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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따라잡으려다 5천억 날렸다" 日 ‘쿨재팬’ 결국 존폐 기로

정부 출자 1406억엔 중 38% 손실

이달 통폐합 검토위 설치해 연내 결론

“관 주도 투자·약한 사령탑이 실패 키워”

일본 해외수요개척지원기구(쿨재팬 기구) 공식 홈페이지 내 이미지.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 음식, 관광 등 자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만든 관민펀드 ‘해외수요개척지원기구(쿨재팬 기구)’가 출범 13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누적 손실이 540억엔(약 4923억원)까지 불어나자 일본 정부가 이달 안에 통폐합을 전제로 한 검토위원회를 설치하고 연내 존속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 콘텐츠의 해외 수입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정부 주도 펀드는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자 일본식 산업지원 정책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13년 만에 통폐합 검토..정부도 ‘실패’ 인정

16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대규모 손실을 안고 있는 쿨재팬 기구에 대해 통합 또는 폐지를 검토하는 전문가 회의를 이달 중 설치할 방침이다. 학계 인사와 민간 전문가들이 개별 투자사업의 성과와 수익성, 조직 운영체계 등을 전면 점검해 연내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경산성은 전날 재정제도등심의회(재무장관 자문기구) 분과위원회에 이같은 계획을 보고했다. 검토위원회는 학계와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되며 개별 투자사업의 타당성과 수익성, 기구의 조직 운영체계 등을 대상으로 철저한 검증을 실시할 방침이다.

쿨재팬 기구는 일본 문화와 상품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13년 설립됐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만화, 음악, 영화뿐 아니라 일본 음식과 관광, 패션, 생활용품까지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

정부가 먼저 위험자금을 투입해 민간투자를 끌어들이고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 어려운 콘텐츠 사업에 장기자금을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쿨재팬 기구에 총 1406억엔(약 1조2817억원)을 출자했다.

그러나 손실은 해마다 불어났다. 지난 2024년 3월 말 398억엔(약 3629억원)이던 누적 적자는 2025회계연도에 540억엔(약 4923억원)으로 확대됐다. 약 2년 만에 누적 손실이 142억엔(약 1294억원) 늘어난 것이다. 이는 정부 출자액의 약 38%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에 경산성은 더 이상 현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통폐합 가능성을 공식 검토하기로 했다.

재무성은 경산성에 누적 손실이 확대된 원인을 분석하고 이사회가 투자 결정과 경영 감독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검증하라고 요구했다. 재정제도등심의회에서도 “관민펀드라는 정책 수단 자체가 적절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지난 2013년 3월 일본의 독자문화를 해외에 수출하는 ‘쿨재팬전략’을 추진하는 회의가 총리관저에서 열렸다. 그 해 11월에는 ‘쿨재팬기구’가 범정부 차원에서 출범했다.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왜 실패했나..관 주도 투자·칸막이 행정 ‘한계’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은 실패 원인으로 정부 주도의 투자 판단과 분산된 정책 집행구조를 꼽는다.

쿨재팬 기구는 지금까지 공연장과 테마파크, 가구업체, 해외 소매점, 방송사와 동영상 서비스 등 약 60개 사업에 투자했다. 하지만 지원 분야가 지나치게 광범위했고 소수 경영진이 서로 다른 업종의 사업성과 해외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는 구조에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본 정부의 콘텐츠 정책을 총괄하는 사령탑이 약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내각부가 쿨재팬 전략의 조정 역할을 맡고 있지만 실제 정책 수립과 집행은 경산성과 총무성, 문화청 등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다. 과거에는 경산성과 총무성이 방송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각각 별도로 지원하는 등 중복과 비효율도 나타났다.

한국이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제작과 인력 양성, 해외 진출을 일원화해 지원하는 것과 대비된다.

현지 시장에 대한 조사 역량 부족도 투자 실패의 배경으로 꼽힌다. 쿨재팬 기구는 지난 2019년 일본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의 인도네시아 진출을 지원한다며 현지 차량호출업체 고젝에 약 55억엔(약 501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고젝은 2023년 동영상 서비스 사업을 매각했다.

쿨재팬 기구는 “서비스 운영 기간에는 향후 파급효과를 포함해 정책 목적에 충분히 기여했다”고 해명했지만 실질적인 투자 성과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책 목적과 수익성, 투자기간 사이의 충돌도 구조적인 실패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본 정부는 민간이 투자하기 어려운 장기 콘텐츠 사업을 지원하라고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투자원금을 회수하고 수익을 내도록 압박했다. 이에 수익성 개선을 위해 대학발 기술 벤처 등 쿨재팬 전략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불분명한 기업에 거액을 투자했다가 해당 기업이 파산하면서 손실이 더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7년 1월 12일 오사카시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에서 열린 ‘유니버설 쿨재팬 2017’ 개막 기념식. 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콘텐츠는 사상 최대 호황..정책만 역주행

일본 콘텐츠 산업 자체가 부진한 것은 아니다. 일본의 2025회계연도 저작권 등 사용료 수입은 1조3441억엔(약 12조2704억원)으로 전년(1조1553억엔)보다 1888억엔(약 1조7235억원) 증가했다. 2020회계연도 이후 6년 연속 늘어나며 1995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만화와 음악, 게임, 애니메이션 등 민간 콘텐츠의 해외 판매가 늘어난 영향이다.

일본의 2025회계연도 디지털 관련 서비스수지 적자도 6조5408억엔(약 59조7116억원)으로 전년(6조8234억엔)보다 축소됐다.

미즈호은행의 가라카마 다이스케 수석 시장이코노미스트는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만화와 음악, 게임, 영상 등을 통한 저작권 사용료 수입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며 “디지털수지의 추가적인 적자 확대를 막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 콘텐츠의 해외 매출을 2033년까지 20조엔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게임과 애니메이션, 만화, 음악, 실사영상 등 5개 분야를 집중 지원할 계획이다.

다만 민간 콘텐츠가 세계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것과 정부가 직접 유망 투자처를 선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닛케이는 “일본이 개별 콘텐츠의 경쟁력과 창작자의 노력으로 정부 전략의 혼선을 보완해 왔다”며 해외 소비자의 수요와 정부 지원 대상 사이의 불일치가 쿨재팬 전략 실패의 본질이라고 분석했다.

출처=연합뉴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무한성편’이 개봉 10일 만에 300만 관객을 넘긴 가운데 지난해 8월 31일 서울 시내의 한 영화관에 시민들이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