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요양급여 사기·성과 도용·음주측정 4건 파기… “그 사정만으로는 부족”
대법원 대법정 로비. 사진=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대법원이 지난달 하급심 판결 4건을 뒤집었다. 하급심이 겉으로 드러난 사실 하나로 법적 요건이 채워졌다고 보고 결론을 내렸다는 이유에서다. 절도와 요양급여 사기, 기술 성과 도용, 음주측정까지 다룬 사안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파기 이유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한 단계가 더 증명돼야 한다’는 한 가지로 모였다.
4일 파이낸셜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1일 3건, 지난달 8일 1건의 하급심 판단을 파기했다. 모두 하급심이 인정한 사실관계는 건드리지 않은 채, 그 사실에서 법적 결론으로 넘어가는 추론에 제동을 걸었다. 점유 기간과 행위의 비중, 경과한 햇수, 당사자의 귀책이 곧장 법적 결론으로 이어진 자리마다 따로 증명될 요건이 있다고 본 것이다. 상고심이 법률심이라는 본질이 드러난 대목이다.
절도 사건이 가장 선명하다. 피고인은 절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2025년 1월 8일 부산에서 경찰이 배우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자신 명의의 은행·카드 명세서 30장을 압수하자, 압수 대상이 아니라고 항의하며 영장 원본 등을 가져가 “명세서를 돌려주면 서류도 돌려주겠다”며 반환을 거부한 혐의다. 2심은 반환 요청을 거부하고 상당 기간 점유한 이상 일시적 사용으로 볼 수 없다며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달 1일 장시간 점유한 점은 인정되나 그것만으로 불법영득의사를 단정하기 어렵다며 “자기의 소유물과 같이 ‘그 경제적 용법에 따라’ 이용·처분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음이 추가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공무집행방해 부분은 상고가 기각됐다.
방향이 반대인 사건도 있다. 서울 관악구 한 병원 원장은 의료기기 판매업자를 인공 고관절 반치환 수술에 참여시키고도 자신이 단독으로 수술한 것처럼 꾸며 2015년부터 2019년까지 23회에 걸쳐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급여비용 9538만여원을 받아 챈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2심은 판매업자가 맡은 일이 수술 부위를 벌리는 도구를 잡아주는 극히 일부의 진료보조행위라며 편취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달 1일 비의료인이 의료인과 함께 의료행위를 한 이상 요양급여비용을 적법하게 받을 자격이 없고, 이를 숨긴 청구는 기망에 해당한다고 봤다. 행위의 비중이 작다는 사정이 곧바로 고의를 지운다고 본 추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술 분쟁에서도 같은 구조가 나타났다. 철도차량용 변압기 제작사가 발주처에 준 도면으로 발주처가 모방 변압기를 만들어 납품했다며 낸 부정경쟁행위금지 등 청구 소송이다. 2심은 기술 성과의 보호기간을 최초 납품 시점부터 10년으로 잡고 그 뒤 계약에 따른 납품은 책임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지난달 8일 “일률적으로 그 보호기간을 제한할 수 있다거나 제4 납품행위 당시 이미 보호기간이 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기간이 지났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기술이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공영역에 들어갔는지를 따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책임이 인정된 납품과 면책된 납품의 종기 간격이 2개월뿐이라고 지적했다.
음주운전 사건은 절차 쪽이다.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다. 경찰이 지구대 벤치에 잠든 운전자에게 입을 헹굴 물을 주지 않고 호흡측정을 했는데, 2심은 운전자가 갑자기 일어나 측정기를 분 탓이라며 신빙성 문제로 봤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달 1일 입헹굼물 제공을 정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대외적 구속력 있는 법규명령이라며 그 절차를 따르지 않은 호흡측정 결과는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배제되어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런 교정이 어떤 통로로 이뤄지는지는 최근 국회 논쟁과 맞물린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사법연수원 23기)은 지난달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항소심 판결에 관한 질의에 “대법원은 하급심 재판에 관여하지 않는다”며 “법리적인 문제가 있다면 상소 제도를 통해 충분히 시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날 국감에서 여당 이성윤 의원은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만이 답”이라고 했고, 김용민 의원은 “대법원장 1인에게 사법부의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지=생성형 AI 프로그램으로 제작
[email protected]
김동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