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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떠나 동티모르로 숨어든 스캠 조직…’점조직 게릴라’로 범죄 지도 넓어지나

한국 국적 캄보디아 스캠조직 피의자들이 지난 1월 2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강제 송환되고 있다. 초국가범죄 특별대응 TF는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우리 국민 869명에게 약 486억원을 편취한 한국 국적 피의자 73명을 강제 송환했다. 뉴시스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 동남아시아의 최빈국 동티모르가 외국인 사기조직의 새로운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접국 캄보디아 등에서 사기조직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범죄조직이 상대적으로 치안·법 집행 역량이 취약한 동티모르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캄보디아 역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온라인 스캠 범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있다. 스캠 조직은 기존 대규모 범죄단지를 중심으로 한 협업형·공장형 범죄에서 벗어나 소수 단위로 조직을 분산하고, 필리핀·라오스 등 주변국을 수개월 단위로 옮겨 다니며 단속을 피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경찰서 세트장까지…新 스캠 범죄 소굴 된 동티모르

일본 아사히신문은 10일 동티모르 수도 디리를 현지 취재해 외국인 사기조직이 호텔과 주택 등을 빌려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실태를 보도했다.

현지 경찰은 지난 6월 이후 사기 거점으로 의심되는 장소 25곳을 수색했다. 이 가운데 13곳에서 약 300명의 외국인이 적발됐으며, 이들의 약 90%는 중국인과 인도네시아인으로 파악됐다. 사기조직들은 디리 곳곳의 호텔과 주택을 빌려 전화와 SNS를 이용해 외국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인을 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기조직에는 일본인 가담자도 있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19일 디리의 한 호텔에서 31세 일본인 남성이 체포됐다”며 “경찰이 해당 객실을 수색한 결과 일본 경찰서를 연상시키는 장식물이 발견됐고, 그중에는 ‘도쿠시마현 경찰’이라고 적힌 보드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 거주하는 고령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명단과 함께 다른 일본인 2명의 여권도 발견됐다. 이들은 현장에서 달아나 경찰이 행방을 쫓고 있다.

체포된 일본인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과거 캄보디아에서 약 5년간 중국인 조직의 지시를 받아 사기 행각에 가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캄보디아에서 단속이 강화되면서 동티모르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허술한 법망에 높은 청년 비중…범죄조직이 파고든 틈

동티모르가 범죄조직의 새로운 목적지가 된 배경에는 취약한 법 집행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동티모르는 지난해 10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에 정식 가입했다. 그러나 유엔이 지정한 최빈개도국으로, 경제 기반과 산업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 특히 사이버 범죄를 포괄적으로 규율할 법률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도 지난해 동티모르가 국제범죄조직의 표적이 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지난해에는 인도네시아 영토에 둘러싸인 동티모르의 오에쿠시 지역에서 중국인 등이 온라인 사기를 벌인 사건도 드러났다.

최근 디리에서는 사기조직의 움직임이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드론을 이용해 의심 시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건물 지붕에 대량의 위성통신 장비가 설치된 것을 발견했다. 해당 시설에서 사용한 전력량도 일반적인 주거·사무공간보다 두 배 이상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급 주택가에서도 외국인 사기조직의 활동이 확인됐다. 현지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중국인들이 여러 채의 주택을 임차해 내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일을 했으며, 이후 경찰이 들이닥쳐 이들을 체포했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동티모르 경찰은 최근 적발된 외국인 대부분에게 캄보디아 체류 또는 방문 이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캄보디아 등 기존 사기 거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조직과 인력이 동티모르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동티모르 정부는 대응에 나섰다. 사나나 구스마오 총리는 사기 거점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사이버 범죄 관련 법률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캄보디아 사태 1년…’대형 웬치’에서 소규모 조직으로

동티모르로 범죄조직이 이동하는 배경에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캄보디아의 대대적인 스캠 범죄 단속이 있다.

지난해 8월 8일 “취업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대학생이 캄보디아 스캠 조직에 감금돼 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이후 캄보디아 정부가 스캠 범죄와의 전쟁에 나서면서 태자(프린스), 원구 등 웬치(범죄단지)를 잇달아 급습했고, 캄보디아 내 온라인 스캠 범죄 조직이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외교부와 경찰청도 주캄보디아대사관 내 경찰 영사 인력을 대폭 늘렸으며, 주캄보디아 대사에 김창룡 전 경찰청장을 임명해 캄보디아 내 한국인 관련 범죄 척결 의지를 보였다.

그 결과 올해 1·4분기 캄보디아 내 스캠범죄 감금 등 공관 피해 신고 건수가 총 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8건보다 92% 감소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단속 이후에도 스캠 범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캄보디아 교민 A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근 단속 등에서 많은 성과를 얻었으나 여전히 많은 한국인이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온라인 스캠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면서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2030세대 젊은이들은 일부 기업 주재원이나 교민 가족을 제외하면 대부분 범죄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범죄 조직은 소규모 게릴라식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전에는 접근조·인출조·세탁조를 비롯해 검사 사칭·경찰 사칭·금융감독원 사칭 등 한 건당 최소 20명 가까운 인원이 투입됐지만, 이제는 최대 10명 남짓의 소수 인원으로 모든 건을 운영하는 식이다. 이들은 수개월마다 캄보디아·라오스·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을 순회하면서 법망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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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