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환율 이중 압박에 항공료 급등
여름 수요까지 ‘앞당겨진 예약 전쟁’
(출처=연합뉴스)
“골든위크 항공권 예약하셨나요. 몇 주 전에 나고야-부산이 45만원이었는데 좀 두니까 60만원, 지금은 72만원까지 올라버렸네요.”
“골든위크 때 일본에서 한국 지방 가는 항공권을 몇 달 전에 예약했는데 며칠 전에 운행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항공권 가격이 오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아예 운행 취소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일본 최대 연휴인 골든위크(Golden Week)를 앞두고 항공권 가격 급등과 감편 소식이 소셜미디어(SNS)와 재일 한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예년처럼 여행 수요가 집중되는 시기에 항공권 가격 추가 인상 전에 미리 출국하려는 수요까지 겹치면서 시장이 과열되는 양상이다. 여기에 유가 상승에 따른 항공사 비용 부담이 더해지며 항공권 가격 상승과 공급 축소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올해 골든위크는 4월 29일부터 5월 6일까지다. 쇼와의 날(4월 29일), 헌법기념일(5월 3일), 녹색의 날(5월 4일), 어린이날(5월 5일) 등 공휴일이 몰리면서 최대 8일간 쉴 수 있어 매년 여행 수요가 집중된다. 이 기간에는 항공·철도·숙박 수요가 급증하며 가격이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올해는 상황이 심각하다. 단순한 연휴 특수에 더해 국제 유가 급등이 겹치면서 항공권 가격 상승 압력이 예년보다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일본 여행업체 JTB는 골든위크 해외 여행객 수가 전년 대비 8.5% 증가한 57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이후 최대 규모다. 1인당 평균 여행 비용도 32만9000엔으로 2.2% 상승했다.
여행 수요는 특히 해외에서 두드러진다. HIS 조사에서는 올해 골든위크에 유럽행 여행객이 34.2% 급증하고, 아시아에서도 한국·대만·싱가포르행이 20%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요 확대의 배경에는 ‘유류할증료 인상 전 선예약’ 심리가 있다. 항공권에 부과되는 유류할증료가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여름 휴가 수요가 골든위크로 앞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유류할증료는 항공권 기본 운임과 별도로 부과되는 비용으로, 항공사의 연료비 상승분을 반영한다. 통상 싱가포르 항공유 가격과 환율을 기준으로 2개월마다 조정되며, 탑승일이 아닌 ‘발권 시점’을 기준으로 적용된다. 같은 항공편이라도 언제 결제했느냐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는 이유다.
일본항공(JAL) 홈페이지 내 유류할증료(연료 서차지) 부과 공지글. 출처=일본항공
전일본공수(ANA) 홈페이지 내 유류할증료(연료 서차지) 부과 관련 공지글. 출처=전일본공수
일본 항공사들도 인상에 나섰다. 일본항공(JAL)은 올해 6~7월 발권 기준 유럽·북미 노선 유류할증료를 약 5만엔 수준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전일본공수(ANA) 역시 비슷한 수준의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중동 정세 불안이 있다.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으로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항공유 가격은 전쟁 이전 대비 두 배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구체적으로 올해 3월 평균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29달러, 싱가포르 항공유 가격은 배럴당 194달러다. 싱가포르 항공유의 주간 평균 가격은 197달러였는데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 전보다 2배 가량 오른 가격이다.
여기에 엔화 약세까지 겹치면서 일본 항공사들의 비용 부담은 더욱 커졌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표시 운임이 곧 최종 가격’이라는 인식과 신칸센 등과의 경쟁 때문에 유류할증료 부과에 신중했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소니파이낸셜그룹의 와타나베 히로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상승과 엔저가 겹치면서 항공사들이 자체적으로 비용을 흡수하는 데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며 “유류할증료 확대는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7월 이후 항공유 가격 추이.출처=연합뉴스
항공권 가격 상승은 일본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샤먼항공, 중국연합항공 등이 국내선 유류할증료를 최대 6배 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했으며 중국국제항공 등 주요 항공사들도 비용 압박이 커지고 있다.
홍콩 캐세이퍼시픽은 장거리 노선 유류할증료를 약 34% 인상했고 호주 콴타스, 인도 에어인디아 등도 항공권 가격 인상이나 연료 서차지 도입에 나섰다. 유럽의 에어프랑스-KLM, SAS 스칸디나비아항공 역시 장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요금을 올리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가격을 끌어올리는 점도 특징이다. 중동 공역 불안으로 항공 노선이 우회되면서 운항 시간이 늘고 공급은 줄어든 반면 유럽 등 장거리 여행 수요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결국 여행객들은 더 비싼 항공권을 감수하거나 여행 시점을 앞당기는 선택에 내몰리고 있다. 실제로 “앞으로 더 비싸질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지금 갈 수 있을 때 가자’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유가 흐름이 이어질 경우 여름 휴가 시즌에는 항공권 가격 부담이 한층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동발 유가 충격이 일본의 대표적 연휴 풍경까지 바꾸고 있다는 평가다.
소니파이낸셜그룹의 미야지마 타카유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상승과 엔저가 지속될 경우 해외 대신 국내 여행으로 수요가 이동하거나 여행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