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뉴스 이정규 기자]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이 강하게 맞서면서 갈등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세계유산 종묘(宗廟)의 경관 훼손 우려를 제기한 국가유산청과 개발 필요성을 앞세우는 서울시가 공개적으로 상반된 입장을 내놓은 데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요구하는 공식 문서를 전달하면서 사안은 단순 행정 분쟁을 넘어 정치적 파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앞서 국가유산청은 지난 3일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시가 세운 4구역의 최고높이를 기존 협의 기준인 71.9m에서 145m로 대폭 상향해 변경 고시했다”며 “유네스코 권고를 반영하지 않은 조치로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유산청은 2009년부터 서울시와 함께 종묘 주변 건축물 높이를 조정해 왔으며 종묘의 시야와 경관을 보존하는 것이 등재 당시 중요한 조건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가 종묘 주변 개발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공식 문서를 보내왔다”며 “영향평가가 완료될 때까지 사업승인을 중지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명시됐다”고 밝혔다.
이는 유네스코가 종묘의 경관 훼손을 우려해 한국 정부에 사실상 제동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서울시는 17일 즉각 반박하며 갈등이 정면 충돌로 이어졌다.
서울시는 입장문에서 “종묘의 세계유산 지위가 흔들리는 듯한 인식은 부적절하다”며 국가유산청의 문제 제기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
특히 “유산청은 9년 넘게 협의를 이어오면서도 종묘 보호 기준이 되는 완충구역조차 마련하지 않았고 논란이 커진 뒤에야 세계유산지구 지정을 추진했다”며 국가유산청의 책임 회피를 지적했다.
서울시는 또 “정밀 시뮬레이션과 건축 디자인 검토를 통해 종묘 경관 훼손이 없음을 이미 확인했다”며 “특정 사업만 겨냥한 과도한 주장으로 오히려 종묘의 세계유산 가치에 불필요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서울시는 국가유산청이 제안한 관계기관 협의에는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아 향후 협의 과정에서 조정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번 사안은 중앙정부와 서울시 간 정책 기조의 차이뿐 아니라 내년 총선과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 환경과도 맞물려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여권 일부에서는 “세계유산 보존은 국제적 책임”이라는 원칙론을 강조하는 반면, 서울시와 야권에서는 “도심 재생을 막는 보존 행정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세운지구 개발을 둘러싼 쟁점이 정치적 이슈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종묘는 1995년 한국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공간으로 유네스코는 등재 당시에도 “주변의 고층 건물 인허가로 경관이 훼손되지 않도록 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유네스코가 이번 사안을 공식 검토할 경우, 세운 4구역 개발뿐 아니라 서울시의 도심 개발 정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시와 국가유산청 사이의 대립은 세계유산 보존 원칙과 도시 개발 정책이라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비롯된 구조적 갈등으로 평가된다.
유네스코의 공식 권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입장 차이,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얽히며 논란은 더욱 복잡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향후 유네스코와의 협의 및 정부·서울시 간 조정 여부가 세운 4구역 사업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