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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산 나들길과 생태공원…왕의 무사태평을 염원한 분묘군

서울둘레길 21코스를 완주한 후 서울 도심에서 다시 가보고 싶은 산이 있다. 바로 초안산(114m)이다. 최근 초안산에는 수국공원이 조성되고 수국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초안산은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초안산 나들길과 새롭게 조성된 아름다운 수국공원과 비석골공원을 답사했다. 초안산은 서울 노원구 월계동과 도봉구 창동에 걸쳐 있는 낮은 산이다. 시민들이 근접하기 낮은 산으로 울창한 숲이 있어 걷기 좋은 산이다. 마을 주민들이 산림욕 등 휴식을 취하면서 힐링의 여백이 있는 산이다.

초안산에는 2002년 사적 440호로 지정된 조선 시대 분묘군이 있다. 이 분묘군에는 약 1,000여 기의 분묘가 있다. 이 분묘들은 조선 시대 사대부를 비롯한 일반인 묘와 궁궐의 내시들 무덤이라고 한다. 이 많은 묘가 있으므로 초안산은 세간에 널리 알려진 산이다. 초안산에는 걷기 좋은 나들길과 치유의 숲, 체육공원, 캠프장, 전망대 녹천정 등이 눈길을 끈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을 이용하여 월계역과 녹천역 그리고 창동역에서 하차하면 초안산으로 갈 수 있다. 녹천역 1번 출구에서 초안산으로 오르는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들머리부터 맨발 걷기를 하는 시민들이 많이 보인다. 울창한 숲 속에 맨발 걷기에 좋은 흙길이다. 예전에 없는 초안산 나들길 이정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걷는데 편리하다. 초안산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는 난이도가 없는 산책길이다. 초안산 나들길은 곳곳에 숨어 있는 각종 문화재를 살피면서 걸을 수 있는 숲길이다. 초안산을 찾을 때마다 설렘의 발길이다. 이번 답사길도 그런 기대감으로 답사했다.

초안산에 들어서니 매미 울음소리 등 각종 풀벌레 울음소리가 협주를 한다. 나들길에는 조선 시대 공동묘지 등 각종 문화재에 대한 설명이 잘되어 있다. 초안산 옛 이름은 내시들의 묘가 많아 내시네 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들길 주변 곳곳에 넘어진 비석과 상석 등이 보인다. 후손이 없어 관리되지 않는 묘의 흔적이다. 초안산 능선 나들길에는 각종 운동 시설이 조성되어 있어 운동하는 시민들이 많다. 능선길에서 체육공원을 찾았다. 배드민턴체육관과 축구경기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체육공원에서 아파트 단지 옆에는 전통한옥이 있다.

조선 시대 전통한옥은 문이 잠겨 있어 출입할 수 없다. 이 한옥은 월계동각심재(문화재자료 제16호)라는 설명이다. 본래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있던 것을 1994년 3월에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1930년대 후반의 전통한옥이라는 설명이다. 각심재에는 신도비와 뒷산에 묘까지 보인다. 신도비는 조선 13대 명종(재위 1545~ 1567) 때 예안이씨 청백리 이명(1496~ 1572) 선생의 신도비로 선조 7년(1574)에 수립했다고 한다. 비문에는 선조 때 대제학을 지낸 김귀영이 지었으며 글씨는 춘추관 심충겸이 썼다고 한다.

각심재를 지나면 고등학교가 있다. 학교 입구 도로에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벽화 그림이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벽화 거리를 지나면 비석골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에는 초안산에 흩어졌던 각종 비석과 유물, 석물들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다. 매우 다양한 석물들이다. 분묘 앞에서 횃불을 상징하는 약 2m의 기둥 모양인 망주석이 있다. 복두공복을 입고 가슴에 두 손을 모아 홀을 두고 있는 문인석(90~190cm)과 금관조복을 입고 두 손으로 홀을 두고 있는 석상이 보인다. 무인석과 어린아이 모습의 동자상(크기 90~110cm) 등이 전시되고 있는 공원이다.

비석골공원에서 울창한 고목들이 서 있는 쉼터를 지나니 형형색색의 색상의 꽃들이 피어있다. 수국 동산 공원이다. 여러 색상의 수국꽃이 짙은 향기를 내뿜으며 콧등을 자극한다. 나뭇가지에는 커다란 까마귀들이 요란스럽게 울부짖는다. 나무 밑에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다. 운동기구를 이용한 운동하는 모습도 보인다. 수국공원에는 가족 단위 또는 연인들로 보이는 많은 시민이 꽃길을 걷고 있다. 수국공원은 아파트 단지 뒤에 있다. 2023년부터 불법 경작과 쓰레기 등으로 방치된 구역을 재정비한 수국공원이라고 한다.  

초안산 수국공원에는 산수국, 별 수국, 목 수국, 장미 수국 등 17종 약 1만 본의 꽃이 핀다는 동산이다. 수국의 모습도 다양한 모습으로 관리되고 있다. 아름다운 수국은 6월 말에서 7월 초까지 피는 탐스럽게 보이는 꽃이다. 수국은 땅의 산도에 따라 수국꽃이 그 색상을 달리한다. 산성 땅이면 파란 수국꽃이 피어나고 땅이 알칼리성이면 붉은색의 꽃이 핀다는 것이다. 수국 동산 중앙에는 작은 분수대에 물이 흐르고 있어 공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천천히 수국꽃을 보면서 또다시 초안산 정상으로 향한다. 초안산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편안한 안석처라는 뜻이라고 한다.

