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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암 이제는 희귀하지 않아… 국가 차원 인프라로 접근해야"[Weekend 헬스]

김준혁 국립암센터 희귀암연구사업단장

국내 등록 61개 암종 중 43개가 희귀암

환자 수 적으니 민간 투자·연구개발 부진

‘시장의 실패’ 넘어선 국가 직접 개입 필요

국립암센터, 네트워크 ‘컨트롤타워’돼야

데이터 수집·연구 연결하는 플랫폼 필요

예산 보다 ‘시간’이 관건… 장기 유지 중요

김준혁 국립암센터 희귀암연구사업단장이 사업단의 임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제공

개별 암종만 놓고 보면 환자 수가 적은 희귀암은 오랫동안 암 연구와 치료의 주변부에 머물러 왔다. 환자 수가 적다 보니 민간 제약·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는 연구개발 투자와 수익 회수가 쉽지 않고, 의료기관 역시 충분한 임상 경험을 축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귀암을 전체 암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으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내 암등록통계 기준 전체 61개 암종 가운데 희귀암은 43개에 이르며, 개별 암종의 발생 빈도는 낮지만 희귀암 전체로 보면 전체 암의 약 20~25%를 차지한다. 암 환자 4~5명 가운데 1명이 희귀암 환자인 셈이다.

희귀암을 단순히 ‘환자가 적은 암’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히려 환자가 적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 연구와 신약 접근성에서 구조적인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국가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립암센터 희귀암연구사업단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귀암을 개별 병원이나 연구자의 과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연구·진료 인프라로 접근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환자 적다고 치료 기회까지 적어져선 안 돼”

13일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준혁 국립암센터 희귀암연구사업단장은 희귀암에 국가가 직접 개입해야하는 이유로 시장의 실패를 꼽았다.

김 단장은 “민간기업의 연구개발은 기본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환자와 시장이 존재해야 투자와 회수가 가능한데, 희귀암은 각각의 암종별 환자 수가 적어 상업적 유인이 낮다”며 “때문에 연구개발(R&D) 투자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신약 개발 역시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시장 논리가 환자의 치료 기회까지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희귀암 환자들은 질환 자체의 고통뿐 아니라 정보 부족과 연구 부족, 전문 진료 접근성의 한계까지 동시에 겪는다. 진단이 늦어지거나 경험이 많은 의료진을 찾기 어렵고, 적합한 임상시험이나 새로운 치료제에 접근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김 단장은 “사업단은 이를 두고 희귀암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치료제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진단받을 권리’,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 ‘새로운 치료 기회를 만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희귀암 연구는 한 병원이나 한 연구자가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개별 의료기관에서는 환자 수가 충분하지 않아 임상연구를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전국 단위의 환자 데이터를 모으고 의료기관과 연구자를 연결하는 국가 차원의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국립암센터가 희귀암 분야에서 맡아야 할 역할 역시 일반적인 대형병원의 역할과는 다르다.

희귀암 분야에서 국립암센터의 경쟁력은 가장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의료기관과 연구자를 연결하고, 개별 기관이 구축하기 어려운 연구·데이터 인프라를 국가 차원에서 책임지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전국 단위 협력체계다. 수도권 대형병원뿐 아니라 권역암센터와 지역 의료기관, 관련 학회와 연구자들이 공통의 기준으로 환자와 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국립암센터가 모든 희귀암 환자를 한곳으로 모으는 방식보다는 전국에 흩어진 전문성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국가 표준을 만드는 일이다. 희귀암은 진단 기준과 병리 판독, 검체 수집, 임상정보 기록, 추적관찰 방식 등이 의료기관별로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여러 기관이 연구에 참여하더라도 데이터가 표준화돼 있지 않으면 이를 하나의 연구자원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세 번째는 민간에서 투자하기 어려운 연구를 지속하는 역할이다. 단기간에 높은 수준의 연구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미충족 의료수요가 큰 희귀암을 선정해 기초연구부터 바이오마커 개발, 임상시험까지 장기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사업단은 지난 2021년 출범한 이후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2024년부터 2기 사업을 통해 기초·중개연구와 임상연구가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연구의 시간’과 ‘사업의 시간’은 달라

희귀암 연구의 가장 큰 현실적 어려움은 단순히 예산 규모에만 있지 않다. 희귀암 연구에 필요한 시간과 정부 연구사업이 운영되는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일반적인 연구과제는 일정 기간 안에 환자를 모집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논문이나 특허 등 성과를 내는 구조다. 하지만 희귀암은 한 기관에서 확보할 수 있는 환자 수 자체가 적다. 충분한 규모의 코호트를 구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김 단장은 “희귀암 연구가 실제 치료 발전으로 이어지려면 환자의 진단부터 치료, 재발, 전이, 생존까지 장기간 추적하면서 검체와 임상정보를 축적해야 한다”며 “이런 연구에는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게 현장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연구사업이 몇 년 단위로 종료되거나 단계별 예산이 크게 달라지면 어렵게 구축한 연구 네트워크와 인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사업단은 사업단 관리와 데이터 수집, 바이오뱅크, 연구인력 등 기본 인프라에 대한 지원과 성과 및 필요성에 따라 선정하는 경쟁형 연구과제를 분리하는 ‘이중 구조’를 제안한다.

희귀암 연구를 매번 새롭게 시작하는 단기 과제가 아니라 국가가 10년 이상 유지해야 할 필수 연구 인프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와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한 출발점은 의외로 단순하다. ‘누가 희귀암 환자인가’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국가암등록통계라는 우수한 암등록체계가 있지만 희귀암을 어떤 기준으로 정의하고 어떤 암종을 포함할지에 대한 국가적 기준은 충분히 정립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분류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연구기관과 정책사업마다 서로 다른 환자군을 적용할 수 있다. 같은 암을 두고 한 사업에서는 희귀암으로 분류하고 다른 사업에서는 제외하는 일이 생기면 통계와 연구 결과를 직접 비교하기도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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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