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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도 인생도 내 맘 같지 않아서"… 독하게 '커피·탄산'부터 끊어버린 4050 가장들 [어른의 오답노트]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팍팍한 세상, 궤도만큼은 잃지 않으려 거울 앞에서 홀로 굳은살을 박는 중년의 소리 없는 항전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파이낸셜뉴스] 화요일 밤 10시. 월요일의 혼란은 간신히 수습했지만, 수요일의 반환점은 아직 멀었고 주말은 까마득하다.

일주일 중 가장 존재감 없고 팍팍한 요일. 퇴근 후 거실 소파에 앉은 가장은 습관처럼 찾던 커피나 톡 쏘는 탄산음료 대신, 밍밍한 생수 한 잔을 들이켜며 스마트폰 주식 앱을 연다.

코스피와 나스닥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다며 축포를 터뜨리는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라며 야심 차게 담아둔 SMR(소형모듈원전) 관련주나 테슬라, 팔란티어 종목들은 파랗게 질린 채 소외되어 있다.

한숨을 쉬며 앱을 닫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가상의 골프 클럽을 쥔 채, 테이크어웨이부터 팔로스루까지 수십 번의 빈 스윙을 묵묵히 반복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커피를 끊어가며 몸을 통제하고,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주식 시장에 절망하다가, 기어코 거울 앞에서 골프 스윙의 각도를 교정하는 4050 가장들.

주말이면 7살 아들의 축구 훈련을 챙기며 “힘들어도 주저앉지 마!”라며 엄격한 코치를 자처하는 이 모든 일상적인 고군분투를, 심리학은 ‘통제력의 착각(Illusion of Control)’이라는 서글픈 방어 기제로 진단한다.

◇ ‘통제력의 착각’: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에 대한 소리 없는 항거

하버드대 심리학과 엘런 랭어(Ellen Langer) 교수가 주창한 ‘통제력의 착각’은, 우연이나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조차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려는 인간의 본능이다.

거대한 거시 경제의 흐름 속에서 곤두박질치는 내 주식 계좌, 상사의 변덕과 조직의 논리에 휩쓸리는 직장 생활. 4050 가장들이 딛고 선 현실은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무력한 세계다.

미국의 직무 스트레스 모델에 따르면, ‘업무 요구도’는 높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직무 통제력’이 낮을 때 인간은 극심한 번아웃에 빠진다. 한국의 4050 중간 관리자들은 이 스트레스 지표에서 늘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직무 스트레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4050 직장인 중 약 64.2%가 ‘업무 요구도는 높으나 직무 통제력은 낮은’ 고위험 스트레스군에 속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압도적인 무력감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년의 가장들은 자신이 ‘통제 가능한 아주 작은 세계’에 무섭도록 집착하기 시작한다.

독하게 카페인과 탄산을 끊어내는 식단 관리, 아이가 지쳐도 끝까지 뛰게 만드는 엄격한 체력 훈련, 그리고 클럽 페이스의 미세한 각도를 깎고 다듬는 골프 스윙 연습까지. 이 모든 것은 취미나 교육을 넘어, “내 삶의 운전대는 아직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 이름 없는 화요일, 빈 스윙의 숭고함

일주일 중 피로감이 가장 묵직하게 가라앉는 화요일 밤. 남들이 열광하는 주도주 대신 소외된 종목을 품고 때를 기다리는 그 고독한 투자처럼, 가장의 삶 역시 당장의 화려한 수익률 없이 묵묵히 버텨내야 하는 장기전이다.

오늘 밤, 거실 거울 앞에서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빈 스윙을 반복하는 당신의 모습은 결코 헛된 강박이 아니다.

그것은 거친 세상의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대한민국 4050 가장들이 매일 밤 써 내려가는 가장 정직하고 눈물겨운 오답노트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지만, 내일 다시 출근 구두를 신기 위해 묵묵히 스윙의 궤도를 수정하는 당신의 그 건조한 화요일 밤을 무한히 응원한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