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에는 풍광이 아름다운 3개의 정자, 누각이 있다. 밀양의 영남루와 진주 촉석루 그리고 합천에 있는 함벽루다. 따스한 봄기운이 깃든 3월 초 경상남도 합천 읍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황강을 찾았다. 황강 변에는 멋들어진 모습의 함벽루(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9호)와 연호사를 찾은 답사길이었다. 함벽루는 고려 충숙왕 8년(1321)에 지었다는 누각이다. 합천 8경 중 제5경인 함벽루 모습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광이다. 함벽루 누각에는 이황(1501~1570), 조식(1501~1572), 송시열(1607~1689)의 글이 누각 안에 걸려 있다.
황우산 함벽루와 연호사를 안고 흐르는 황강에 새벽녘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그 모습은 몽한적이라고 한다. 물안개 풍광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한다. 옛 선비들은 함벽루에 앉아 황강을 내려다보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지으며 풍류를 즐겼다는 누각이라고 한다. 특히 비가 내리는 날 누각의 낙수물이 직접 황강으로 떨어졌다고 하는데 지금은 황강 산책로가 조성되면서 옛 풍광의 멋은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함벽루와 연호사는 황우산 자락 황강의 절벽 위에 세워진 누각이다.
새 봄맞이 합천 답사길은 황강의 함벽루와 연호사 그리고 합천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해인사까지의 일정이다. 황우산 또는 황강의 물길은 유유히 넉넉한 물길이 흐르고 있다. 황강은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삼도봉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다. 합천댐과 합천읍을 흐르다가 합천 청덕면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라고 한다.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을 감물창진이라 불렀다고 한다. 황강의 황자는 매우 넓다는 의미를 뜻한다고 한다.
옛 황강 유역은 가야와 신라의 국경지대였다고 한다. 황강이 흘러가는 고을마다 독특한 문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합천댐 조정지댐에서 함벽루까지는 약 14km다. 걷기 좋은 길이 조성되어 있어 답사하고픈 마음이지만 다음 기회로 미룬다. 함벽루와 천년고찰 연호사 그리고 신라와 백제와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옛 대야성 흔적을 찾아가기 위해 촘촘히 황강 유역을 답사한다.
1988년 합천군 대병면에 합천댐이 준공되었다. 합천댐은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 다목적댐이라고 한다. 약 8억 톤의 물을 담수할 수 있는 합천댐으로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댐이라고 설명한다. 합천댐에서 인근 거창군까지 이어지는 댐의 호반 도로는 백리길이다.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길이다. 합천댐 호반 도로는 낭만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호수의 깨끗한 물과 수려한 경관, 그리고 호수의 깨끗한 물이 물을 이용한 문화 관광지로 유명세가 있는 명품 길이다. 드라이브 코스를 찾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소문난 길이다. 특히 벚꽃이 피는 봄날 환상적이라는 귀뜸이다.
함벽루 정자가 있는 주차장 입구에 죽죽(竹竹)이라고 쓰여 있는 비가 있다. 또 하나의 사당도 있다. 궁도장에는 죽죽정이라는 정자도 있다. 왜 죽죽이라는 이름이 여기저기에 있을까? 그 유래를 찾아본다. 죽죽이라는 단어는 사람 이름이다. 죽죽비는 신라 충신의 비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이다. 죽죽은 신라 선덕여왕 11년(642)에 이곳 대야성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대야성은 백제 장군 윤 충의 기습으로 함락되었다고 한다. 이때 대야성 성주는 죽죽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싸우지도 않고 백제에 항복한 것이다. 백제군은 항복하러 나온 사람들마저 모두 죽였다는 것이다.
대야성에서 백제의 만행을 지켜본 죽죽은 남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백제군과 끝까지 싸우다 전사했다고 한다. 이에 선덕여왕은 죽죽의 충절과 용맹을 기리고자 관등을 내리고 그의 처자식을 경주에서 옮겨와 살게 하였다고 한다. 2016년 합천군은 죽죽의 충절을 기르기 위해 죽죽비와 충장사라는 사당을 건립하여 죽죽의 충절을 남겼다는 사당이다. 함벽루 입구에 1949년 8월 공비들의 공격을 받은 인곡리 관자부락에서 끝까지 응전하다 전사한 한 경찰관의 무덤과 비도 서 있다.
함벽루(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정자로 향한다. 고려 충숙왕 8년(1321년)에 지었다는 함벽루는 단청 등 정자 모습이 고즈넉하고 단아한 모습이다. 정자와 흐르는 강물은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함벽루 누각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황강을 내려다보며 옛 조상들의 멋진 모습처럼 멋들어진 모습을 연출해본다. 오래전 함벽루에는 시인과 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누각이다. 누각 내부에는 이황, 조식, 송시열 등 조선 시대의 유명한 학자들이 들이 걸려있다. 누각 뒤편 암반에는 송시열의 함벽루라는 글씨가 있다. 이 글씨는 서예사적으로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최근 군에서 야간조명을 설치하였는데 아름다운 빛이 또 다른 황강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누각 함벽루에서 기분 좋은 기운을 받아 연호사로 향한다. 연호사는 작은 암자 같은 천년고찰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황강의 남쪽 석벽 위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연호사가 있다. 연호사는 신라 선덕여왕 642년에 창건한 고찰이다. 대야성 전투에서 전사한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과 수많은 신라 장병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창건한 연호사라고 한다. 연호사에서 데크길을 따라 황강으로 간다. 드넓은 함벽루 체육공원이 있다.
