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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정리해고에서 출발한 ‘가능한 사랑’…이창동 감독 "결국 사랑에 관한 영화"[연출의 변]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 주연 제작보고회 현장

배우 조인성(왼쪽부터), 조여정, 이창동 감독, 전도연, 설경구가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호텔나루에서 열린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 제작보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화상

이창동 감독이 25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 제작발표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이창동 감독이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을 통해 노동의 변화가 보통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그 속에서 삶을 지탱하는 사랑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 감독은 25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리에서 열린 ‘가능한 사랑’ 제작보고회에서 “대기업의 집단해고는 경제뿐 아니라 보통 사람의 삶 자체를 바꿀 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도연·설경구·조인성·조여정이 주연한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의 남편 등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 각자의 내면에 숨겨진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을 연출한 이 감독이 8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노동의 변화, 인간의 정체성마저 바꿀 것”

작품 속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가 쌍용자동차나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 사태를 연상시킨다는 질문에 이 감독은 “특정 기업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받아들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대기업에서 벌어진 집단해고 사태는 개인의 삶에 큰 후유증을 남겼고 사회적 파장도 컸다”며 “당시 이 사건이 우리 경제뿐 아니라 보통 사람의 삶 자체를 바꿀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이어 “우리 모두 노동자이며, 노동자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앞으로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따라 정체성도 달라지는 만큼 노동의 변화가 인간의 정체성마저 바꿀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이 문제를 영화로 다뤄야 할 필요성은 오히려 더욱 커졌다. 이제는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의 일자리마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이제는 노동 자체가 소멸할 수도 있는 시대에 이르렀다”며 “처음 영화를 구상했을 때보다 이 문제를 이야기해야 할 필연성이 더욱 강해졌다”고 봤다.

10여년 만에 되살아난 이야기…”삶을 이어가는 힘은 사랑”

‘가능한 사랑’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10여년이 걸렸다.

이 감독은 “영화를 시작하기 전 이 작품을 꼭 만들어야 하는지, 나와 관객 그리고 영화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한다”며 “확신이 서지 않으면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일종의 괴벽이 있다”고 털어놨다.

당초 이 작품은 대규모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의 삶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당시 감독과 ‘밀양’을 작업한 전도연과 ‘오아이스’의 설경구가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그러다 “해고 노동자의 삶을 정직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가 이미 있는데, 이를 굳이 극영화로 만들 이유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면서” 결국 제작을 중단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작품을 접게 돼 두 배우에게도 미안했다”고 돌이켰다.

이후 여러 차례 다른 형태로 영화화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는 이 이야기를 단편영화 ‘심장소리'(2022)로 만들어 마무리하려 했다. 이 작품에도 전도연과 설경구가 출연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 함께 각본을 쓴 오정미 작가의 제안으로 프로젝트가 되살아났다.

이 감독은 “오 작가가 해고 노동자 부부의 이야기에 또 다른 부부의 이야기를 겹쳐보자고 제안했다”며 “두 이야기가 만나면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에 새로운 결이 생기고 영화가 한층 풍부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조인성과 조여정이 합류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 속 한 장면. 연합뉴스

영화 ‘가능한 사랑’ 속 한 장면. 연합뉴스

영화 ‘가능한 사랑’ 속 한 장면. 뉴스1

영화 ‘가능한 사랑’ 속 한 장면. 연합뉴스

조여정, 다큐 감독 역할….감독의 시선과 입장 대변

전도연과 설경구의 캐스팅은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에서 드러나듯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설경구는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 촬영과 일정이 겹쳐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웠지만, 이 감독과 다시 작업할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출연을 결심했다.

조인성 역시 영화 ‘휴민트’와 ‘호프’를 연이어 촬영해 심신이 지친 상태였지만, 거장과 함께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시 힘을 냈다.

이 감독은 이날 조인성의 캐스팅에 대해 “영화 속에서 보이지 않는 구조를 지배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며 “힘이 있고 잘생긴 데다 매력적이고 모든 일에 능하지만,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이미지를 지닌 배우로 조인성밖에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출연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류승완 감독이 중간에서 다리를 잘 놓아줬다”고 덧붙였다.

조여정이 연기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이 감독의 시선과 입장을 상당 부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조여정과 함께 작업한 적은 없지만 섬세한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지닌 배우라고 생각했다”며 “다큐멘터리 감독인 캐릭터의 내면과 가깝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또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그 인물로 존재하려고 애썼다”고 평가했다.

“결국은, 사랑에 관한 영화”

이 감독은 이날 ‘가능한 사랑’은 어떤 작품이냐는 물음에 “제목 그대로,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답했다.

그는 “사랑에는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여러 형태가 있다. 영화를 만드는 마음과 사람을 향한 사랑까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사랑이 가능하고 그 사랑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쉽게 이뤄지는 사랑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목에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즉 불가능한 사랑의 의미도 담겨 있다”며 “영화를 통해 어떤 사랑이 가능한지, 사랑을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질문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또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모든 관계의 본질에는 사랑이 있다”며 “앞으로도 우리 삶을 변함없이 이어가게 하는 힘은 사랑의 관계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연출의 변 전문

한 편의 영화를 시작하기 전, 저는 이 영화가 저에게, 관객에게, 그리고 영화 그 자체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그런 확신을 얻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가능한 사랑>을 세상에 선보이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십여 년 전, 한국의 한 대기업에서 벌어진 대규모 정리해고와 그에 맞선 노동자들의 파업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사건은 한국 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저는 그 일을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한동안 그 영화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을 극영화로 옮겨낼 만큼 저는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이 이야기로 돌아오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정말 지킬 수 있으리라고는 저 자신도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그 후 몇 년 사이에 노동의 의미와 모습은 우리 삶 속에서 놀라울 만큼 달라졌습니다. 노동은 더 이상 특정한 일터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전체를 관통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와 만났을 때, 비로소 <가능한 사랑>은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노동이나 자본, 혹은 그 어떤 거대한 힘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려 하더라도, 인간은 끝내 자유를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그 마음, 어쩌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는 그 욕망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사랑, 그리고 결국 우리가 누군가에게 건네야 하는 사랑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감독 이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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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