초안산 나들길에는 도토리 나무가 많다. 초안산 전체 산림 중에서 참나무가 약 17%를 차지한다고 한다. 참나무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상수리나무와 신갈나무가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굴참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등이라고 한다. 이들 참나무가 서로 썩어 있을 때는 구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참나무 사이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는 길에 분묘들의 흔적이 보인다. 잣나무 사이로 넘어져 땅속에 파묻혀 있는 석물들이 방치된 채로 보인다. 역사적인 분묘군. 관리가 이 정도일까? 안타까운 모습이다.

초안산은 경북궁과 약 4km(십리)의 거리다. 초안산의 분묘들은 모두가 서쪽 궁궐을 향하고 있다. 조선 시대 궁궐의 왕명의 전달, 청소업무 등 여러 업무를 담당하던 내시부의 묘다. 초안산에 있는 내관들의 분묘 건립된 시기는 1634년(인조 12)이라고 한다. 이곳에 있는 내시묘는 대부분 궁궐이 있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죽어서도 궁궐을 바라보며 왕의 무사태평을 기원한다. 일제강점기까지 마을 사람들이 매년 가을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곳에는 있는 수많은 분묘와 석물들이 시기별로 분포되어 있어 조선 시대 묘제와 석물의 변천사에 대한 귀중한 자료라는 설명이다.

초안산 전망 좋은 곳에 전망대 녹천정이 있다. 옛날 녹천마을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현재 월계동이다. 조선 중기 홍수로 인해 녹천마을 모두가 폐허가 되었다. 어느 날 마을 한사람이 중랑천에 푸른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 목욕을 하면 제물을 바치고 처녀 한 사람을 사슴에게 시집을 보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 그 후 마을 염씨 집 딸(15세)을 사슴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며칠 후 사슴 한 마리가 내려와 목욕한 후 처녀를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돈 다음 사라졌다는 전설 이야기다. 이때부터 하천을 녹천이라 부르고 마을이 번성하였다고 한다. 녹천정 부근에 커다란 허공바위가 있는데 왜 허공바위라는 이름일까?

녹천정에 올라 나뭇가지 사이로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이 보인다. 초안산은 중랑천과 우이천이 감싸고 흐르고 있다.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다운 산이다. 초안산 분묘군 중에 그동안 보지 못하였던 분묘가 설명되고 있다. 잣나무 힐링 숲길에 상궁개성박씨묘가 있다. 박상궁은 임금을 향한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예부터 잣나무는 곧게 뻗은 자태가 변함없는 기상과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라고 한다. 잣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초안산 서쪽에 조선 시대 다양한 계층의 분묘가 남아 있다.

상궁개성박씨는 조선 21대 왕 영조(재위 1724~1776) 때 활약한 상궁개성박씨라고 한다. 박상궁은 궁녀 중 가장 높은 정 5품의 직책이었다. 박씨묘는 비문이 남아 있는 단 3기의 궁녀 중 하나로 왕의 여자로 평생을 살아가야 했던 궁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설명이다. 녹천정 밑에 17세기 내관이었던 승극철 부부의 묘와 비석이 남아 있다. 이 묘는 안장된 사람의 신원을 정확하게 확인된 묘역으로 온전하게 보전된 묘역이라고 한다. 묘비에는 통훈대부 상세 승공 극철 양위지 묘라고 기록되어 있다.

초안산 캠프장이 조성되어 있다. 캠프장은 너른 초지와 실개천이 흐른다. 오두막집 3동 등 총야영 구역 54면이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트리하우스, 잔디광장, 놀이터 등 각종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는 도심지 캠프장이다. 초안산에서 월계역으로 하산한다. 맨발 걷기를 하는 시민들, 산악구보를 하는 건강한 사람들이 보인다. 초안산 나들길에는 숲속의 의사라는 딱따구리가 많다고 한다. 초안산 하산길이 무겁다. 간절한 소망을 안고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그 희망의 끈을 찾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하산길에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촘촘히 닦고 치우고 살펴본다. 흔적을 찾을 수 없어 가슴이 먹먹하다. 늦은 가을 초안산 단풍길을 다시 찾을 것이다. 도심지에 있는 작은 뒷산 초안산, 옛 이름은 초안치라고 했다. 하나의 고개가 있던 산이었다. 산 주변에 많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초안산의 분묘군이 논란거리라고 한다. 관계기관은 생태공원 등을 조성하면서 주민들의 민심을 달래는 모습이 엿보인다. 분묘군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불필요한 논쟁에서 벗어 나면서 문화재를 관리하는 모습이다.

초안산 근린공원은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마을 뒷산이다. 울창한 숲이 피톤치드를 제공하고 맨발 걷기 등의 명소라고 맨발 걷기를 하고 있는 한 시민의 설명이다. 맨발 걷기를 실시한 뒤 1년이 되었는데 건강이 매우 좋아졌다고 한다. 초안산의 묘역은 조선 시대 석물변천사 등 귀중한 연구 자료라고 덧붙인다. 한때는 밤이 되면 초안산 등산로에서 담력 시험을 하는 장소로도 이용하였다고 한다. 초안산을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으로 혼란스럽다. 초안산에서 뿌리를 찾겠다는 집념을 포기할수록 찾고픈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