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라는 고려 말 야은 '길재' 선생의 시詩가 생각난다. 48년 전 뜨거운 청춘을 불태웠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땅을 찾았다. 그곳은 경기도 최북단 연천이다. 연천읍에 있는 '망곡산望哭山145m과 군자산君子山328m'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을 답사했다. 연천에는 30만 년 전 한탄강 변에 최초의 인류인 '호모 에렉투'가 살았다는 고장으로 매년 봄이 되면 구석기 축제가 열리는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다.
2023년도 12월 16일 부터 수도권1호선이 '경원선(서울-원산 224km)'의 연천역까지 연장 운행하고 있다. 연천은 결코 변방이 아니다. 수도권 전철을 이용하면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고을이다. 연천역 2번 출구로 나서면 역사 뒤편으로 보이는 낮은 산이 망곡산이다. 망곡산은 구한말 고종황제와 순종황제의 국상을 치를 때 주민들이 이 산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통곡했다 하여 망곡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연천역은 수도권1호선 종착역으로 수많은 인파로 붐빈다. 전철 개통 이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1912년 연천역은 보통역으로 최초 영업을 시작한 역이다. 연천역은 전곡역과 대광리역 그리고 열차는 달리고 싶다는 신탄리역 사이의 있는 역이다. 1970년대 초 군 복무 당시 휴가나 외출을 할 때 열차보다는 버스를 많이 이용했다. 2012년 들어 연천역까지 통근 열차가 1일 6회 운행되었다고 한다. 한때에는 백마고지역까지 운행하였는데 열차 복선화 공사로 중단되다가 지난해 말 완전개통된 역이다. 현재는 시간당 1대가 운행되고 있다.
연천역에 내린 관광객은 두 부류다. 연천역에서 망곡산과 군자산을 등산하는 사람과 연천역에서 시작되는 '연천 9경(재인폭포, 호로고루, 임진강주상절리, 전곡리유적, 태풍전망대, 전곡선사박물관, 그린팅맨, 숭의전, 댑싸리공원)'을 관광하는 씨티투어(1일 5회 요금 5,000원)를 이용하는 관광객이다. 연천역 광장에 있는 옛 역사는 관광안내소로 이용되고 있다. 관광안내소에는 셔틀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긴 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조기에 버스표가 매진되었다는 설명을 하는데 많은 관광객의 불만에 찬 목소리가 높다.
옛 역사 앞에는 '미카 161 증기기관차'와 '급수탑(1914, 국가등록문화재)'이 당시의 모습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급수탑은 경원선을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탑이다. 현재 상자형과 원통형 2기가 역사에 남아 있다. 원통형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머리 부분에서 다시 넓어지는 모양이다. 보전상태가 좋다는 설명이다. 급수탑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역사에서 망곡산연인공원으로 가기 위해 2번 출구를 나선다. 약 500m 거리에 망곡산 입구다. 이 산에는 근린체육공원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며칠 전 군에서 실시한 걷기대회가 진행된 구간이다. 산 입구에 계단공사가 진행 중이다. 울창한 숲사이로 각종 꽃이 떨어져 눈길을 연상한다. 조성된 무장애 데크길을 따라 오르는데 난이도가 없는 길이다. 휠체어들이 다닐 수 있으며 남녀노소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다. 이 둘레길은 망곡산에서 군자산까지 연결된다.
망곡정 아래에 '왕림리'와 '수레여울'이라는 두 개의 글이 새겨져 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전혀 알 수 없는 전설 같은 얘기다. 왕림리에 관한 얘기는 조선 '태종'이 고려 신하였던 '이양소'를 만나고자 연천을 친행했는데 이양소가 상진천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임금이 쉬던 곳을 기념하고자 왕림리라 부르고 느티나무를 심었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나무는 없고 왕림리라는 이름만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수레여울은 조선 태종이 연천 도당골에 은거하고 있는 이양소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친행하였다. 당시 어가가 이 여울을 건너다 빠졌다 하여 그 여울을 수레여울이라고 부르고 있다. 차탄천에는 한탄강 주상절리를 등을 이용한 ‘수레여울 에움길(9.9km)’이 있다. 에움길은 차탄교에서 왕림교까지 자연풍광을 보면서 걷기 좋은 길이라고 명성이 높다. 다음 기회에 답사 코스다.
