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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의 갈매기, 절망 이면에 여전한 희망[엄현희의 생각하는 극장]

이토록 짙고 깊은 감성의 우울이라니. 모노톤의 무대에서 펼쳐진 인간들의 드라마는 두터운 첼로 현의 블루스를 떠오르게 한다. 티켓링크 1975 씨어터에서 시작한 연극 ‘갈매기’ 이야기다. 예술과 삶에 대한 갈망과 좌절이 깊은 선율과 리듬 속에서 무게감 있는 호흡으로 천천히 또 서정적으로 울려 퍼진다.

‘갈매기’는 ‘바냐 삼촌’ ‘반야 아재’를 잇는 1000석 규모 대극장에 올라간 안톤 체호프의 작품이다. 최근 대극장 연극은 연출가의 동시대적 해석을 강하게 넣기보다, 작품 자체의 의미를 표면화 해 쉽고 명확하게 만드는 경향을 보여준다. ‘갈매기’는 텍스트의 의미와 연출가의 해석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

‘갈매기’는 사실주의 톤이 강하며 그러한 무대화가 일반적이지만, 이 공연은 공간과 인물들의 춤의 동선 등으로 살짝 이탈하곤 한다. 젊은이들의 사랑과 갈망에 대해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춤의 시각적 연출을 보여준다. 또 군데군데 의미를 시각화하거나 이미지로 만드는 솜씨가 콕콕 극의 방점을 찍는다. 연출과 무대의 독창적인 선택들은 드라마의 진행과 비교적 잘 꿰매어져 있다.

예술과 사랑에 대한 우울한 블루스 ‘갈매기’는 두 축으로 진행된다. 트레플레프의 소설가 되기와 니나의 배우 되기란 꿈에 관한 이야기와 젊은 연인들의 사랑과 갈망에 대한 것이다. 이 두 축에서 젊은 세대는 모두 좌절을 겪게 된다. 극은 초반에 이들 젊은이들의 사랑스럽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들을 강조하며, 이후의 변화를 더 극적으로 만든다. 트레플레프는 연인을 잃고 글을 쓸 힘이 없는 상태로 소설가가 된다. 니나는 새 연인 트리고린에 의해 꿈과 삶이 전부 파괴된다.

결국 젊음은 좌절과 절망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나. 그러나 ‘갈매기’는 마지막에 마치 갈매기가 돼 버린 듯 한 니나를 보여준다. 그것은 한편으로 니나가 트리고린에 의해 파괴되고 속박됐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절망을 기어코 넘어서는 ‘진짜 희망’, 그것은 더 없는 상실과 무력감, 고통을 온전히 마주해야 가 닿는 것이리라.

올해 대극장에서 올라간 체홉의 작품들은 텍스트가 가진 대중적 힘을 보여주며, 동시에 현대적 미감을 자극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갈망과 우수, 회의에 찬 인물들이 섬세하게 엮어내는 느슨한 드라마는 늘 빈 곳을 상상하게 이끈다. 말해지지 않은 열정과 후회로 출렁이는 가슴 말이다.

엄현희 공연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