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대학·직장으로 스며든 AI]
질문과 검토 놓치지 않으려는 인간들
인공지능 기술보다 어려워진 ‘판단의 주도권’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사진=챗GPT
AI는 사람 대신 자료를 찾고, 문장을 만들고, 결론까지 제시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물을지 정하고, 어떤 답을 받아들일지 판단하며, 그 결과를 설명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5부에서는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파이낸셜뉴스] #. 4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회의 준비를 할 때 인공지능(AI)을 바로 켜지 않는다. 먼저 회의 안건을 종이에 적고, 자신이 이해한 쟁점과 확인해야 할 자료를 따로 표시한다. 그다음 AI에 자료 요약과 예상 질문을 요청한다.
처음부터 AI에 자료를 넣던 때와 순서가 달라졌다. AI가 만든 요약을 먼저 읽으면 회의 준비는 빨라졌지만, 막상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이 왜 그 결론을 골랐는지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A씨는 “AI 답변을 보고 나면 그 안에서 생각하게 된다”며 “먼저 제 판단을 적어둬야 나중에 무엇을 고쳤는지 보인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교사 B씨는 글쓰기 수행평가에서 학생들에게 AI 사용 여부보다 작성 과정을 묻는다. 어떤 자료를 읽었는지, 초안을 어떻게 고쳤는지, 최종 문장에 남긴 근거가 무엇인지 수업 중에 설명하게 한다. B씨는 “AI를 못 쓰게 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학생이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고 했다.
AI는 검색과 판단, 공부와 업무의 순서를 바꿨다. 이제 쟁점은 사용 여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AI가 만든 답을 먼저 받아보는 일이 익숙해진 상황에서 사람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근거를 따지고, 자기 말로 설명하는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중요해졌다. 이른바 AI 시대의 ‘지적 주도권’을 어디에 둘 것인지가 핵심 질문으로 떠오른 것이다.
스스로 생각했나 점검하는 학교 직장들
학교와 기업은 AI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방식과 일정 범위에서 허용하는 방식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문법 수정과 아이디어 정리는 허용하되 글 전체를 AI로 작성하는 것은 제한하거나, AI 사용 여부와 활용 범위를 과제와 보고서에 표시하도록 하는 식이다.
국내에서도 평가 과정에 AI 활용 기록을 남기도록 하는 방안이 나왔다. 교육부는 2025년 교육청과 함께 마련한 수행평가 인공지능 활용 관리 방안에서 AI 활용 범위 설정, 활용 과정 표기 지도, 학생 유의 사항 안내와 사전교육, 평가 설계 방향, 개인정보 보호를 주요 영역으로 제시했다.
관리 방안에는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생의 수행 과정을 직접 관찰하는 실시간 활동 중심 평가를 운영해 평가 신뢰성을 높인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학생이 AI를 썼는지 적발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도구를 어떤 목적으로 활용했고 결과를 어떻게 고쳤는지 보겠다는 접근이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난다. 보고서 초안과 회의록, 시장조사 자료를 AI가 먼저 정리하더라도 최종 설명은 사람이 해야 한다. AI가 만든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업무 속도는 빨라질 수 있지만, 왜 그 결론이 필요한지 설명하는 능력은 개인마다 달라질 수 있다.
A씨가 회의 전에 먼저 질문을 적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가 내놓은 답을 보며 생각을 시작하면 자신이 중요하게 본 기준과 AI가 제시한 기준이 뒤섞일 수 있다. 그는 최근 보고서마다 “내가 먼저 본 쟁점”과 “AI가 추가한 쟁점”을 나눠 표시하고 있다.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것, 인간의 사고 영역
해외 대학들도 AI 시대 평가 방식을 바꾸고 있다. 집에서 작성한 보고서나 에세이만으로는 학생이 직접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긴 글을 빠르게 만들어내면서 최종 제출물보다 작성 과정과 설명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런던정경대(LSE)는 2025~26학년도 생성형 AI 활용 기준에서 수업별로 AI 사용 범위를 구분하도록 했다. AI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 학습 보조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식, 사용 범위를 밝히는 조건으로 허용하는 방식이다. 과목의 학습 목표와 평가하려는 능력에 따라 기준을 달리 정하도록 한 것이다.
LSE는 구술평가 활용도 안내하고 있다. 발표나 보고서가 다른 자료에서 왔거나 AI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질문과 답변 과정을 통해 학생이 내용을 이해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제출물에 대해 짧게 답하거나, 자료를 고른 이유와 결론을 만든 과정을 말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런 평가는 학생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미리 다듬은 답을 내는 대신 즉석에서 이해를 확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읽기와 설명, 판단의 시간이 드러난다. AI가 문장을 만들 수 있어도, 왜 그 문장이 필요한지 설명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는다. AI 시대 인간의 사고 능력이 중요한 대목이다.
