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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역사, 문화가 있는 아름다운 길…경기둘레길 파주 구간 7코스

경기도 파주시를 한반도 ‘평화수도’라고 한다. 깊어가는 가을 파주를 흐르는 임진강 강변을 따라 걷는 답사다. 경기도에는 도 외곽을 한바퀴 돌 수 있는 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 길을 경기둘레길이라 하는데 경기평화누리길, 경기 숲길, 경기 물길, 경기 갯길 등 총 4개의 권역으로 구성된 길이다. 경기둘레길은 총 60개 코스의 860km로 15개 시, 군을 걷는 길이다. 경기둘레길은 새로운 길이 아니라 기존의 있는 길을 하나로 연결시켜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된 둘레길이다. 걸을수록 매력이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경기둘레길 중 파주 구간 7코스를 답사했다. 7코스는 경기평화누리길(김포 1 ~ 연천11)은 반구정에서 율곡습지공원까지 걷는 길로 13km다. 이 코스에는 농촌의 황금벌판과 야산이 펼쳐지는 길이다.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농촌 들녘을 따라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다. 옛 선인들의 업적과 정신을 느끼며 걷는 길이다. 7코스의 구간은 방촌 황희(1363~1452)선생의 유적지 반구정을 들머리로 임진각 – 장산전망대 – 화석정 – 율곡습지까지다. 하지만 시간이 있어 율곡수목원(총 18km)까지 걸었던 답사다.

경기둘레길 7코스는 파주 '평화누리길 8코스'와 경기도 옛길 '의주길'과도 겹치는 길이다. 7코스 들머리인 반구정(문화재자료 제12호)까지는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이다.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이용하여 문산역으로 갔다. 문산역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문산읍 사목리에 있는 반구정 정류장에서 하차다. 반구정은 민족의 분단과 민통선 철책의 슬픔을 안고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기슭의 아름다운 곳에 있다. 방촌 황희선생이 퇴임 후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낸 정자다. 반구정 이름의 의미는 기러기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청백리의 얼이 깃든 황의선생유적지 반구정에는 넓다란 잔디와 울창한 수목이 그림같다. 유적지에는 방촌 영당, 앙지대, 반구정, 월헌사, 방촌기념관과 방촌선생의 모습을 형상화 해 세운 동상 등이 있다.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의 유적지다. 유적지를 쉬엄쉬엄 돌면서 선생이 추구했던 청백리 정신을 생각해 본다. 고즈넉한 반구정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내려다 보면서 분단의 현장도 살펴본다.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내면을 볼 수 있는 정자다. 철책이 분단국가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황희선생의 호는 방촌이다. 선생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정치가로 청백리의 표상이라고 부른다. 개성 출신으로 어머니 용궁 김씨가 선생을 잉태했던 열달 동안 송악산 용암폭포에는 물이 흐르지 않다가 선생이 태어나자 물길이 쏟아져 내렸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선생은 1449년 관직에서 물러날 때가 87세였다고 한다. 19년간 영의정으로 재임했다고 한다. 세종으로부터 가장 신망받는 재상으로 그 명성이 높았던 정승으로 평가하고 있다.

황희선생은 퇴임 후 이곳에서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유생과 후손들이 축대와 정자를 정비하고 1998년 유적지 정화사업으로 지금의 반구정과 앙지대가 새롭게 개축되었다고 한다. 동상에는 선생의 글씨가 음각화되어 있다. ‘집이 높으니 능히 더위를 물리치고 처마가 넓으니 바람이 통하기 쉽네 큰나무는 땅에 그늘을 만들고 먼 산 봉우리는 푸르게 하늘을 쓰는 것 같네’ 관풍루의 대한 글이다. 아름다운 시귀절이다.

