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 더 일했으면”…5060세대 최대 화두 ‘정년연장’]
정년연장은 끝없는 화두다. 은퇴시기를 1년만 늦춰도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늘릴 수 있고, 건강보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청년고용과 경영계의 반대를 생각하면 ’65세 정년’까지는 갈 길이 멀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시민이 일자리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김태호 씨(57·가명)는 정년연장 뉴스가 나올 때마다 화면을 유심히 본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마냥 기대하기는 어렵다. 내년이면 58세, 회사 임금피크제는 이미 시작됐다. 급여는 예전 같지 않고, 정년까지 남은 시간도 길어야 2년 남짓이다.
김 씨가 바라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월급이 조금 줄더라도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몇 년만 더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정도다. 예전에는 연봉이 얼마인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소득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가 더 절박한 문제가 됐다.
정년연장 논의는 법과 제도의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비 은퇴자에게는 다르다. 국민연금이 나오기 전까지 소득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의 문제다. 1년 더 일할 수 있느냐, 3년 더 버틸 수 있느냐가 노후 현금흐름을 가른다.
정년 1년의 가격
정년 이후에도 1년 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숫자로는 어느 정도 혜택이 있을까.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4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통계 기준으로 50대의 월평균 소득은 445만원이다. 월 450만원을 기준으로 1년을 더 일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는 생각보다 묵직하다. 일단 세전 연봉만 5400만원이 생긴다. 퇴직연금도 최소 450만원 더 쌓인다.
회사가 대신 부담하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까지 더하면 눈에 보이는 경제적 효과는 6300만원 안팎으로 커진다.
물론 이 돈이 모두 통장에 꽂히는 것은 아니다. 세금과 본인 부담 사회보험료가 빠지고 회사 부담분은 직접 받는 현금도 아니다.
그래도 의미는 작지 않다.
은퇴를 1년 늦춘다는 것은 월급을 1년 더 받는 일만이 아니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2개월 늘고, 직장가입자 건강보험 자격이 유지되고, 국민연금이 나오기 전까지의 소득 공백도 1년 줄어든다.
정년 1년 연장시 얻는 경제적 효과(월급 450만원 기준) /그래픽=정기현 기자
이 숫자 때문에 정년연장 논의는 예비 은퇴자들에게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년이 1년만 늦춰져도 대출 상환을 1년 더 할 수 있고 자녀 결혼자금이나 부모 부양비를 버틸 여지도 생긴다. 퇴직 뒤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며 맞닥뜨릴 건강보험료 부담도 1년 늦출 수 있다.
5년 더 일하면 숫자는 커진다
정년이 65세까지 늘어나고 실제로 5년을 더 일할 수 있다면 효과는 훨씬 크다.
같은 임금 기준으로 세전 임금만 2억7000만원이다. 퇴직연금은 최소 2250만원 더 쌓인다. 회사가 부담하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까지 합치면 총보상 기준 차이는 더 커진다.
물론 이는 이상적인 수치다. 65세까지 일한다고 해서 50대 때 받던 월급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임금피크제가 진행 또는 조정되거나 재고용 방식으로 바뀌면 임금이 낮아질 수 있다. 그래도 매달 꾸준하게 일정 금액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다면 소득 공백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김동엽 상무는
“노후 재무에서 가장 강력한 변수는 투자수익률이 아니라 소득 기간”
이라며 “예금 이자 수준을 고려하면 한 달에 100만원, 200만원을 버는 것은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실례로 월 150만원을 5년 벌면 9000만원이다. 월 200만원이면 1억2000만원이다. 예금 이자로 만들기 어려운 금액이다. 정년연장이든 재고용이든, 결국 핵심은 소득의 꼬리를 얼마나 길게 만들 수 있느냐다.
더 중요한 것은 정년연장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
이다. 일을 더 하면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늘고, 퇴직 뒤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시점도 늦어진다. 반대로 소득 공백을 버티지 못해 조기노령연금을 선택하면 1년 앞당길 때마다 연금이 6%씩 줄고, 5년이면 평생 30%가 줄어든다.
정년연장을 단순히 월급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1968년생은 아쉽고 1977년생은 기대
6·3 지방선거가 끝나면서 정년연장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방식은 단계적 연장이다. 2026년 6월 현재 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 안팎에서 논의되는 방안은 2029년부터 법정 정년을 61세로 올리고, 이후 2년마다 1세씩 높여 2037년에 65세에 도달하는 구조다. 다만 이는 아직 확정된 법안이 아니다.
이 방식이 적용되면 출생연도별 체감 효과는 크게 갈린다.
출생연도 만 60세 도달 시점 예상 적용 정년
1968년생 이전 2028년 이전 제한적
1969~1970년생 2029~2030년 61세
1971~1972년생 2031~2032년 62세
1973~1974년생 2033~2034년 63세
1975~1976년생 2035~2036년 64세
1977년생 이후 2037년 이후 65세
실제 수혜 폭은 시행일, 생일, 경과규정, 이미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근로자 처리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년연장과 재고용을 병행할 경우 체감 효과는 더 줄어들 수 있다.
