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정부 해외 의존 축소 의지
비엣텔, 통합 운영 플랫폼 등 구현
철강기업 호아팟 레일 국산화 맡아
현지 기업과 협력, 승부처 떠올라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부 튀 띠엔 통신원】베트남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인프라 사업인 북남고속철도 프로젝트가 현지 대기업들의 파격적인 참여 선언 속에 본격적인 속도전에 돌입했다. 국방·통신 대기업 비엣텔과 최대 철강 기업 호아팟이 고속철 핵심 기술 국산화의 전면에 나서면서,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공기도 대폭 단축하겠다는 베트남 정부의 구상이 현실화 단계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업규모만 100조원으로 추산되는 북남고속철도 수주전에 뛰어든 K철도도 현지 기업과의 협력 여부가 수주 향배를 가를 것으로 판단하고, 기술 이전과 현지 인력 양성 등 협력 방안 모색에 나섰다.
■호아팟·비엣텔도 참전
19일 베트남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베트남 건설부는 시속 350㎞급 북남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핵심 기술 마스터플랜 연구 과제를 호아팟과 비엣텔에 공식 배정했다. 앞서 베트남 최대 자동차·기계 대기업인 타코(THACO) 그룹은 총사업비의 20%를 직접 투자하는 파격적인 제안서를 제출하며 북남고속철도 사업에 전격 참전하면서 현지 대기업들의 컨소시엄 참여가 잇따르고 있다.
베트남의 포스코로 불리는 호아팟은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할 것으로 예상됐던 고속철도용 특수 레일 국산화를 맡는다. 호아팟은 꽝응아이성 둥꾸엇 경제특구에 지난해 말부터 10조동(약 5720억원) 이상을 투입해 전용 철강 공장을 건설 중이다. 올해 3·4분기 독일 SMS그룹 기술진이 합류해 시운전을 진행한 뒤 오는 2027년 1·4분기 첫 제품을 출시한다는 목표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고속철 궤도 자체 생산체계가 구축되면 자재 조달 기간이 크게 단축되면서 전체 철도 건설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현지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베트남의 KT로 불리는 비엣텔은 고속철도의 ‘두뇌’와 ‘신경망’ 구축을 담당한다. 고속철 운행에 필수적인 차세대 5세대(5G) 통신 인프라와 신호 제어 시스템, 디지털 트윈 기반의 실시간 통합 운영 플랫폼 등을 자체 기술로 구현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비엣텔은 고속철 인프라를 단순 교통망이 아닌 국가 전략 자산으로 보고 국방부와 협력해 군수 수송 체계와 연계하는 방안까지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설계·보상·국산화 동시 추진”
이 같은 베트남 대기업들의 공격적인 국산화 드라이브 뒤에는 정부의 강력한 지원책이 자리하고 있다. 오는 7월 1일 시행 예정인 총리 결정문(제21/2026/QD-TTg호)은 국산화 제품 개발 시 정부가 직접 최초 구매자가 돼 초기 시장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지 경제 전문가들은 베트남 정부가 사실상 정책 금융과 초기 수요 보장을 결합한 패키지 지원에 나서면서 현지 대기업들의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사업 속도를 내면서 북남고속철 프로젝트도 빠르게 구체화되고 있다. 베트남 건설부는 지난 15일 전 세계 고속철 컨설팅 업체를 대상으로 글로벌 로드쇼를 개최했다. 베트남 정부는 오는 6월 중 최종 컨설팅사를 선정해 기술적 타당성 조사를 마무리하고, 2028년까지 부지 보상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베트남 정부는 이번 로드쇼에서 △고속철 설계 실무 경험 △베트남 자연환경에 적합한 기술 적용 △도시계획과 연계된 최적 설계 △역세권 개발(TOD) 역량 등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베트남이 설계·부지 보상·국산화 준비를 동시에 추진하는 압축 전략을 택하면서 사업 추진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가대항전 된 북남고속철”
베트남 대기업들의 공세적인 국산화 전략 속에서 K철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국가철도공단(KR),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등 공공기관과 현대로템, 복수의 설계사가 참여하는 북남고속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대응 전략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업이 사실상 국가대항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과 프랑스, 일본 등 경쟁국들도 정부와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민관 연합 형태로 수주전에 뛰어들고 있어서다.
다만 특정 국가가 모든 구간과 핵심 시스템을 독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베트남 정부가 ‘기술 이전’과 ‘자국 인력 양성’을 최우선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현지 기업과의 협력 여부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지 기업이 자재와 기초 인프라를 맡고 한국 기업은 차량·신호 제어·종합사업관리(PMO) 등 고부가가치 분야를 중심으로 합작법인(JV) 형태 등 협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차량·신호·운영 시스템 등 핵심 분야에서 현지 기업과의 합작 및 인력 교육 프로그램까지 포함한 장기 협력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향후 수주 경쟁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june1112@fn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