반구정 관람을 마친 후 자유로 굴다리를 지나면 경기둘레길 7코스가 시작되는 시멘트길이 있다. 임진각평화누리가 있는 임진각역까지 약 4km를 걷는 길이다. 평화누리자전거 길이자 보행자 겸용의 둘레길이다. DMZ평화의 길은 남북평화 촉진과 접경 지역의 경제활성화를 위해 생태, 문화, 역사자원을 기반으로 조성된 길이다. 거리는 인천 강화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526km다. 임진각까지는 걷는 난이도가 쉬운 편이다. 그냥 걸으면 되는 길이다. 넓지는 앉지만 황금들녘을 조용하게 걷는 길이다. 길게 뻗은 도로와 초록의 자연이 그려낸 풍경은 걷기 좋은 길이다.

임진각역이 보인다. 농노 길과 생태길을 걸어 왔지만 가슴이 벅차오른다. 임진각평화누리공원은 축제 기간으로 시끌벅적한 분위기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이런 역사적인 명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임진각에는 내국인보다는 단체 외국인들이 더 많은 날이다. 해설자의 확성기 소리가 요란스럽다. 경의선을 다리던 녹슨 증기기관차와 끊긴 철로 등 분단의 현장이다. 통일을 기다리며 이산가족의 슬픔을 노래한 ‘잃어버린 삼십년’ 망향의 노래비(1985년 9월 준공) 앞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임진각을 뒤로 한 채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들녘을 가로질러 장산전망대를 향해 걷는다. 들녘은 풍년이며 길가에는 각종 야생화들이 웃고 있다. 가끔 농부들 모습이 보이는데 어릴 적 농사를 지었던 아버지와 고향 들녘이 생각난다. 청명한 가을 날씨에 멀리 개성 송악산이 뚜렷하게 보인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지척이다. 걷는 길은 임진강을 따라 걷는데 가로막힌 철조망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을 볼 수 없다. 분단의 현실로 만감이 교차한다. 들녘에 설치된 쉼터에서 잠시 쉬면서 걷는다. 지평선 뒤로 파평면 파평산 496m 이 보인다. 기러기 등 철새만이 분단된 대한민국을 오고 갈 뿐이다.

걷는 길에는 각종 시설물이 접경 지역임을 실감하게 한다. 장산1리(맨밧골)에 도착하여 임진강을 따라 길게 형성된 장산100m 전망대를 향해 오른다. 장산은 숨어있는 파주의 명산으로 10여 분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호흡이 거칠다. 전망대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300m 거리다. 전망대에는 특별한 시설물이 없다. 노지 백패킹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망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다. 최근에 이렇게 아름다운 전망대는 처음 본다. 말없이 임진강은 흐르고 임진강 너머로 개성 송악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초평도를 바라보면서 노을이 아름다운 전망대다. 발걸음을 띄지 않게 붙잡는다.

임진강은 굽이쳐 흐르고 있다. 임진강 마을에서 순두부로 허기를 채운 후 화석정으로 간다. 화석정은 임진강 강변에 세워진 정자로 액자 속 풍경처럼 임진강과 장단평야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정자다. 화석정(경기 문화재 제61호)은 조선 중기 율곡 이이(1536~1584)의 정자로 후학들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는 명승지다. 율곡은 이이의 호로 아버지의 고향 율곡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화석정은 임진왜란과 6.25 당시 소실되었다가 1996년 후손들이 복원한 정자다. 화석정에는 600년된 두 그루의 보호수 느티나무와 250년된 향나무가 화석정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화석정은 율곡의 5대조인 이명신이 건립했으며 화석정이라는 이름은 몽암 이숙함이 지었다고 한다. 화석은 꽃과 돌을 의미한다. 화석정에는 율곡이 8살 때 지었다는 ‘화석정시’라는 시비가 서 있다.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 드니 시인의 시상이 끝이 없구나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서리맞은 단풍은 하늘을 향해 붉구나 산에는 둥근 달이 떠오르고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사라지네 울고 가는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8살에 이런 시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린나이에 놀라운 시다. 

