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억위안 투입 ‘핑루운하’ 건설
북부만·난닝 잇는 해상루트 확보
한 달 누적 물동량 100만t 돌파
韓기업 ‘가격경쟁 딜레마’ 직면
새 노선 통해 운송비 절감 유리
공급망 대중국 의존 심화 우려도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중국 광시 좡족 자치구의 초대형 인공 수로 ‘핑루운하’가 전 구간 통항 한 달 만에 누적 물동량 100만t을 돌파하며 아세안 물류망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총 727억위안(약 14조원)이 투입된 길이 134.2km의 핑루운하는 최대 5000t급 선박이 통항하는 내륙 수로로 북부만과 난닝을 직선으로 연결한다. 이는 난닝항에서 베트남 남부 껀터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 전역으로 향하는 물류 노선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고 있다. 기존 철도망에 내륙에서 남중국해로 직행하는 뱃길까지 완성되면서 미·중 갈등 속 아세안 제조업 생태계를 장악하려는 중국의 지정학적 포석이 본격 가동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철도길 이어 바닷길 연결하는 中
20일 중국과 베트남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핑루운하는 통항 한 달 만에 누적 화물 운송량 100만t을 돌파했다. 운하 운영 측은 해안 항만 13곳의 접안시설을 대폭 업그레이드해 연간 3200만t의 하역 용량을 추가로 확보하며 물류 효율 극대화에 나섰다.
지난 9월16일 개통한 핑루운하는 중국 서남부의 물류 지도를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그동안 윈난·귀저우 등의 화물은 광둥성이나 북부만으로 1000~2000km 이상 우회하며 중국 동부 연안의 두 배에 달하는 물류비를 떠안아야 했다. 하지만 최대 5000t급 선박이 통항하는 내륙 수로가 북부만과 난닝을 직선으로 연결하면서, 철도에 이어 남중국해로 직접 통하는 해상 루트가 완성됐다. 중국 당국은 아세안행 화물의 운항 거리는 560㎞ 이상 단축됐고, 종합 물류비용은 18~30% 절감된 것으로 분석된다.
핑루 운하는 세 개의 핵심 물류 노선이 핵심이다. 첫 번째는 ‘중국 난닝항-베트남 껀터항’ 국제 직항로다. 개통 직후 난닝항을 떠난 첫 정기 컨테이너선 ‘북항난닝보룬’호(4900t급)는 베트남 하우강을 거쳐 껀터 까우 꾸이 항구에 성공적으로 입항했다. 기존 광둥성 우회 항로보다 운항 거리를 700㎞ 이상 줄였다. 강·바다 겸용 노선은 자동차 부품과 화학 원료 등을 단 7일 만에 베트남 남부 공장지대로 직행시킨다. 반대로 메콩델타의 신선한 열대 과일과 수산물은 이 냉동 컨테이너 루트를 통해 중국 내륙으로 역수출된다.
둘째는 철도와 수로의 결합을 상징하는 ‘중·라오 철도 연계 복합 노선’이다. 태국 북부나 라오스에서 철도로 중국 서남부에 도착한 화물이 운하 바지선으로 곧바로 환적돼 바다로 나가는 ‘강·바다·철도 복합 물류’가 본격 가동된 것이다. 이는 그간 출구 해로가 없어 발전이 제약됐던 내륙국 라오스에 완벽한 해상 진출로를 열어주었다.
셋째는 기존 해상 무역로가 지름길을 확보하며 강화된 ‘윈난·귀저우-인도네시아·필리핀 노선’이다. 이 노선을 통해 중국 서남부의 중간재(알루미늄·화학원료)와 동남아의 원자재(니켈·팜오일·구리·과일)가 직거래된다. 백색 알루미늄의 경우 t당 180위안이던 물류비가 t당 50위안 이상 절감돼 가격 경쟁력이 크게 높아진다. 반대로 동남아 원자재는 광둥성 우회 및 육로 이동(1000㎞ 이상)이 생략되면서 운송 기간이 7일에서 3일 이내로 단축되고, 신선 농산물 수출 손실률은 15% 이상 낮아진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필리핀의 대중국 원자재 수출 규모는 2030년까지 18% 이상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위치이 킨총 태국 카시콘은행 분석가는 지난달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평루운하를 지역 전체 운송 네트워크와 통합하는 것은 물류 효율을 높이고 비용을 낮출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경제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면서 “새로운 수출 해운 기회를 열어 상호 이익이 되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중국과 아세안 간의 긴밀한 경제 무역 관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남아 일자리 12만개 증발
그러나 이같은 중·아세안 무역의 외형적 성과 뒤에는 동남아 경제의 중국 예속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거대한 물류 허브를 장악한 중국이 아세안 역내 제조업 생태계를 소리 없이 잠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싱가포르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의 국제 물류 전문가 량 리앙 푹은 “중국산 저가 제조품이 베트남 북부와 캄보디아 등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국가로 대량 유입되면서 앞으로 3년 내 동남아 경공업 분야에서 12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감소할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아세안이 원자재만 공급하고 고부가 완제품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불균형한 종속 구조가 더 단단하게 고착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로빈 후 전 테마섹 임원은 최근 일본 닛케이 아시아 기고를 통해 “공장이 서방의 제재를 피해 베트남이나 태국으로 이동하더라도 이는 최종 조립 라인의 주소지만 바뀐 것일 뿐, 핵심 부품과 정밀 기계는 여전히 중국 본토의 공급망에 강력히 종속되어 있다”고 직시했다. 그는 이어 “핑루운하의 진짜 목적은 서방의 견제를 피해 아세안으로 향한 조립 공장들과 중국 본토 배후 공급망을 단단히 묶는 ‘물리적 쇠사슬’을 완성하는 데 있다”며 “서방이 고율 관세로 생산지 이전을 압박하더라도 중국은 이 운하를 통해 부품을 저렴하고 신속하게 조달하며 아세안 제조업 생태계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고도의 지정학적 포석”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변화는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게도 중대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태국과 베트남 등지에 자동차 및 전자 부품 생산 거점을 둔 한국 기업들은 새 노선을 활용해 청두·충칭 등 중국 서남부 내륙 소비 시장으로 진입하는 운송 비용을 절감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아세안 공급망의 대중국 의존도가 더욱 심화되는 한편,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이중의 딜레마에 직면하며 현지 시장 공략에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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