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ㅁ자로 걸을 수 있는 4,500km의 코리안루트라는 길이 있다. 한반도 동-서를 잇는 동서트레일이라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이 길은 서해 태안반도 안면도자연휴양림과 동해 울진의 망양정해수욕장을 걷는 길이다. 국토를 동,서로 횡단하는 백패킹이 가능한 장거리 숲길이다. 동서트레일은 산림청과 충남, 세종, 대전, 충북, 경북의 지자체와 21개 시군이 함께 조성한 길이다. 거리는 총 55구간에 849km를 ‘잇고 만나고 걷는 길이다. 동서트레일의 상징적인 형상은 소나무의 솔방울이라고 한다. 하늘과 땅, 나무와 강을 상징한다고 한다.
2024년 10월에 동서트레일 길이 개통된 이후 이 길을 걷는 도반들이 많아졌다. 개인적으로 또는 단체 단위로 걷는 도반들 행렬이다. 이 길은 소통과 화합을 기대하는 길이라고 한다. 길을 따라 각 지역의 풍부한 자연과 문화를 두 발로 체험할 수 있는 길이다. 특히 안면도 소나무와 속리산의 정이품송 그리고 울진 금강소나무를 연결하는 길은 매우 이상적이라는 경험이라는 설명이다.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리는 날, 동서트레일길 태안 3구간 답사다. 몽산포항에서 태안행정복지센터까지 걷는 길이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다. 농촌 들녘과 해안가 그리고 염전길을 걷는 길이다. 동서트레일 3구간의 구체적인 코스는 몽산포항-몽산1리 갯천골-진산리-갯벌체험소-장산리-남산리-남문리-동문리-태안읍 행정복지센터로 이어지는 약 15km의 길이다. 마을과 마을, 산과 들녘을 걷고 바닷길 염전길을 걷는 일정이다. 태안읍에 도착하여 태안의 진산 백화산(285m) 기슭에 있는 태안읍성-동문리 근대한옥-태안 향교-태안 동학농민혁명기념관-태안 천주교성당까지 약 3km를 더 걸어야 하는 답사길이다.
봄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몽산포항이다. 비옷 등을 준비하고 작은 농어촌마을을 지나가는 길이다. 이 길에는 서해랑길 66코스가 겹치는 구간이다. 그리하여 전봇대에 매달려 있는 형형색색의 길을 인도는 리본들이 아름답게 춤을 춘다. 동서트레일 태안을 지나는 구간의 농촌 모습은 황금색의 황토밭이 강한 이미지를 주는 길이다. 대부분 농촌 현실을 말해주듯 이 길에 있는 농촌마을에도 사람을 볼 수가 없는 한적한 농촌분위기다. 커다란 트렉터 등이 논과 밭은 갈고 있는 소음이 요란스럽다. 지나간 낯선 행인들을 의식하는지 견공들의 울부짖음 소리가 요란하다.
봄을 맞은 농촌에는 논밭을 갈고 있는 커다란 트랙터 소리만 요란하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은 정겹고 어릴적 고향마을을 찾아 가는 길을 연상하게 한다. 가끔 농촌주택같지 않은 전원주택들이 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농촌에도 저런 모습으로 주거환경이 개선된다면 더욱 생기 넘치는 귀농과 전원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길가에 주홍색 매화꽃이 눈길을 잡는다. 하얀 매화꽃은 발길을 잡는다. 가끔 빨간 동백꽃이 핸드폰으로 인증샷을 찍게 한다. 아름다운 농촌풍경이다. 공기가 좋아 들숨 날숨이 부드럽고 걷기 좋은 농촌 길이다.
