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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넘어 한국을 가르칩니다"…’베트남 최초’ 한국인 학과장의 특별한 수업[동남아 돋보기]

한글날 시리즈-탕롱대 한국어학과

이계선 학과장, 2016년 출범부터 10년간

베트남 대학 한국어과 최초 한국인 학과장

“언어와 문화의 연결 중요…한베 문화 비교 수업”

“학생들 진로 다변화되고 뚜렷해져”

베트남인 교수 “한국어 과학적…언어적 재능보다 노력 중요”

베트남 학생들 “높임법과 호칭어 어려워” 한목소리

다음 달 9일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기념해 [동남아 돋보기]가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지의 한국어 교육 현장으로 찾아갑니다. 현지에서 불고 있는 뜨거운 한국어 열풍과 생생한 교육 현황을 향후 수 주에 걸쳐 집중적으로 전해드립니다.

이계선 베트남 탕롱대 한국어과 학과장이 25일 베트남 탕롱대 한국어과 강의실에서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체면 문화와 관련된 관용어와 속담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

25일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탕롱대학교 한국어과 강의실. 한국인 교수인 이계선 학과장이 스크린에 한국의 ‘체면’ 문화와 관련된 관용어와 속담을 띄웠습니다. 4학년 졸업반 학생들에게 표현 하나하나의 뜻과 쓰임을 설명했습니다.

“체면을 세우다, 체면이 서다, 체면을 살리다, 체면을 지키다.”

비슷해 보이는 표현들의 미묘한 차이를 설명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체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짚었습니다.

수업은 한국어 표현을 베트남어로 어떻게 옮길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한국과 베트남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될 학생들에게 번역 과정에서 단순히 단어를 바꾸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우리’, ‘정’, ‘한’처럼 하나의 단어로 정확히 옮기기 어려운 한국의 문화적 개념은 억지로 다른 단어로 번역하기보다 한국어 표현을 그대로 쓰고 그 의미를 설명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류’가 베트남에서도 이미 ‘한류’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것처럼 한국 문화의 특성이 담긴 고유한 표현은 그 자체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의가 끝나자 학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자 이 학과장도 웃으며 학생들과 수업을 마쳤습니다.

이계선 베트남 탕롱대 한국어과 학과장이 25일 베트남 탕롱대 한국어과 강의실에서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접두사 ‘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이계선 학과장은 탕롱대 한국어과를 처음 만든 인물입니다. 2016년 한국어과가 출범할 당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 대학의 한국어과 학과장을 맡았고, 이후 10년간 학과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 학과장의 이력도 남다릅니다.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81년 간호장교로 임관해 24년간 복무한 뒤 2004년 중령으로 예편했습니다. 이후 46세에 베트남으로 건너가 베트남어를 익혔고, 하노이국립대 인문사회과학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8년부터 하노이대 한국어과에서 한국어·베트남어 통역 외래강사로 활동했고, 2013년 탕롱대 사회학과 전임강사가 됐습니다. 이후 대학의 요청으로 한국어과 신설 작업에 참여해 교육과정 구성과 학과 개설 심의 등을 직접 맡았고, 2016년 한국어과 초대 학과장이 됐습니다.

한국어 교육에서 이 학과장이 강조하는 것은 언어와 문화의 연결입니다.

탕롱대에는 다른 베트남 내 한국어과와 차별화된 수업이 있습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논문을 쓰거나 두 과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이수합니다. 하나는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관용어와 속담을 통해 이해하는 과목이고, 다른 하나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와 한국의 기업문화를 배우는 수업입니다.

졸업 후 한국 기업에 취업하거나 한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이 많은 만큼 실제 한국 사회와 직장에서 접하게 될 문화와 환경을 미리 익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학과장은 “언어는 결국 문화”라며 “언어를 알려면 반드시 그 나라 문화와 사회를 알아야 하는데 그 문화와 사회를 알려주는 게 탕롱대 한국어과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넘어 ‘한국을 이해하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공지능(AI)이 한국어를 능숙하게 번역하고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대인 만큼 단순히 언어를 구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사회학 박사 출신인 만큼 수업은 한국 문화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함께 비교·고찰해 학생들이 향후 한국 기업 등에 진출했을 때 한국인들에게 오히려 베트남의 사회와 문화를 깊이 있게 소개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양국을 잇는 ‘민간 외교관’이자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학과장은 “학생들에게 양국의 역사와 문화를 비교하는 과제를 많이 내주는 편”이라며 “실제로 1기 학생 중 한 명은 이 과정을 통해 깊은 영감을 받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진학해 사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5일 탕롱대 한국어과 강의실에서 만난 4학년 학생들이 기자와 둘러앉아 한국어에 매료된 이유와 다채로운 진로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김준석 특파원

이계선 학과장과 함께 학과를 이끄는 투이 부학과장은 동덕여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습니다. 현재 베트남에서 한·베 대조언어학 분야 박사과정을 밟으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한류에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이후 한국어의 구조와 체계에 매력을 느껴 한국어를 가르치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투이 부학과장이 꼽은 한국어의 매력은 ‘과학적’이라는 점입니다.

투이 부학과장은 “언어에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국어는 과학적이어서 일정한 원리를 이해하고 노력하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제가 느꼈던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학생들에게도 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수업을 들은 4학년 학생들은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높임말과 호칭어를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꼽았습니다.

이 학생들은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도, 졸업 이후의 진로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응우옌 응옥 린 학생은 “중국어와 한국어를 두고 고민했는데 삼촌이 적극 추천해 한국어과에 입학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쭈 티 느 꾸인 학생은 “한국 아이돌인 엑소 때문에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팜 타인 쭉 학생은 “한국 영화 ‘기생충’을 보고 한국어과에 진학하게 됐으며, 향후 한국의 문화콘텐츠를 베트남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루엉 티 투 히엔 학생은 “한국 대학원에 진학해 인력관리(HR)를 전공한 후 한국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학과장은 이전 학생들과 지금 한국어학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의 변화가 뚜렷하다고 합니다. 10년 전 첫 학생들은 드라마와 한류를 좋아해 한국어를 배우려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한국 기업의 특정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거나 자신의 전공과 연계해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등 목표가 구체적으로 나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학과장은 “한류가 시작이었지만 K컬처의 분야대로 학생들이 지향하는 방법이 다양화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동남아 돋보기]는 글로벌 공급망과 외교·안보의 핵심 요충지로 부상한 동남아시아의 주요 현안과 비하인드 뉴스를 현지에서 생생하고 깊이 있게 전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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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