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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점령한 中숏폼… 2분짜리 도파민에 K드라마 '흔들'

스마트폰 중심 콘텐츠 소비 급증

TV 기반 한류 롱폼 영향력 약화

숏폼-전자상거래 결합 증가세

콘텐츠커머스 시장 잠재력 감안

현지 맞춤형 전략 고민할 때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자카르타(인도네시아)=김준석 특파원 부 튀 티엔 통신원 아울리아 마울리다 함다니 통신원】 연인에게 배신당해 직장까지 잃은 여성은 가족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의문의 남성과 계약 약혼을 맺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던 이 남성은 사실 신분을 숨긴 억만장자였다. 두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에 빠질 무렵 남성의 정체가 드러나고, 여성은 배신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다소 황당한 설정의 이 드라마는 중국 숏폼 드라마 ‘성하분덕랍(영문명 Midsummer Pendra)’의 줄거리다. 회당 1~2분 분량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중국은 물론 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며 누적 조회수 44억회를 기록했다.

한때 중국 내수용 콘텐츠로 여겨졌던 숏폼 드라마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동남아 콘텐츠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에 최적화된 세로형 영상과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자극적인 전개를 앞세워 젊은 층은 물론 중장년층까지 사로잡고 있다.

‘K콘텐츠의 아성’으로 불리던 동남아에서도 콘텐츠 소비 지형이 빠르게 바뀌면서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숏폼 플랫폼 큰손 떠오른 동남아

숏폼 드라마는 동남아에서 중국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14일 글로벌 앱 분석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동남아 지역 숏폼 드라마 앱 다운로드는 약 8700만건으로 전 분기 대비 61% 증가했다. 전체 다운로드 비중은 라틴아메리카(27%)에 이어 24%로 2위를 기록했다. 중국계 플랫폼 숏티비(ShortTV)는 전체 다운로드의 46%를 동남아에서 기록했고, 신흥 강자로 떠오른 드라마웨이브 역시 전체 다운로드의 36%가 동남아에서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과 젊은 인구 구조, 상대적으로 낮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가입률이 동남아를 중국 플랫폼의 핵심 공략지로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과거 중국 게임 기업들이 동남아를 해외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던 것처럼 숏폼 드라마 플랫폼들도 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동남아 주요국 Z세대의 하루 평균 숏폼 콘텐츠 시청 시간은 60~90분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필리핀은 하루 평균 약 90분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베트남 역시 주간 숏폼 콘텐츠 시청 시간이 6시간30분에 달해 전통 TV 시청 시간을 거의 따라잡았다.

■한 편 볼 시간에 한 작품 정주행

본지가 만난 동남아 소비자들은 중국 숏폼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으로 빠른 전개와 접근성을 꼽았다.

50대 주부 호아씨는 “숏폼 드라마는 시작하자마자 갈등과 사건이 터지고 곧바로 해결되기 때문에 속이 시원하다”며 “한국 드라마 한 편 볼 시간에 작품 하나를 다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뜨리 루스티아니(51)는 “복잡한 서사를 따라가기보다 짧은 시간 안에 감정적 보상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며 “초창기 중국 숏폼 드라마는 엉성했지만 지금은 완성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20대 인도네시아 직장인 아멜리아는 “넷플릭스도 구독하지 않는데 숏폼 드라마는 자극적인 제목과 빠른 전개 때문에 나도 모르게 결제를 누르게 된다”고 말했다.

■AI로 제작비 낮추고 e커머스와 결합

중국 숏폼 드라마의 경쟁력은 단순히 자극적인 스토리에만 있지 않다. 배신, 복수, 재벌가 암투, 계약결혼, 출생의 비밀, 환생 등 검증된 ‘도파민 서사’를 반복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제작비는 획기적으로 낮췄다. AI를 활용하고 있어서다. 중국 제작사들은 바이트댄스의 ‘지멍’, 콰이쇼우의 ‘커링’ 등 생성형 AI 기반 영상 제작 도구를 활용해 제작비를 기존의 10분의 1 수준까지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제작사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중국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를 현지 배우처럼 바꾸는 현지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유통 구조 역시 강력하다. 이용자들은 틱톡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1~2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을 본 뒤 전용 앱으로 이동한다. 콘텐츠와 플랫폼, 알고리즘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구조다.

최근에는 숏폼 드라마가 전자상거래와 결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용자가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등장인물의 의상이나 화장품, 생활용품을 곧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방식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숏폼 콘텐츠와 라이브커머스가 결합된 ‘콘텐츠 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동남아에서도 관련 사업 확대가 예상된다.

지난 1·4분기 기준 동남아 지역의 인앱 결제 비중은 전체의 7% 수준에 그쳤지만, 경제 성장 속도와 시장 잠재력을 고려할 때 업계는 이를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보고 있다.

■”한류, 롱폼 드라마만으로는 부족”중국 숏폼 드라마의 공세는 동남아를 핵심 성장 시장으로 삼아 온 한국 콘텐츠 산업에도 적지 않은 위협이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에서 콘텐츠 소비가 TV 중심에서 스마트폰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중국 숏폼 드라마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며 “중국 플랫폼들은 단순히 중국 콘텐츠를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제작사와 협업해 동남아 콘텐츠를 제작하고 판권 수출, 전자상거래 연계 사업까지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한류 롱폼 드라마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며 “늦었지만 한국 역시 숏폼 콘텐츠 제작과 수출, 현지 맞춤형 콘텐츠 전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rejune1112@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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