무장애 데크길에서 내려다보는 연천역사는 놀랍게도 엄청나게 큰 역사다. 봄의 숲 향기가 진동하는 데크길을 따라 전망대로 향한다. 전망대 망곡정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다. 연세가 들어보는 분들과 가족 단위가 많다. 부담 없이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이다. 전망대에 올라 연천 읍내를 조망하며 휴식을 취한다. 군 복무 당시 연천이 아니다. 48년 전의 추억을 회상해 본다. 소중한 추억을 들추어내는데 웃음이 나온다.
망곡산둘레길을 따라 걷는다. 소나무와 잣나무 등 많은 잡목의 숲이 웅찬한 숲길이다. 망곡산에서 군자산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체험할 수 있는 자연생태탐방로 길이다. 걷기 좋은 오솔길이다. 산 높이에 숲이 울창한 둘레길이다. 쉬엄쉬엄 걸으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파고라 쉼터에서 잠시 쉼을 갖고 걷다 보니 읍내리와 군자산둘레길로 연결되는 읍내리 고개다.
군자산 옥계배수지' 오른쪽으로 '옥녀봉(205m 북한 직선 4km)'이 보인다. 3년 전 군남댐에서 시작된 평화누리길을 걷다 보면 '그린팅맨'이 서있는 산봉우리다. 배수지 앞에서 군자산둘레길 입구로 들어간다. 망곡산둘레길과는 길 자체가 다르다. 군자산둘레길에는 옛 벙커들이 있는데 모두 허물어진 잔재가 흉물스럽게 느껴진다. 현역 근무 당시 군자산에 시설을 구축하고 정지하기 위해 사역을 많이 나왔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당시의 군자산과는 많은 변화가 있는 산이다. 격세지감이다. 울창한 숲길에는 다니는 사람들이 가끔 지난다. 망곡산둘레길과는 구분이 되는 길이다.
군자산둘레길은 인적이 드문 길로 보인다. 그러나 곳곳에 길안내 이정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을 찾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는 둘레길이다. 이정표에는 '전철 타고 망곡산 연천여행'이라는 붉은 리본이 이색적이다.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군자산둘레길 정자에서 잠시 생각을 한다. 체육공원으로 내려가 연천향교로 갈 것인가? 아니면 군자교로 하산하여 충혼탑에서 연천향교를 거쳐 연천역으로 갈 것인지? 옛 생각을 하면서 군자교 방향으로 하산길을 선택했다. 산 계곡은 그대로이지만 많은 변화가 있는 계곡이다.
군자교의 도착이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차탄천 건너편(50m)에 48년 전의 추억이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가가 촉촉해진다. 깨끗한 물이 흐르던 하천이었는데 물길도 작아지고 물이 탁해졌다. 징검다리는 그대로 있다. 하천으로 내려와 빨래하고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즐겨 찾던 하천이다. 자꾸 강 건너로 눈길이 간다. 누군가가 나올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옛 철교를 감시하던 초소는 사라지고 벽 흔적만 남아있다.
48년 전 차탄교 부근에 없던 '현충탑(1993년 건립)'이 세워져 있다. 군자산을 바라보고 있는 현충탑에서 잠시 묵념을 하고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 '연천향교'로 발걸음을 옮긴다. 연천향교는 태종 7년(1407)에 건립되었다는데 군 복무시에는 향교를 보았던 기억이 없다. 물론 당시에는 관심 밖의 시설이라 그럴 수 있다는 추측을 해 본다. 향교는 출입할 수 없어 발길을 연천역으로 향했다. 연천역까지는 10분 거리다.
망곡산과 군자산둘레길을 돌고 돌아 연천역에 도착했다. 연천은 봄이 가장 늦게 찾아온다는 지역이다. 논에는 벼농사를 짓기 위한 물을 끌어들이고 논갈이가 한창이다. 계절에 맞추어 농촌 일이 시작되는 시기다. 모내기 등 대민봉사도 많이 다녔던 들녘으로 그 추억이 새롭다. 그동안 연천의 다른 지역은 많이도 다녔지만, 군자산과 망곡산은 48년 만에 찾은 것이다. 감회가 새로웠던 연천이다. 연천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어우러진 환경은 순수하고 상쾌한 관광 명소임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