황강체육공원 둘레길에는 봄의 전령 붉은 매화가 피어있다. 대야성(경상남도 기념물 제133호)을 살펴본 후 황우산을 오른다. 일명 매봉산(옛 취적산 95m)으로 산 능선은 쌍봉이다. 이 산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대야성은 황우산 황강이 흐르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대야성 길이는 약 2km라고 한다. 황우산의 황강 유역은 급경사의 절벽이다. 여기에 함벽루와 연호사가 그림처럼 있다. 황우산 산책길을 한 바퀴 걷는다는 1시간이면 넉넉하다. 낮고 작은 산이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적지임을 알 수 있다.
합천 시내를 흐르는 황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뒤로한 후 한국불교 3대 사찰이라는 법보종찰 해인사로 향한다. 해인사는 국립공원 가야산의 기슭에 있다. 해인사 앞에는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매화산이 있다. 해인사 홍류동 계곡에는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해인사 소리길이 있다. 소리길은 이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의미의 길이라고 한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깨달음과 소통을 상징하는 길이라고 한다. 소리길은 약 6km다.
해인사 입구가 변경된 길이다. 예전에 상가 지역이 입구였는데 4년 전 후문 쪽에 새롭게 입구가 조성된 것이다. 해인사는 입구부터 아름다운 산책로 길이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졸졸 흐르는 계곡을 따라 해인사까지 쉬엄쉬엄 오르는 길이다. 계곡에는 자연스럽게 넘어져 뒹굴고 있는 나무들이 많다. 해인사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길 입구다. 해인사는 가야산에서 신령스럽고 영험이 있는 장소라고 한다. ‘빼어난 곳 가려서 숨어 사시다 해인사 열어 큰 가르침 제창하시니 토지신 그 터전 높이 받들고 하늘은 숲과 샘 내려 주셨네’라는 최치원의 순응화상찬이라는 시가 있다.
법보종찰 해인사는 불보종찰 양산 통도사와 승보종찰 순천 송광사와 함께 한국불교 삼보사찰이라고 한다. 해인사는 합천 가야면 가야산(1432m) 중턱에 있는 사찰이다. 해인사라면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이 먼저 떠 오른다. 해인사의 중심 전각은 대적광적이다. 해인사에는 150여 개의 소속 사찰을 거느리고 있는 대찰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개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기록유산은 팔만대장경이며 세계문화유산은 장경판전이라고 한다. 법보사찰 해인사 경내에는 수많은 인파로 붐빈다. 해인사 경내가 넓어 이를 자세히 관람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해인사는 떠돌이 강아지의 전설이 있다. 한 노인이 떠돌이 강아지를 대려다가 정성껏 반려견으로 키웠다고 한다. 강아지는 용왕의 딸로 속죄를 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속죄를 마친 용왕의 딸은 바다로 돌아가 노인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용왕의 도장을 사용해 절을 세우는 비용으로 사용했다 하여 바다 해(海)자와 도장 인(印)을 사용하여 해인사라 부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인사 경내에는 신라말 대학자 최치원(857~?) 선생이 집필하던 장소 학사대가 있다. 학사대 전나무는 선생이 평소 짚고 다니던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나 성장했다는 나무가 있다.
법보 종찰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후기 대장도감에서 판각한 대장경으로 해인사에 소장된 불교 경전이다. 초조대장경은 몽골군 침입으로 불탔다고 한다. 이루 16년 동안 1251년 9월에 완성한 경전이라고 한다. 판각 매수가 8만 4천 법문을 수록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 한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은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대장경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대적광전 뒤에 있는 팔만대장경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13세기에 제작된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기 위해 지어진 목판 보관용 건물을 말한다. 처음부터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로 지어진 건물로 당시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한다. 장경판전은 두 개의 건물로 마주 보고 있다. 건물은 간결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작은 문살 사이로 팔만대장경을 볼 수 있다. 건물과 대장경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 관리 요원들이 상시 배취 근무 중이다. 팔만대장경은 역사성과 함께 사상과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 보고라고 다시금 새겨본다. 선조들의 지혜와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구호가 있다. 현재 법보종찰 해인사에는 약 500여명의 승려들이 부처의 지혜와 깨달음을 배우고 민족의 보물 팔만대장경 등을 보전하고 수행하는 사찰이다. 해인사를 찾을 때마다 경내 각종 전각의 건축양식과 전각들의 배치 등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전 선조들의 미적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해인사는 사적과 명승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명찰이다.
대한 불교 삼대사찰 중 하나인 해인사 전각 지붕위로 보이는 앞산 매화산 남산제일봉(1,054m)의 연봉이 옅은 안개 속에 그림처럼 보인다. 해인사는 국립공원 가야산의 기운이 담아서 있는 해인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법어를 남기고 떠난 고 성철(1912~1993) 종정께서 머물렀던 해인사 부속암자 백련암(750m)을 그려보면서 합천 답사를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