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선재, 설치미술가 함양아 개인전’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인간과 사회 순환적 세계관 탐색
하나의 해답을 찾는 과정이 아닌
문제를 마주한 시선에 관한 질문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더그라운드와 스페이스1·2에서 함양아 개인전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가 열리고 있다. 남서원·아트선재센터 제공
거대한 원형 구조 안으로 들어서면 여덟 개의 화면이 관람객들을 에워싼다. 수장과 장례에서 시작한 영상은 탄생과 일상, 노동을 지나 디지털화된 물의 이미지로 이어지고, 서로 다른 장면은 하나의 결론으로 향하기보다 다시 순환한다. 관람객들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닌, 인간과 사회, 자연이 얽힌 관계망 안에 놓인 한 존재가 된다.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지속할 수 있는 다른 질서가 가능한지를 되묻는 전시가 서울 종로에서 열린다. 아트선재센터는 오는 10월 4일까지 더그라운드와 스페이스1·2에서 함양아 개인전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를 개최한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함 작가가 지난 2018년부터 이어온 장기 예술 연구 프로젝트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의 8년간 여정을 조망한다. 신작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과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를 비롯해 프로젝트와 연결된 주요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1968년생인 함 작가는 서울대 서양화과와 미술이론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대 대학원에서 미디어아트를 공부한 뒤 서울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해왔다. 미국과 중국, 네덜란드, 튀르키예 등에서 생활하며 사회 시스템 안의 개인과 집단, 인간에 의해 변화한 자연의 관계를 영상과 설치로 다뤄왔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선정됐으며, 아트선재센터 개인전은 2010년 이후 16년 만이다.
전시의 중심은 스페이스1에 설치된 22분짜리 8채널 비디오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이다. 원형 구조를 따라 펼쳐진 여덟 개의 프로젝션은 장례와 탄생, 생로병사를 대하는 방식, 일상과 노동, 종교와 문화의 변화 등을 7개 장으로 보여준다.
이전 연작이 금융자본주의와 국가, 제도 같은 거대한 사회 구조에 집중했다면 이번 신작은 그 변화가 개인과 공동체의 ‘몸’, 나아가 생태계에 남긴 구체적인 흔적을 들여다본다. 특히 관람객들은 설치 안으로 직접 들어가 화면에 둘러싸이는데,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달라져 작품 전체를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렵다. 세계 역시 하나의 시선이나 직선적인 발전 과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설치 방식 자체가 드러낸다.
작품을 관통하는 개념은 ‘순환’이다. 수장과 장례에서 시작한 서사는 탄생과 일상, 노동을 거쳐 디지털화된 물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함 작가는 진보를 향해 달려온 사회가 인간과 생태계에 남긴 흔적을 되짚으며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지속할 수 있는 다른 질서가 가능한지를 묻는다.
스페이스2의 신작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는 반대로 거대한 세계를 개인의 목소리에서 출발해 바라본다. 세계 각지의 참여자들이 프로젝트 웹사이트가 제시한 이슈에 대한 생각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공유했고, 그는 이를 ‘일상생활’, ‘제도’, ‘사회심리’, ‘자연’, ‘과학과 기술’ 등 다섯 범주의 다채널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관람객들은 여러 나라의 언어가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화면 사이를 걸으며 타인의 사적인 독백을 듣는다. 서로 떨어져 있는 개인의 경험은 노동과 가족, 사회 제도와 기후위기, 기술 변화 등 더 큰 세계의 문제와 연결된다. 함 작가는 이 웹 프로젝트를 추상화되기 전의 생생한 사실을 길어 올리는 ‘우물’이자 생각을 나누는 ‘광장’에 비유한다.
전시장에는 프로젝트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잠’도 나왔다. 체육관에 잠든 사람들과 이들을 지켜보거나 주변을 배회하는 인물을 통해 재난의 피해자와 관찰자, 보호와 통제를 수행하는 사회 시스템을 비춘 작품이다.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형성을 다룬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생산과 분배의 불평등이 만든 굶주림을 추적한 ‘주림 2.0’, 제도화된 돌봄과 배움의 의미를 되묻는 ‘사람은 무엇을 배우나’ 연작도 함께 전시된다. 함 작가는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는 거대 서사와 미시 서사를 엮은 서사의 인드라망을 통해 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서로를 비추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고 전시 배경을 설명했다.
전시는 복잡한 세계를 하나의 해답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대신, 개인의 고통과 사회 제도, 기술과 자연이 실제로는 서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진보의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의 목소리를 놓쳤고, 인간 중심의 질서 밖에 있는 존재들과 어떤 관계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가. 함 작가의 파노라마가 마지막에 남기는 것은 미래에 대한 답보다 우리가 지금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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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