기업도 같은 문제를 마주한다. AI가 만든 보고서가 아무리 깔끔해도 회의에서 질문을 받으면 담당자가 자료의 출처와 해석을 설명해야 한다. AI가 초안을 대신 쓰는 시대에는 보고서를 쓴 사람이 아니라 보고서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초안·중간발표·구두질문까지 본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사진=챗GPT
AI 시대의 평가는 한 번에 완성된 결과물보다 중간 과정을 확인하는 쪽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구계획서, 초안, 중간 발표, 최종 보고서를 단계별로 제출하게 하거나 포트폴리오를 통해 수정 과정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학생이 어떤 자료를 읽었는지, 어떤 질문을 거쳐 결론을 냈는지, AI가 제시한 답변 가운데 무엇을 고쳤는지를 평가에 포함하는 것이다. AI가 초안을 만들 수 있는 상황에서는 최종 문장보다 그 문장이 만들어진 경로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영국 디지털 교육기관 Jisc는 2025년 보고서에서 생성형 AI가 고등교육 평가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구술평가, 연구 과정 확인, 포트폴리오, 과정 중심 평가를 주요 방식으로 제시했다. 학생이 완성된 글을 제출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이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도록 하는 접근이다.
이 방식은 AI 사용을 전제로 한다. 학생이 AI를 전혀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보다, AI가 만든 결과를 어떻게 다뤘는지 확인한다. 초안 작성에 AI를 썼다면 어떤 문장을 고쳤는지, 자료 검색에 AI를 썼다면 출처를 어떻게 검증했는지, 결론에 AI 제안을 반영했다면 왜 받아들였는지를 묻는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을 보는 평가는 학교 밖에서도 의미가 있다. 직장에서도 AI가 만든 보고서와 회의자료를 쓰는 일이 늘면서, 결과물을 제출한 사람이 근거와 판단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AI 시대의 사고력은 AI를 쓰지 않는 능력만이 아니라, AI가 만든 답을 자기 판단으로 다시 다루는 능력까지 포함하게 됐다.
AI를 끄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AI 사용을 제한하는 시간은 기술에 대한 거부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암기와 계산 능력을 확인해야 하는 시험, 직접 글쓰기와 발표를 평가하는 과제, 실험과 토론처럼 현장 참여가 중요한 수업에서는 AI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
반대로 실제 업무에서 AI 활용 능력이 필요한 과목이나 직무는 사용을 허용하되, 결과물을 검증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평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과제와 업무에 같은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확인하려는지에 맞춰 AI 사용 범위와 설명 책임을 정하는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위원회가 2026년 제시한 AI 리터러시 틀도 인간의 주도성을 강조한다. 이 틀은 학생들이 AI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언제 AI에 맡기고 언제 사람이 통제권을 되찾아야 하는지 판단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유네스코도 생성형 AI의 교육 활용에서 인간 중심 접근을 강조했다. 유네스코의 ‘생성형 AI 교육·연구 지침’은 생성형 AI가 학습과 평가 방식에 장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교육기관이 지식과 학습 결과, 평가 방식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AI가 만든 요약과 2차 정보에 기대면 직접 자료를 관찰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은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AI 결과물의 정확성과 편향 가능성을 확인하고, 사람과 AI가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평가에 포함하면 AI 사용 자체도 학습과 업무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AI 없어도 설명할 수 있나…’사고’ 통제권 유지해야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사진=챗GPT
AI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검색, 문서 작성, 회의 준비, 학습 과정이 AI를 전제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AI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지는 다른 질문이다. 답을 보기 전에 무엇을 묻고 싶은지 정하고, 답을 받은 뒤에는 무엇을 믿을지 판단하며, 마지막에는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직장인 A씨는 회의 전 AI를 켜지 않는 시간을 일부러 만든다. 먼저 자료를 읽고 쟁점을 적은 뒤 AI 답변을 확인한다. 교사 B씨는 학생들에게 AI가 만든 문장보다 자신이 고친 이유를 말하게 한다. 두 사람의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AI가 답을 내놓기 전과 후에 사람의 판단을 남긴다는 데 있다.
결국 AI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결국 판단의 주도권을 사람이 계속 가질 수 있느냐로 이어진다. AI가 답을 빠르게 제시하더라도 무엇을 물을지 정하고, 그 답을 받아들일지 따지며, 결과에 책임지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전문가는 알고리즘이 일상 판단을 대신하는 환경일수록 사람이 통제권을 놓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판단과 의사결정’ 연구자인 게르트 기거렌처 막스플랑크 인간개발연구소 명예소장은 저서 ‘스마트한 세상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법(How to Stay Smart in a Smart World)’에서 “알고리즘이 일상 판단에 깊숙이 들어온 시대일수록 사람이 기술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거나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 스스로 통제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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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