다. 1㏊ 넘는 사과밭에 분무기 같은 가는 물줄기가 뿜어졌다. 그는 “사과는 외형이 중요한 상품이다. 기후위기로 서리를 맞거나 햇빛데임을 겪으면 출하가 어렵다”며 “날씨를 면밀히 살펴 스마트 장비를 이용한다”고 전했다.

■사과 수입 금지됐지만…해외 클럽 사과로 농가 자생력 키운다

농업계는 기후위기와 통상 환경 변화라는 급류 속에서 사과 농가 생존의 답은 ‘고품질과 스마트 농업’을 통한 차별화에 있다고 봤다. 예산 사과 농가의 생존법은 맛의 경쟁력이다. 민형대 예당사과원예농협 이사는 지난달 20일 충남 예산군 과수원에서 사과를 붉게 만들기 위해 깔아둔 반사필름을 나뭇가지로 푹 찔렀다. 고인 빗물이 땅에 스며들었다.

수확을 앞두고 뉴질랜드 품종인 ‘엔비(ENVY)’를 ‘과실 돌리기’했다. 햇빛 방향으로 사과를 돌려 더 붉게 만드는 기술이다. 한 입 베어 물자 과즙이 넘쳤다. 껍질이 얇아 먹기 좋았다. 사과농사 경력 45년인 민 이사는 5년 전부터 엔비를 기른다. 그는 “엔비는 3.3㎡당 10만원, 연매출 1억원 이상 나온다. 후지가 3.3㎡당 6만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민 이사가 사과 한 알의 빛깔을 신경 쓸 수 있는 까닭은 엔비가 클럽 사과이기 때문이다. 클럽 사과는 특정 회사나 단체가 생산부터 유통까지 계약·관리 방식을 의미한다. 일반 사과는 품종 선택과 재배, 유통을 농가가 결정하고 다양하게 유통된다. 반면, 클럽 사과는 품종 소유권을 가진 회사가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관리한다. 클럽 사과 회사와 예당사과원예농협 간 계약재배를 통해 사과를 시스템에 맞춰 생산하고 고품질로 유통하는 것이다. 농가는 판로가 안정적으로 이어져 재배에 집중하면 된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시 가장 크게 피해를 입을 품목으로 사과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향후 해외 저가, 고품질 사과가 국내에 대거 들어올 가능성이 있어서다. 예당사과원예농협은 수입 신품종을 적극 도입해 고품질 사과로 수입산과 경쟁하고, 농가 소득을 올릴 계획이다. 앞서 예당사과원예농협은 지난 2008년 국내 처음 엔비를 도입했다. 현재 160농가, 150㏊ 규모에 생산랑 연 110t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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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준 농업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