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글로벌 리포트] ‘신뢰의 균열’ 위태로운 美·유럽… 나토 재구성 필요한 때

유럽의 주도적 역할 강조한 ‘나토 3.0’

트럼프, 공공연하게 ‘나토 탈퇴’ 압박

中견제 위해 대서양보다 印太지역 집중

이란전 협조 안한 유럽국과 감정의 골

방위비 증액 GDP 5% 미달 땐 또 파국

윤재준 국제부 부장

최근 몇년간 유럽은 안보와 관련해 변화된 환경을 겪어왔다. 덴마크 총리 출신이자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을 지낸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이 지난 5월 정치매체 폴리티코와 가진 인터뷰에서 유럽이 너무 오랫동안 러시아산 에너지와 중국산 제품,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모두 “값이 싸게” 의존해왔으나 이같은 모델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달라진 환경을 표현했다.

최근 외신에서는 유럽에 1940년대 말부터 주둔하기 시작해 현재 40여개 기지에 약 8만5000명 수준인 미군이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결별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늘고 있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나토에서 미국의 역할을 줄이고 대신 중국과 인도·태평양에 집중할 것이라고 시사해왔다.

미국의 이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유럽의 군 기지 사용을 제한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을 분노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유럽 국가들을 ‘겁쟁이,’ 나토를 ‘종이 호랑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란 전쟁에 협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우리는 기억할 것”이라고 적었다. 이런 와중에 지난 4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미국이 이란 전쟁 관련 출구 전략이 없어 보이며 이란과의 협상에서도 굴욕을 겪고 있다고 말한 지 얼마 안가 지난 5월 미국 국방부가 독일 내 육군 1개 여단을 6~12개월 안에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독 미군 병력 5000명을 철수하고 순항과 초음속을 포함한 장거리 미사일 배치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급격히 냉각됐다.

보도에 따르면 유럽에서 완전 철수가 아닌 전략적 재배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독일 대신 폴란드와 루마니아 또는 발트해 국가로 미군 전력을 옮기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팽창을 억제하고 미국의 이익에도 더 잘맞는 협력국으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이곳으로 미군 자산을 재배치하는 것은 영구적으로 유럽의 ‘힘의 지도’를 다시 그릴 수 있다. 여기에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도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의 비협조를 비판한데 이어 앞으로 6개월 동안 유럽 주둔 미군 태세를 파악할 것이라고 밝혔다. 헤그세스는 유럽 국가들이 방위를 더 주도해 균형 있는 동맹을 유지하는 ‘나토 3.0’을 강조하며 미국은 나토를 탈퇴하거나 의무를 버리지 않는 대신 유럽 방위의 파트너로 역할을 바꿀 것이라고 시사했다. 나토 3.0은 유럽이 일차적 방위 책임을 지고 대신 미군의 재배치와 함께 기지 접근 및 영공 통과 권한을 명확히 보장받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미국은 유럽에 투입할 수 있는 항공기와 해군 함정을 대폭 줄일 계획이었으며 이럴 경우 러시아의 잠수함 감시나 러시아 영토로 순항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헤그세스의 발표가 나오자 미국이 나토 연합군 및 전쟁 계획의 기본 틀인 ‘전력 모델’에 대한 기여도를 축소했음을 인정하면서도 핵우산 제공 등 나토에 계속 기여를 할 것이라며 파장을 줄이려고 애를 썼다.

미국과 나토 소속 유럽 국가들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방위비 증액 문제를 놓고 마찰을 겪어왔다. 미국은 매년 나토 전체 행정 운용 비용의 15%인 7억9000만달러(약 1조2100억원)를 부담해왔다.

미국의 증액 압박이 통했는지 군이 없는 아이슬란드를 제외한 나토 유럽 회원국 모두 지난해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2% 지출을 달성했으며 이들 국가들의 총 지출 규모는 1조4000억달러(약 2148조원)로 전년 대비 6% 증가했다. 지난해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오는 2035년까지 방위비 지출을 5%로 늘린다는 목표를 잡았다.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오는 7~8일 열릴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난 25일 미국 백악관을 방문해 유럽 동맹국들과 캐나다가 미국 수준으로 방위비 지출을 늘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부터 미국이 추진해온 동맹국들의 방위비 증액을 트럼프 대통령이 달성시켰다며 달랬다.

그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유럽의 재무장이 미국 군수산업 일자리 19만5000개를 유지시켜준다며 미국의 나토 잔류가 경제에도 이득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위협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미군이 유럽에서 철수하는 것은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일부 유럽 지도자들이 대륙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방공망과 정보 수집, 군 병력 이동에 필요한 대형 수송기 등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핵심 군 자산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 독일 키일 경제연구소는 유럽이 지휘 통제와 위성 등 10대 군사 역량 격차를 메우려면 10년간 5000억유로(약 875조원)가 필요할 것이라는 계산을 내놨다. 나토의 지휘 구조 자체가 미국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따라서 유럽 지도자들도 함부로 미국 보고 떠나라고 할 수 없으며 나토를 재구성해 미국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걸으려 하는 것도 단기적으로 성사가 가능하지 않다.

영국군 총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원수 데이비드 리처즈는 “유럽이 미국을 믿고 의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의존을 안 할 수도 없는 처지”라고 했다. 그는 “EU 회원국들은 강대국이 될 수 없다”며 “EU와 유럽은 어느 영향권에 들어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결국은 재편된 나토와 미국 편에 남는 것이 해답”이라고 말했다.

나토 유럽 회원국간 균열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소장 레이철 엘레후스는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가까운 노르딕과 발틱 국가, 독일과 네덜란드 등 방위비 지출이 높은 국가가 있는가 하면 스페인은 증액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방위비 증액을 약속하면서도 이로 인한 증세와 복지 축소 등 유권자들을 의식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유럽 내 모든 미군 기지 폐쇄는 비현실적이다. 미국과 유럽이 모두 감정적으로는 결별을 원하면서도 현실적인 안보와 전략적 이유로 파국을 피하려 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 기지 전면 폐쇄까지 검토하지 않는 것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한번 금이 간 동맹은 쉽게 회복되기 쉽지 않다. 미국과 유럽이 주고받은 거친 언사와 상호 불신은 쉽게 되돌릴 수 없는 강을 건넜으며 대서양 동맹은 위태로운 동행을 지속하고 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국제부 부장

로딩 중…

로딩 중…

로딩 중…

레이어

[글로벌 리포트] ‘신뢰의 균열’ 위태로운 美·유럽… 나토 재구성 필요한 때

최근 몇년간 유럽은 안보와 관련해 변화된 환경을 겪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