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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통역해줘도… 동남아 청년들, 한국어에 푹 빠진 사연

K푸드·K팝 이어 한국어 관심 커

베트남, 초3부터 정규 교육 편성

인도에선 5분만에 TOPIK 마감

인니 대학 한국어과 경쟁률 40:1

청년들에 물어본 한국어의 매력

“끝까지 들어야 아는 존중의 언어”

습득 넘어 다른 학문 융합도 시도

원어민 교원·학생 교류는 과제로

지난달 29일 인도 뉴델리 소재 자와할랄 네루대의 한국학과 교실 앞에서 3학년 아스나씨가 서있다. 사진=프라갸 아와사티 통신원

“한국어는 대화할 때 마지막 부분까지 들어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상대방을 끝까지 존중해야 하는 언어인 것 같아요. 어렵긴 해도 그만큼 재미있어요.”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자카르타(인도네시아)·뉴델리(인도)=김준석 특파원·아울리아 마울리다 함다니 통신원·프라갸 아와사티 통신원】 전 세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국 배우기’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 가운데 K푸드, K팝 못지않게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AI)를 통한 번역이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음에도 동남아 지역에서는 한국어를 정규 수업과정으로 포함시키는 학교가 늘고 있고, 대학교에서도 한국어를 전공과목으로 선택해 미래를 함께 하려는 학생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어렵지만 너무도 재밌다”는 이들에게 한국어는 무엇일까. 본지가 오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동남아 주요 도시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을 통해 이들에게 비친 한국어의 다양한 모습과 어려움 등을 직접 들어봤다.

지난달 29일 인도네시아 최고 명문대학인 인도네시아국립대(우이대·UI)의 교실에서 만난 한국학과 2학년 피라 씨는 ‘한국어 말하기’ 수업을 마친 뒤 이같이 말했다. 피라씨는 “인도네시아어가 주어-동사-목적어 순서로 문장을 만드는 데 비해 한국어는 동사가 맨 뒤에 온다”며 “앞에서 어떤 단어가 나왔는지를 알아들었더라도 마지막 말이 나오기 전까지 정확한 의미를 확신하기 어려워 재밌다”고 했다.

같은 날 인도 뉴델리에서 만난 자와할랄 네루대(JNU) 한국학과 3학년 아스나씨는 “22개의 공용어와 1600여개의 방언이 있는 인도에서 한국어의 낯선 음소들은 진입장벽”이라면서 “된소리, 예사소리 등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정확하게 구별하고 발음하는 과정이 아직도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베트남 하노이 탕롱대에서 만난 한국어과 4학년 응우옌 응옥 린씨는 “높임말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호칭어가 많은 점도 특징”이라며 이를 가장 낮설게 꼽았다.

이계선 베트남 탕롱대 한국어과 학과장이 지난달 25일 베트남 탕롱대 한국어과 강의실에서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체면 문화와 관련된 관용어와 속담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초교 정규교육 등 각광받는 한국어

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에서는 한국어가 대학 전공을 넘어 정규 교육 과정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베트남은 2021년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승인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정규 교육이 가능하도록 한 데 이어 고등학교 졸업시험 과목에도 포함했다. 올해부터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3급 이상 취득 시 외국어 시험을 면제하고 점수를 환산해 반영하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학교 중 하나인 박닌영재고에서는 2024년 신설된 10·11학년 한국어반의 경쟁률이 5대 1을 웃돌았다. 학생들은 주 6시간 한국어를 배우며 원어민과 베트남인 교원이 수업을 맡고 있다. 천강희 하노이한국교육원 파견 교원은 “K콘텐츠를 넘어 한국 유학이나 심층 학습을 목적으로 반을 선택한 학생들이 많은 만큼 더욱 책임감을 갖고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동 하노이한국교육원장은 “현재 169개교에서 3만3000여명이 정규 교육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면서 “학생들이 유학·취업 등 다양한 기회를 통해 베트남을 이끌어갈 핵심 인재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인도에서도 한국어 열기는 뜨겁다. TOPIK 접수가 5분 만에 마감될 정도다. 2020년 국가교육정책(NEP)을 계기로 한국어가 제2외국어 권장 과목으로 채택되면서 현재 전국 24개 초·중등학교에서 조기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학과가 설치된 자와할랄 네루대의 경우 경쟁률이 3300대 1을 웃도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

인도네시아 역시 지난 6월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외국어 교육을 전면 의무화한 가운데 한국어가 주요 교육 대상 8대 언어에 공식 채택됐다. 인도네시아국립대(UI)와 가자마다대(UGM) 등 주요 4개 대학에 설치된 한국어과의 평균 경쟁률은 무려 40대 1에 육박한다.

■AI 번역시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

본지가 만난 학생들과 교육자들은 인공지능(AI) 통·번역이 보편화된 시대임에도 AI가 담아내지 못하는 언어의 문화적 맥락과 관계적 의미 때문에 한국어 학습의 필요성은 오히려 더욱 강조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인도네시아국립대 재학중인 알씨는 “한국어에는 비슷한 단어라도 특정 상황에 따라 쓸 수 없는 표현이 많은데 AI가 그런 미묘한 차이까지 완벽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면서 “통역은 단순히 말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게 아니라 말하는 이의 감정과 의도까지 전달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AI가 보편화될수록 한국어를 넘어 한국 자체를 이해하는 교육도 중요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국립대 의스 술라스트리 한국학과장은 “한국 외교사를 비롯해 역사·문화 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 네루대 카우샬 쿠마르 한국학센터장은 AI가 교육 현장에 가져온 변화에 주목했다. 쿠마르 센터장은 “AI 때문에 학생들의 과제는 쉬워졌지만 오히려 실제 시험이나 언어 사용 능력에서는 격차가 더 드러날 수 있다”며 “AI를 배척하기보다 교육 과정에 활용하되 학생들이 스스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함께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관련 다른 학문까지 열풍”

한류에서 시작된 한국어 학습 열풍은 이제 한국 관련 진로와 직업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 AI 번역이 보편화된 고용시장에서는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만으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베트남 대학가에서는 학제 간 융합이 시작됐다. 호찌민국립인사대는 한국경영무역 전공을 신설했고, 석사 과정에서는 한국어 능력보다 명확한 연구 방향을 우선시하는 등 전공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 인도네시아국립대 한국학과 역시 경영학과의 결합에 이어 향후 다양한 학문 분야와의 융합을 위한 커리큘럼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4년 내내 韓 교수 수업 못 듣기도”

그러나 동남아 주요 지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과 직접 부딪히며 언어와 문화를 익힐 기회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한국학 교육의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인도네시아국립대 술라스트리 학과장은 “과거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나 한국국제교류재단(KF) 등을 통해 원어민 교사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았으나 현지 전임 교수가 늘어나면서 예전만큼 원어민과 직접 소통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도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스나씨는 “어떤 학생들은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면서도 원어민 수업을 한 번도 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아쉬워했다.

학생 교류에도 제약이 있다. 인도 네루대 쿠마르 센터장은 “교환학생 제도가 운영 중이지만 제한된 정원과 부족한 협정 대학, 양국 간 등록금 체계 차이와 불충분한 장학 지원 등으로 인도 학생들이 한국행을 망설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우형민 KF베트남사무소장은 “KF는 해외 한국학 및 한국어 진흥을 위해 교수직 설치, 교원 고용 지원, 장학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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