동서트래일 3구간의 농촌 마을에는 비어있는 주택이 많다. 경관 좋은 해안가에 어떤 이유인지는 대형 리조트 건물이 공사 중단이다.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붉은 색의 글씨가 보인다. 흉물처럼 보인다. 바람부는 바닷길에 갈대가 흐느적거리는 해변의 드넓은 갯벌이 보인다. 가끔 바다체험을 하는지 가족단위의 모습이 지역주민들의 조개잡이 등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작은 포구의 마을들을 지나가는 길이다. 한적한 길로 지나다니는 차량도 보이지 않는다.
진산리 마을 정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염전이 많은 해변이다. 간척지에 염전이 지금은 새우 양식장으로 변모한 곳이 많다. 또다시 양식장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염전을 파헤치고 건조하는 모습이다. 사계절의 변화처럼 농어촌의 모습도 그때그때의 모습이 달리하고 있다. 농촌마을의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전형적인 분위기의 모습이다. 어느 해변에는 매우 커다란 염전이 있는데 평화염전이라고 한다. 바닷물을 넘치도록 담아 놓은 염전의 모습이 옛 추억을 더듬게 한다.
갯벌에는 갯고랑이 S자형 모습이 한폭의 수묵화다. 그 언저리에는 황금색 갈대가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춤을 추고 있다. 환상적인 모습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핸드폰을 들이대고 있다. 한 작품이 찍힌다. 남산리에 도착이다. 내안읍으로 가는 큰 지방도로다. 바다 모습은 사라지고 농촌들녘이다. 넓은 들녘이 부촌임을 상상하게 한다. 붉은 매화 꽃을 핀 매화나무가 발길을 잡는다. 멀리 태안읍의 백화산이 보인다. 약 4km 남았다. 장산리에 도착이다. 몽산포항까지 11.6km, 태안읍 2km라는 이정표가 있다. 장산리 귀실정이라는 정자에서 쉼을 갖는다. 장산리는 뒷산이 수려하고 수원이 풍요로운 마을로 예로부터 종자골이라고 전하여 온 마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태안읍과 안명도를 잇는 77번국도 다리밑을 지나간다. 이제 태안읍으로 가는 작은 고개를 넘는다.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른 태안읍의 도시풍경이다. 태안읍 남문리로 향한다. 태안행정복지센터 앞에 경이정과 보수 공사중인 읍성이 있다. ‘아담히 드리워진 백화산 내가 살고 누울자리 태안 사랑하고 지킴은 나의 몫’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서있다. 경이정은 읍성 밖에 있는 옛 관아 건물이다. 안흥항에서 들어온 중국 사신이 휴식을 취하거나 방어사가 군사 명령을 내린 곳이라 한다.
경이라는 이름은 오랑캐를 경계하라는 의미로 고려 말부터 왜구에 의한 피해가 심했던 태안지역이다. 매년 정월 보름날 민관이 평안과 태평을 비는 제를 지냈던 곳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주민들이 공부할 수 있는 약학당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1988년에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이라고 한다. 태안읍성(당시 728m)과 목애당으로 향한다. 1416년 태종이 사냥을 하기 위해 태안에 왔다가 왜구에 황페화된 지역의 모습을 보고 1417년에 읍성을 축성했다고 한다. 현재 읍성(길이 144m 높이 4m)과 남문과 동문 그리고 웅성 터가 남아 있는 성이다.
태안 읍성안에 있는 목애당과 근민당이라는 관아 일부가 남아 있다. 읍성은 조선시대 관아 동헌이다.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인 일을 하던 관아이다. 기존 동헌 건물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소실되었다가 1901년 새로 지은 건물이다. 1904년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는 의미로 목애당이라 부른다고 한다. 목애당 앞에는 보호수 느티나무(수령 300년 높이 15m 둘레 4m)가 서있다. 읍성에서 내려다보면 볼 수 있는 동문리 근대한옥이 가로막혀 잘 보이지 않는다. 태안읍성에서 5분거리에 있는 태안향교로 향한다.
