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 환경 속 조선인 2천416명 강제 동원·73명 사망 구리 광산 ‘선진 산업화’ 부각 전략…세 번째 대상 유력 속 한국 정부도 현지 조사 유네스코 산하 기구도 日움직임 주시…위령비 없이 방치된 조선인 희생자
강제징용 또 지우나…日군함도·사도 이어 아시오 세계유산 추진
혹독 환경 속 조선인 2천416명 강제 동원·73명 사망 구리 광산
‘선진 산업화’ 부각 전략…세 번째 대상 유력 속 한국 정부도 현지 조사
유네스코 산하 기구도 日움직임 주시…위령비 없이 방치된 조선인 희생자
(도쿄=연합뉴스) 조성미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의 약속을 깨고 조선인 강제노동이 이뤄진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상황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이뤄진 다른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도치기현 아시오광산이 그 대상으로,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인 군함도를 포함하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사도광산에 이어 강제징용의 역사에 침묵한 채 ‘선진적 산업화’ 과정만 부각하는 일본 정부의 세 번째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13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세계유산이 인류의 평화, 화해와 상생이라는 유네스코 정신에 이바지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네스코 세계유산 국제해석설명센터'(WHIPIC)도 일본의 아시오광산 등재 추진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아시오광산 갱도 재현 모습 (출처=연합뉴스)
◇ 아시오광산, 日세계유산 등재 진두지휘 ‘큰 손’이 콕 찍어
일본 도치기현 닛코시에 있는 아시오광산은 16세기부터 에도막부 직영으로 구리를 캐던 광산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1940년 8월부터 1945년 5월까지 조선인 2천416명이 강제로 동원됐고 수십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따르면 1944년 9월 이전에는 관이 알선한 형태로 조선인 노동자가 유입됐지만, 이후에는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이 혹독한 환경에서 일했다.
일본 시민단체인 도치기현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은 1997년 아시오광산 지역에서 폐렴이나 장티푸스, 낙반 사고에 의한 압사 등으로 사망한 조선인 수가 73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는 1살 미만의 유아 22명이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패전 이후 일본 후생노동성 지시로 지역 관청이 작성한 조선인 노동자 관련 조사 결과를 보면 조선인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에 주로 투입돼 부상과 사망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일본인과 임금 차별을 받았던 와중에 임금을 제대로 수령하지도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 등재에 이어 아시오광산과 조선인 1천명가량이 건설에 동원된 구로베댐 등을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초기 단계인 ‘세계유산 잠정일람표 후보 자산’에 포함하고 등재를 위한 물밑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군함도, 사도광산의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들 장소에서 이뤄졌던 조선인 강제노역의 역사를 지운 채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일본 세계유산 등록에 결정적 역할 한 가토 고코 (출처=연합뉴스)
특히 아시오광산은 일본이 역사의 과오를 지운 채 근대 생산 기술의 탁월성만을 부각하며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막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토 고코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장이 ‘다음 등재 추진 유산’이라고 콕 찍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토 센터장은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아버지 때부터 인연을 맺으며 일본 정계에 발이 넓은 인물로, 내각관방참여라는 직책을 맡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진두지휘했다.
등재 이후에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장을 맡고 있다.
현명호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024년 일본 근대산업유산 국제학술회의에서 가토 센터장 역할에 주목하면서 “전근대 생산기술의 탁월성을 강조한 기존의 일본 산업 유산과 달리 아시오광산에 관해서는 공해 방지 기술의 탁월성을 부각해 등재를 추진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해설했다.
◇ 세계유산 국제해석설명센터도 주목…위령비조차 없는 조선인 희생자
유네스코 산하 기구인 세계유산 국제해석설명센터가 아시오광산에 대한 일본 측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한국 정부도 사전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유산 관련 업무를 맡은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지난달 말 아시오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움직임을 살피고자 광산 일대에서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아시오광산은 동광업을 중심으로 일본의 15대 재벌 중 하나로 성장한 후루카와 재벌의 소유로, 후루카와가 지난해 8월 광산 지역에 문을 연 ‘아시오동산 기념관’이 광산 역사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등이 집중적으로 조사됐다.
조사단 관계자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과 사도광산이 산업화의 ‘영광’에서 서사가 끝난다면 아시오광산은 폐수 문제 등 공해 문제에 기업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지역 주민과 연대했다는 관점을 강조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후루카와 재벌이 세운 아시오광산 기념관 (출처=연합뉴스)
조사에 참여한 황선익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는 “최근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는 문화청보다 내각관방 등 중앙정부가 앞장서는 경향이 있다”며 “사도광산 이후 일본 정부가 어떤 유산을 중점적으로 등재 추진할지 예측하고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일본 정부가 어디를 중점적으로 추진할지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들겠지만, 아시오광산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지난해 후루카와 재벌이 기념관을 열어 광업 재해를 극복한 세계적인 유산이라고 홍보를 시작한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명호 역사위원은 “아시오광산에서는 조선인뿐 아니라 중국인과 일제에 포로로 잡힌 연합군 등도 강제노동에 종사한 사실이 있다”며 우리 정부가 일본의 등재 추진에 국제 공동 대응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중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아시오광산 인근에 번듯한 희생자 위령비를 세우고 국가적으로 추도하는 중국과 달리 조선인 희생자는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조선총련계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매년 정식 위령비가 아닌 희생자 묘표를 찾아가 추모하는 것 외엔 방치된 상황”이라며 공식 대응을 주문했다.
아시오광산에서 숨진 조선인들의 묘표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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