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군국주의 잔재” 공세에 일본 “핵보유국이 할 말인가” 정면 반박
고이즈미 방위상, 헤그세스에 공개 질의…동맹 신뢰 시험대
미군 전략 재조정 속 ‘아시아 안보 공백’ 우려 확산
일본, 방위비 증액·역할 확대 가속…3대 안보문서 개정 앞두고 긴장 고조
지난 30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만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왼쪽)과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 출처=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40여 개국이 모여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일본과 중국이 일본의 방위력 강화와 역내 안보 질서를 놓고 정면 충돌했다. 특히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은 중국이 일본의 방위정책을 ‘신형 군국주의’로 규정한 데 대해 반박하는 한편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에게 미국의 ‘아시아 관여’ 지속 여부를 이례적으로 공개 질의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미국의 중동 집중과 이에 따른 아시아 내 안보 공백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일본이 보다 적극적인 메시지 관리와 방위력 확충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中 “패권주의, 지역 안보 위협” vs 日 “핵 보유국이 할 말인가”
31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요미우리신문,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영자신문 글로벌타임스, 싱가포르 중국 일간지 연합조보 등에 따르면 중국 대표단 단장인 멍샹칭 국방대 교수는 전날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에서 ‘전략적 안정에 대한 위협 관리’를 주제로 한 세션을 통해 “패권주의가 지역 안보를 위협한다”며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을 겨냥했다.
멍 교수는 특히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논의, 비핵 3원칙 수정 가능성, 동맹국 핵무기의 일본 배치 논의 등을 언급하며 “핵확산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군국주의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국가가 국제무대에서 다른 나라의 국방 협력을 논할 도덕적 권위를 가질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는 일본의 방위비 확대와 동맹국·우호국과의 방산 협력 강화 움직임에 대한 중국의 경계심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고이즈미 방위상은 즉각 반박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핵무기와 전략폭격기를 대량으로 보유한 나라가 있다”며 “그 어느 것도 보유하지 않은 일본을 신군국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중국을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어 “평화국가로서 일본의 행보는 지역과 국제사회에 의해 평가되고 있다”며 “허위 주장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불투명한 군비 증강과 의도가 보이지 않는 행동은 불신과 오산을 부른다”고 언급하며 중국의 군사 활동 확대를 우려했다.
그는 중국 국방부장이 아시아안보회의에 불참한 데 대해 “회담의 기회가 없었던 점은 솔직히 유감스럽다”며 “의견 차이가 있을수록 더욱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해 양국 간 대화 재개 필요성도 강조했다.
일본의 살상무기 수출 원칙적 허용과 관련해서는 “지역의 장비 협력에서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결의”라며 “일본은 역내 각국이 스스로를 지키고 지역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난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한 멍샹칭 중국 국방대 교수. 출처=연합뉴스
“美 아시아 관여 흔들리나” 日 이례적 공개 질문
특히 고이즈미 방위상은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에게 공개 질의를 던져 이목을 끌었다.
그는 전날 헤그세스 장관의 연설 직후 “미국의 관여는 흔들림 없다는 나의 이해가 맞는가”, “지역을 안심시키는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통상 동맹국 방위상이 미 국방장관에게 공개적으로 질문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이같은 발언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이 단순히 미국의 정책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 미국의 전략 불확실성과 역내 우려를 동시에 전달한 것으로 해석된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에 대해 “인도·태평양에서 중국 억지는 미국 방위 전략의 핵심 축”이라며 “이 지역에서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동시에 동맹국들에는 방위비 증액과 역할 확대를 거듭 요구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동맹국과 파트너국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5%까지 확대할 것을 재차 요구했다. 또 방위비 분담에 응하지 않는 동맹국과는 관계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회의는 필요 없다. 더 많은 함선과 잠수함이 필요하다”고 군비 증강을 촉구했다.
31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연설하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 출처=연합뉴스
美 전략 재조정에 ‘아시아 안보 공백’ 우려
미국의 이같은 요구 배경에는 중국의 군비 증강뿐 아니라 미국의 전략 재조정과 중동 개입 확대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요미우리신문은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가 “태평양 지역 안보 환경 악화에 대응하는 성격이지만 각국에는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동아시아에 배치된 미군 전력이 중동으로 이동하며 힘의 공백이 발생하고 미·중 정상회담 이후 대만 문제가 협상 카드로 거론되는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역내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같은 환경 속에서 일본 내부에서는 국가안보전략·국가방위전략·방위력정비계획 등 이른바 ‘3대 안보문서’ 개정을 앞두고 방위비 확대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의 2026회계연도 방위비 관련 예산은 약 10조6000억엔 규모로 GDP 대비 약 1.9% 수준이다.
일본은 2025회계연도에 추경을 통해 GDP 대비 2% 목표를 조기 달성한 바 있으며 방위비는 매년 증가 추세다.
자민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과 한국, 호주 등의 사례를 근거로 추가 증액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방위비 증액에는 재원 확보 문제가 뒤따른다.
자민당은 증세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납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향후 정치적 논쟁 여지도 남아 있다는 평가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