태안 향교(충청남도기념물)는 대문이 잠겨 있어 돌담넘어로 내부를 살핀다. 하마비가 홍살문 앞에 있다. 향교는 태안 지방의 교육을 담당하던 조선시대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고려 때부터 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으로 조선 시대에는 전국의 모든 고을에 세워졌다. 향교를 통해 유교를 알리고 인재들을 길렀다. 국가에서 향교에 땅과 노비 책 등을 제공했으며 고을의 수령이 관리했다고 한다. 태안향교는 공자 등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학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과 학문을 가르치던 명륜당, 학생들이 거주하는 동재와 서재로 이루어져 있다.
태안향교는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향교 대들보 상향문에 1407년 태종 7년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천민이 아니면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양반이 독차지했다고 한다. 태안향교 교육생은 30~50명이라고 한다. 향교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대제가 열리며 유림의 날 행사가 열리는 유교의 전통을 지켜가고 있는 향교라 한다. 태화산 들머리로 향한다. 경사도가 있는 길이다. 백화산 들머리에 태안동학농민기념관(지하1층 지상 2층)이 있다.
2021년 10월에 개관되었다는 태안동학농민기념관의 웅장한 건물 모습. 기념관 전시실에는 태안의 동학농민운동사에 대한 기록을 전시하고 있다. 태안동학농민기념관은 전국 지자체로는 3번째 동학기념관이라고 한다. ‘호랑이가 집에 쳐들어 왔는데 앉아서 죽을 수 있느냐 참나무 몽둥이라도 들고 나가 싸우자’라는 구호가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동학은 1860년 최제우(1824~1864)가 창시했다. 사상은 모든 사람은 하늘같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사회 개혁사상이다. 2대 교주 최시형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등 경전을 간행했다고 한다.
백화산은 동학농민혁명군의 최후 항전지였다고 한다. 동학혁명은 끝나지 않은 혁명이라고 한다. 동학농민혁명은 비록 실했지만 이후 민족 민중 운동의 근간이 됐다. 항일의병운동,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 활동 등은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그 정신적 뿌리를 계승했으며, 현대에 전개된 민주화운동인 4.19운동 광주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 등도 그 역사적 뿌리는 동학농민혁명에 있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3월 25일 고부 봉기를 1차동학농민혁명과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고종을 인질로 잡아 조선정부를 장악한 사건의 주요내용을 전시하고 있다.
동학 사상은 인간의 존엄성과 사람은 평등하며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평등사상이다. 시천주(하느님을 잘모시라) 사인여천(사람이 곧 하늘이다) 무위이화(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교화한다. 억지로 꾸밈이 없어야 백성이 진심으로 따른다). 무극대도(끝없이 훌륭한 진리) 후천개벽(시운의 변화에 따라 어두운 신천세계는 끝나고 후천의 밝은 문명세계가 돌아온다) 등이라고 한다. 농민군이 한양으로 진격하자 일본군과 정부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이들을 막았다. 일본군의 최신식 무기에 밀려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한 농민군은 일본군에게 무자비하게 학살당했다. 전봉준이 체포된 뒤에도 전국 곳곳에서 농민군의 항전이 있었으나 일본군의 무력에 밀려 막을 내렸다고 한다.
태안의 진산 백화산은 산봉우리 모습이 마치 하얀 천을 씌운 듯한 산 봉우리 모습에서 유래된 산 이름이라고 한다. 백화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기암괴석이 많아 아름답다. 몇 년전 백화산 정상에 있는 태을암을 가본 적이 있는데 보물 마애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 암자다. 솔향기길 5코스가 지나가기 때문에 도보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다. 특히 백화산 냉천골은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을 유지하는 곳으로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찾았던 곳이다. 산이 높지 않아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백화산을 바라보며 우뚝속아 있는 태안성당으로 향한다. 넓고 아름다운 성당 모습이다. 태안성당에서 예를 갖추고 동서트레일 제3구간 답사를 마무리 한다. 다음 동서트레일 구간을 답사 할 모습을 상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