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식탁 위 분위기가 달라졌다. 예전엔 “맛있으면 됐지”였다면, 요즘은 “이게 진짜 음식이 맞나?”부터 묻는다. 이 변화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 보건정책의 큰 흐름이 초가공식품(UPF)을 ‘건강을 흔드는 변수’로 정면 지목하면서, ‘진짜 음식(Real Food)’ 열풍이 확 번졌다.
초가공식품은 한마디로 ‘원재료가 어디 갔는지 모르는 음식’이다. 옥수수나 밀, 콩 같은 재료를 잘게 쪼개고, 정제하고, 섞고, 향과 단맛·짠맛을 덧칠해 “계속 손이 가는 맛”으로 설계한다. 문제는 이 맛이 단순히 입을 즐겁게 하는 수준을 넘어, 더 먹고 싶게 만드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열량이라도, 초가공식품 위주의 식단이 더 많은 섭취로 이어졌다는 연구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의지의 문제’로만 돌리기 어려워졌다.
이 흐름이 국내 미식가들의 언어도 바꿔놓았다. 서울 한남동과 성수동의 레스토랑들은 이제 ‘무첨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아예 ‘무가공’에 가까운 재료를 쓰고, 제철의 맛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간다.
한때 죄책감의 대상이었던 버터나 우지 같은 천연 지방이 “오히려 덜 가공된 선택”으로 다시 불려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제당 대신 조청·메이플 시럽 같은 ‘부드러운 단맛’이 환영받는 것도 그렇다.
특히 한국 식탁의 강점은 발효다. 김치, 된장, 간장, 식초처럼 시간이 만든 맛은 ‘자극’이 아니라 ‘깊이’로 사람을 설득한다. 봄이면 달래·냉이·쑥 같은 나물이 쏟아지고, 여름엔 오이·가지가, 가을엔 버섯과 뿌리채소가 식탁을 채운다. 제철 재료와 발효 식품은 초가공식품에 익숙해진 입맛을 자연스럽게 원위치로 돌려놓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그렇다고 “가공은 무조건 나쁘다”는 결론으로 뛰어가면 곤란하다. 두부, 요거트처럼 안전성과 편의성을 높이는 ‘최소 가공’은 현대인의 삶에서 꽤 유용하다. 핵심은 식단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다. 원재료가 보이는 음식이 기본이 되고, 초가공식품은 ‘가끔’으로 밀려나야 한다.
실천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첫째, 한 끼에 ‘원재료가 보이는 주인공’을 하나 세워보자(달걀·생선·두부·콩·채소). 둘째, 가공식품을 살 땐 성분표를 5초만 훑어보자. 맨 앞에 설탕·시럽·정제유가 줄줄이 오고 향료·유화제 같은 단어가 길게 붙어 있으면, 그건 ‘맛의 설계’가 많이 들어간 음식일 가능성이 높다. 셋째, 음료부터 바꾸면 체감이 빠르다. 탄산·가당커피 대신 물, 무가당 차로만 바꿔도 하루 당 섭취가 확 줄어든다.
요즘의 건강은 단지 “아프지 않기”가 아니다. 내 입맛을 누가 설계했는지 알아차리고, 그 설계로부터 한 발 물러서는 일에 가깝다. 결국 품격은 ‘무엇을 먹느냐’만큼이나, ‘무엇을 덜 먹느냐’에서도 만들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