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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 내린 빛의 온기… 색으로 빛나다 [이현희의 '아트톡']

오지호 ‘함부르크 항 풍경’

오지호 ‘함부르크 항 풍경’ 서울옥션 제공

오지호의 풍경은 작가의 본성과 예술에 대한 철학, 시대 상황을 들려준다.

오지호는 국권을 잃은 국민으로서 미술을 배우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가로서의 생각과 이야기보다 상황과 미래를 고려한 이미지들을 그려야 했던 시기에 감정의 자율성을 담아낼 수 있었던 후기 인상주의에 매료되어 빛과 대기에 따른 변화에 집중하며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다듬고 구상화에 대한 신념을 확고히 다져나갔다.

해방 이후 회화 자체의 순수성을 고집하며 광주에 정착하여 작품 제작을 이어 나간 오지호는 생동감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소재를 위해 산과 들, 바다 등을 찾고 또 찾았다. 내륙은 지형지물에 빛이 산란·흡수되기 쉬우나 일렁이는 물결에 빛의 잔상이 부서지는 바다는 오지호에게 생명력의 변주를 선사하는 순수한 빛의 보고였다.

특히 항구의 거대한 수면은 빛의 굴절과 반사는 물론, 튕겨 나온 빛이 습도를 만나 일으키는 색채 변화를 연구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빛과 색의 관계성에 매진했던 오지호의 관점은 유럽을 체험하면서 변화를 맞는다. 1974년 일흔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독일에 거주하던 딸을 만나기 위해 나섰던 약 9개월 간의 여정 속에서 함부르크를 거점으로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을 여행하며 이윽고 마주한 서구의 자연에서 형태를 뭉개고 색채를 나눴던 인상주의를 다시 한번 체득하고, 한국과 유럽의 기후에 따른 광학적 차이를 분석하여 한국에서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맑고 투명한 빛의 가치에 대해 확신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심화시켰다.

유럽 여행 직후인 1975년에 제작된 ‘함부르크 항 풍경’은 여행 도중 틈틈이 유럽의 항구와 전원 풍경을 스케치했던 것을 바탕으로 완성한 작품으로 오지호 특유의 투명함과 생동감이 현지의 무거운 대기를 밀어내어 밝고 다채로운 색채로 가득하다.

이현희 서울옥션 아카이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