경영계의 반대
노동계가 속도전을 요구할수록 경영계의 저항은 거세진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정년이 65세로 늘어날 경우, 도입 5년 차에 60~64세 정규직 근로자 59만명을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30조2000억원에 달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일률적 정년연장 대신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주장
한다. 호봉제 비율이 63%(1000인 이상 사업장)에 달하는 상황에서 임금체계 개편 없이 정년만 늘리면 기업 부담이 청년 고용 위축으로 전가된다는 논리다.
류기정 경총 총괄전무는 지난달 학술세미나에서 “일률적인 법정 정년연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키고 청년 신규채용을 축소해 세대 간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을 들여다보면 이 주장이 단순한 반대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은 2006년부터 기업이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도록 의무화했지만, 정년연장·정년폐지·계속고용 가운데 기업이 선택하도록 했다. 실제로 재고용 방식을 택한 기업이 65.1%다. 임금을 낮춰 계속 일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냥 쉼’ 아들·딸을 보면 복잡해지는 심경
지난달 10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선경도서관에서 열린 ‘6월 반도체 분야 일자리 두드림 구인·구직의 날’ 행사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게시판을 보고 있다. 2026.6.10/뉴스1
정년연장에 대한 은퇴 준비자들의 기대는 크다. 노후만 보면 더 오래 일하고 싶다.
하지만 자녀가 취업 문을 두드리는 시기라면 마음은 복잡해진다.
부모 세대가 일자리를 더 오래 지키는 사이 자녀 세대의 문이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
이 따라붙는다.
실제 청년 고용 상황도 녹록지 않다. 국가데이터처 2026년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3.8%, 실업률은 7.2%다. 청년 취업자는 25만5000명 급감해 코로나19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그냥 쉬었음’ 청년 인구는 4개월 연속 줄고 있지만 여전히 38만4000명 수준이다.
이런 우려가 단순한 감정만은 아니다.
한국은행 조사국이 올해 4월 발표한 BOK 이슈노트(제2025-8호)는 2016년 정년연장이 고령층 고용을 늘리는 효과는 있었지만, 혜택이 유노조·대기업 일자리에 집중됐고 청년고용 위축과 조기퇴직 증가 같은 부작용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고령 근로자가 1명 늘어날 때 청년 근로자는 0.4~1.5명 줄었다는 추정도 제시했다.
결국 쟁점은 ‘더 오래 일하느냐, 말 것이냐’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어떤 임금으로,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계속 일하게 할 것인가
가 중요해진다.
법이 닿지 않는 사람들
정년연장 논의가 커질수록 5060세대의 기대도 커진다. 하지만 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같은 속도로 닿는 것은 아니다.
이미 60세에 가까운 사람은 직접 혜택이 제한적일 수 있고 재고용 방식이 채택되면 회사의 판단에 따라 결과가 갈릴 수도 있다. 임금피크제나 직무 조정으로 실제 월급이 줄어드는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법정 정년보다 먼저 주된 일자리를 떠난다.
국가데이터처의 고령층 부가조사에서도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둔 평균 연령은 법정 정년보다 낮게 나타난다. 반면 55~79세 고령층 상당수는 앞으로도 계속 일하고 싶다고 답한다. 일할 의지는 있지만, 주된 일자리는 일찍 끝나는 현실이 정년연장 논의 뒤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정년연장을 둘러싼 관심은 결국 회사 안팎의 현실로 내려온다.
우리 회사에 정년 뒤 재고용이나 촉탁직 사례가 있는지, 임금피크제 이후 실제 월급은 얼마나 줄었는지, 선배들은 어떤 조건으로 남았는지에 따라 같은 법도 다르게 체감
될 수 있다.
회사 밖에서도 비슷하다. 50대 때 받던 월급을 다시 찾기는 어렵지만, 월 100만~150만원의 소득을 꾸준히 만들 수 있다면 소득 공백은 그만큼 줄어든다.
정년 뉴스보다 먼저 꺼내야 할 내 계산서
정년연장 법이 통과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임금피크제로 말년 급여가 줄 수 있다. 재고용형이 채택되면 기업의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주된 일자리를 떠난 사람에게는 늦게 도착한 뉴스일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년 뉴스만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내 계산서를 먼저 꺼내야 한다.
국민연금은 몇 세부터 얼마가 나오는지, 퇴직연금은 월 얼마씩 꺼내 쓸 수 있는지, 건강보험료는 은퇴 뒤 어떻게 바뀌는지 확인해야 한다. 대출 원리금, 자녀 지원, 부모 부양비, 의료비도 함께 봐야 한다.
정년 뉴스는 중요하다. 그러나 내 노후를 지키는 것은 뉴스가 아니라 계산서다. 60세 이후에도 어떤 방식으로 소득을 이어갈 수 있는지, 그 답을 먼저 써야 한다.
‘은퇴=퇴장’이라는 낡은 공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평균수명 83세 시대, X세대가 본격적인 은퇴를 맞이하면서 기존의 은퇴 개념 자체가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담은
[은퇴자 X의 설계]
가 매주 토요일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김준혁 기자
로딩 중…
로딩 중…
로딩 중…
레이어
“77년생은 정년 65세?”…월급 200만원도 다니겠지만, ‘그냥 쉼’ 아들이 밟히는 ‘출근 父’ [은퇴자 X의 설계]
정년연장 논의는 법과 제도의 문제처럼 보인다.
정년연장이든 재고용이든, 결국 핵심은 소득의 꼬리를 얼마나 길게 만들 수 있느냐다.
더 중요한 것은 정년연장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