화석정을 뒤로한 후 아름다운 마을을 지나 굴다리를 지나면 임진강변에 조성된 율곡습지공원이 있다. 습지공원은 재해예방시설에 주민들이 꽃을 심고 가꾼 공원이다. 고향집 들녘 같은 정겨운 정원이다. 습지에는 봄에는 유채꽃과 양귀비가 가을에는 백만송이의 코스모스가 아름다운 군락을 이룬다. 가을을 맞았지만 코스모스는 만개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쉼을 가진 모습이다. 아마 대학자의 사상과 철학을 생각하면서 울창한 밤나무 아래에 조성된 쉼터에서 여유의 시간을 갖는다. 율곡습지 곳곳을 살핀 후에 굴다리를 지나 율곡수목원으로 향한다. 율곡습지공원에서 수목원까지는 약 1km로 20분거리다.

율곡수목원은 파평면 율곡리에 있다. 이 수목원은 식물유전자자원의 보존과 증식을 위해 조성됐다. 시민들에게 다양한 산림문화와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했다고 한다. 식물원에는 사계정원, 단풍나무원, 침엽수원, 유실수원, 암석원, 사임당숲 등 21개 테마로 조성됐다. 식물원에는 1300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다양한 숲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식물원 입구에는 수목원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둘레길 5km 안내판이 서있다. 안내도를 보면서 걷기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율곡수목원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산세가 안락하게 보인다.

DMZ 청정지역의 있는 율곡식물원은 매년 3월에서 11월까지 개장한다. 가을을 맞아 하얀 구절초와 가우라, 억새 등이 활짝 피어있다. 밤나무 아래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선생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밤을 줍기 위해서다. 울창한 수목원에는 무장애길과 활톳길 등이 조성되어 숲길을 걷는 재미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임진강을 비롯한 개성까지 훤희 보인다. 수목원에 지우정(뜻을 알아주는 친구와 만나 머무는 곳)이라는 정자가 발길을 잡는다. 경사가 있는 산책로는 지그재그로 오를 수 있다. 율곡수목원에서 반나절은 편안하게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수목원이다.

수목원에는 걷기 좋은 구도장원길2.7km의 산책로가 있다. 조선 중기 구봉 송익필, 우계 성혼, 율곡 이이 세 사람이 서로 왕래한 편지를 엮어 만든 책으로 ‘삼현수간三賢手間’이라 한다. 이 책은 삼성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 제1415호라 한다. 내용은 소소한 일상부터 속 깊은 철학까지 담은 국가경영론같은 택이라 한다. 수목원의 지우정에서 사계정원까지 걸으며 우정과 학문의 길을 생각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깊어가는 가을 구절초가 아름답게 핀 사임당의 치유 숲에서 갖는 휴식은 힐링이다.  

파주시 법원읍에는 율곡유적지가 있다. 유적지내에는 기념관과 자운서원, 율곡과 신사임당 등의 가족묘가 있다. 매년 가을이면 파주시에서는 문화제를 개최하는데 올해가 제34회(10.12-10.13)가 개최됐다. 문화제는 율곡 이이 선생의 유덕을 추앙하고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를 통해 선생의 가치를 되짚어 보는 문화제다. 행사내용은 추향제와 유가 행렬, 대동놀이, 전통 혼례 등과 더불어 현대와 연결을 모색하는 퓨전국악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율곡 이이 역사 투어였다.

율곡 이이는 1536년 태어났다. 여섯 살 되던 해 강릉에서 파주 파평면 율곡리로 올라와 성장했다. 13살에 첫 시험에 합격했고 과거에서 9번이나 1등했다고 한다. 관직을 마치고 돌아와 여생을 마친 곳이 파주다. 율곡유적지는 율곡리에서 10km의 거리에 있다. 경기둘레길 7코스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평화의 길이다. 분단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역사의 길이다. 조용한 농촌 들녘을 따라 걷는 길로 향수의 길이다. 한반도 분단의 현장이지만 비무장 지대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그림처럼 보전되도 있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개성 송악산을 다녀올 그날이 꿈이 아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