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째 구워 터지는 밤의 향은 유난히 깊은 계절감을 품고 있다.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시장 좌판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밤은 그 자체로 계절의 풍경이다. 그런데 이 작고 단단한 열매 안에는 놀라울 만큼의 영양이 숨어 있다. 흔히 ‘탄수화물이 많다’는 이유로 멀리하지만, 알고 보면 겨울철 면역력과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자연식 슈퍼푸드다.
밤은 주로 탄수화물(약 40%)로 구성돼 있지만, 단순한 ‘당분 덩어리’는 아니다. 비타민 C, 칼륨, 식이섬유, 폴리페놀 등 각종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비타민 C 함량이다. 생밤 100g에는 약 30mg이 들어 있어 사과보다 2배 많다. 대부분의 견과류는 열에 약한 비타민 C가 거의 없지만, 밤은 녹말이 많아 조리 시에도 상당량이 남는다. 구워 먹어도 면역력 강화와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이유다.
또한 밤은 혈압 조절에 유익한 칼륨의 보고다. 나트륨 배출을 도와 혈압 상승을 억제하고, 체내 수분 균형을 유지한다. 미국 심장학회(AMA)는 천연 칼륨 섭취를 늘리는 식단이 고혈압 예방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에 밤 속의 식이섬유는 변비를 예방하고, 포만감을 높여 과식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밤의 진짜 강점은 ‘균형’이다. 다른 견과류보다 지방이 적고, 포화지방이 거의 없어 열량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다. 100g당 열량이 180kcal로, 같은 양의 아몬드(570kcal)보다 3분의 1 수준이다. 그래서 심혈관 질환이 걱정되는 중장년층에게 좋은 간식으로 꼽힌다.
물론 먹는 법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밤은 생으로 먹을 경우 소화가 잘되지 않아 배탈이나 속쓰림을 유발할 수 있다. 탄수화물 중 하나인 전분질이 단단하게 응고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찌거나 구워서 전분이 ‘젤라틴화’되도록 해야 위에 부담이 덜하다. 또한 밤은 단맛이 강해 많이 먹으면 급격한 혈당 상승을 일으킬 수 있다. 당뇨병 환자는 한 번에 3~4알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밤은 다른 식재료와의 궁합도 중요하다. 콩과 함께 밥을 지으면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균형이 맞고, 꿀을 곁들이면 흡수율이 높아진다. 반면 고구마나 감자처럼 녹말이 많은 음식과 함께 먹으면 탄수화물 비중이 과해진다. 한방에서는 밤이 비위를 보하고 기를 채워주는 식품으로 분류되지만, 소화력이 약한 사람은 저녁 늦게 먹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최근에는 밤의 영양이 재조명되면서 ‘슈퍼넛츠(Super Nuts)’로 불리며 가공식품 시장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삶은 밤을 급속 냉동시킨 스낵, 밤을 갈아 넣은 단백질 쉐이크, 심지어 밤가루를 넣은 글루텐프리 빵까지 등장했다. 이는 단순한 전통 간식이 아닌, 현대식 건강식품으로의 변신을 보여주는 사례다.
밤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한 알 속에 담긴 영양의 밸런스와 자연의 단맛은, 몸이 지치는 계절에 더없이 정직한 에너지다. 찬 바람이 불 때 따끈한 군밤 한 줌을 손에 쥐면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겨울의 보약’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