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헤레디움 ‘이봉 랑베르’ 소장전
미니멀리즘·개념 미술에 주목했던 컬렉터
내달 26일까지 한불 수교 140년 기념 전시
장 미셸 바스키아·다니엘 뷔렌·솔 르윗 등
전통예술의 틀 벗어나려 했던 작품들 선봬
장-미셸 바스키아 ‘Untitled (Famous Negro Athletes)’
다니엘 뷔렌 ‘Anthracite elegant cuir / Blanc Thasos (Grece) – 9 lattes’
솔 르윗 ‘Arcs from the Midpoint of the Left Side’ 대전 헤레디움 제공
【파이낸셜뉴스 대전=유선준 기자】 장-미셸 바스키아의 거친 기호, 다니엘 뷔렌의 절제된 줄무늬, 솔 르윗의 기하학적 색면은 현대미술이 어떻게 형식의 경계를 넘어 사유와 관계의 영역으로 확장됐는지를 보여준다.
세계적 컬렉터 이봉 랑베르가 구현한 프랑스 현대미술의 결정적 장면들이 대전에서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다. 대전 복합문화예술공간 헤레디움은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전 ‘이봉 랑베르: 예술가의 곁에서’를 오는 7월 26일까지 선보인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실험적 흐름을 조명한다. 무엇보다 작품을 단순한 소장품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컬렉터와 예술가가 긴 시간 쌓아온 신뢰와 교류를 함께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관람객들은 세계 현대미술사의 주요 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형식과 개념, 재료와 공간을 확장해온 과정을 한자리에서 살필 수 있다.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는 장-미셸 바스키아의 ‘무제(유명한 흑인 운동선수들)·Untitled(Famous Negro Athletes)’다. 정해진 작업실이 없던 시절, 바스키아가 낡은 문 위에 직접 그려낸 작품으로 일상의 사물을 예술로 전환하던 작가의 자유로운 기질이 담겨 있다. 그래피티에서 출발한 거칠고 즉흥적인 필치 위로 왕관과 저작권 기호가 새겨져 있으며 인종과 명성, 권력, 소비문화에 대한 작가 특유의 감각을 드러낸다.
다니엘 뷔렌의 ‘앤스러사이트 엘레강 가죽/화이트 타소스(그리스)-9장· Anthracite elegant cuir/Blanc Thasos(Grece)-9 lattes’는 작가가 평생 조형 언어로 삼아온 폭 8.7㎝의 줄무늬를 중심으로 한다. 멀리서 보면 캔버스 천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그리스산 대리석을 깎아 만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평소 작품을 좀처럼 선물하지 않는 작가가 이봉 랑베르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오랜 신뢰와 우정을 짐작하게 한다.
솔 르윗의 ‘왼쪽 변의 중점에서 그린 호(Arcs from the Midpoint of the Left Side)’는 개념미술의 핵심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르윗에게 작품의 본질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아이디어와 규칙에 있었다. 화사한 색면과 기하학적 구성은 “아이디어는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는 그의 선언이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되는지를 보여준다.
바스키아, 뷔렌, 르윗의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와 매체, 조형 언어를 지녔지만 모두 현대미술이 전통적 미술의 틀에서 벗어나려 했던 순간들을 품고 있다. 낡은 문, 대리석, 색면이라는 각기 다른 재료와 형식은 한 공간 안에서 충돌하기보다 서로의 맥락을 확장한다. 이 때문에 이번 전시는 개별 작품의 미학을 감상하는 동시에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이 어떤 질문을 던져왔는지 되짚게 한다.
이봉 랑베르는 1960년대 파리에 첫 갤러리를 연 뒤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을 비롯한 새로운 예술 흐름을 선도적으로 소개해왔다. 솔 르윗, 다니엘 뷔렌, 온 가와라, 장-미셸 바스키아, 낸 골딘, 로렌스 와이너 등 당대에는 낯설게 여겨졌던 작가들의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보고 이들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지지했다.
그의 컬렉션은 시장에서 완성된 작품을 선택해 모은 결과라기보다 작가들의 작업 초기 단계부터 함께 지켜보고 쌓아온 시간의 기록에 가깝다. 이 때문에 랑베르 컬렉션은 미술사적 가치뿐만 아닌 예술가들과의 우정, 헌신, 신뢰가 담긴 ‘인간적인 컬렉션’으로 평가된다. 전시 제목인 ‘예술가의 곁에서’ 역시 이 같은 관계성을 함축한다.
전시가 열리는 헤레디움의 공간성도 의미를 더한다.
근대 건축물을 복원해 조성한 헤레디움은 과거의 시간 위에 동시대 예술을 겹쳐 보여주는 장소다. 프랑스 현대미술 컬렉션이 대전의 역사적 공간과 만나는 이번 전시는 한불 수교 140주년의 의미를 단순한 기념을 넘어 문화적 교류의 장면으로 확장한다.
대전 헤레디움 측은 “전시는 바스키아, 뷔렌, 르윗 등 개별 작가의 대표적 면모를 살피는 동시에 한 컬렉션이 어떻게 시대의 미술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며 “헤레디움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불 수교 140주년의 의미를 현대미술의 언어로 확장하고, 한국 관객들에게 프랑스 현대미술 컬렉션의 중요한 장면을 소개할 것”이라고 전했다.
rsunju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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