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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SK하이닉스까지…주식 파는 기업들, 강세장 ‘끝물’ 신호일까

WSJ, 기업 자금조달 경쟁 강세장 위협한다는 분석 기사

‘고평가 때 판다’는 시장 타이밍 이론에 학계 엇갈린 의견

코스피지수가 급락하며 전일 종가와 비교해 669.01포인트(8.95%) 하락한 6806.93로 거래를 마친 1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표시되고 있다./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스페이스X의 750억달러(약 111조 900억원) 규모 기업공개(IPO), 알파벳의 850억달러 자금 조달, SK하이닉스의 260억달러 이상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까지.

세계적인 기업들이 증시에서 기록적인 규모의 자금을 끌어모으면서 장기간 이어진 주식시장 강세가 막바지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경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현지시간) ‘초대형 주식 매각이 강세장을 압도할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계 주요 기업들의 자금 조달 경쟁이 오랜 강세장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기업은 통상 주가가 충분히 올라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다고 판단할 때 IPO나 유상증자를 추진하기 때문에 대규모 주식 발행이 한꺼번에 몰리는 현상은 투자심리가 정점에 가까워졌음을 보여주는 ‘강세장 끝물 신호’로 해석된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인공지능(AI) 산업을 중심으로 전례 없는 설비투자가 진행되는 만큼 최근의 자금 조달을 단순한 고점 매도나 증시 과열의 신호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기업이 고평가된 주가를 이용해 주식을 파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인지를 두고 월가와 학계의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올해 주식 발행 3447억달러…최근 4년 연간 규모 넘어

WSJ에 따르면 올해 들어 글로벌 기업들이 새로 발행한 주식 규모는 3447억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최근 4년간 각각의 연간 발행 규모를 이미 웃도는 수준이다. 스페이스X의 IPO와 알파벳의 주식 발행, SK하이닉스의 ADR 발행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시장에 공급되는 주식은 급증하지만,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은 둔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사주 매입은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가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지만, 신주 발행은 반대로 시장이 흡수해야 할 주식 물량을 늘린다.

기업의 신규 주식 발행액에서 자사주 매입액을 뺀 순주식 발행 규모가 500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수년간 지속된 ‘주식 순매입’ 구조가 대규모 ‘순공급’ 구조로 뒤집히면서 투자 자금이 새로 쏟아지는 물량을 소화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주식을 발행해 확보한 자금을 공장과 데이터센터 건설 등에 투자하더라도 주식시장에는 당장 부담이 될 수 있다. 기존 투자자 입장에서는 보유 지분이 희석될 수 있고, 한정된 투자 자금이 신규 상장주와 증자 물량으로 분산되기 때문이다.

“기업은 비쌀 때 판다”…시장 타이밍 이론

WSJ가 대규모 주식 발행을 강세장 후반부의 신호로 본 건 기업재무 분야의 ‘시장 타이밍 이론’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맬컴 베이커 하버드대 교수와 제프리 워글러 뉴욕대 교수가 2002년 발표한 논문 ‘시장 타이밍과 자본구조’는 기업이 자사의 주식이 고평가됐다고 판단할 때 주식을 발행하고, 저평가됐을 때는 주식을 되사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해당 논문은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주식 발행을 검토한 기업의 약 3분의 2가 자사 주식의 고평가 또는 저평가 정도를 중요한 판단 요소로 꼽았다고 설명했다.

또 주식을 발행한 기업의 장기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고,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의 장기 수익률은 높은 경향이 나타났다며 경영진이 평균적으로 시장 상황을 이용해 자금 조달 시점을 선택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IPO와 유상증자가 급증하는 시기는 기업 경영진이 현재의 주가가 자금을 조달하기에 유리한 수준이라고 판단하는 때다. 기업이 앞으로 주가가 더 오를 것으로 확신한다면 굳이 지금 대규모로 지분을 팔 필요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주식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기업이 주식을 사기보다 팔려고 할 때를 경계해야 한다”거나 “기업 내부자가 고점에서 개인투자자에게 물량을 넘기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실제 IPO가 한꺼번에 몰리는 ‘IPO 웨이브’는 대체로 주가가 크게 오른 뒤 나타났다.

루보스 파스토르 시카고대 교수와 피에트로 베로네시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2003년 발표한 연구에서 IPO 물결에 앞서 높은 시장 수익률이 나타나고, IPO가 집중된 이후에는 시장 수익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1999∼2000년 닷컴버블과 2020∼2021년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열풍 당시에도 기업들의 상장과 주식 발행이 급증한 뒤 시장이 큰 폭으로 조정받았다. 이 때문에 발행시장 호황은 강세장 후반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과열 징후로 꼽힌다.

“고평가보다 현금이 필요해서”…끝물론 반론도

전혀 다른 연구 결과도 있다. 기업의 주식 발행을 곧바로 고점 신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해리 디앤젤로·린다 디앤젤로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와 르네 스툴츠 오하이오주립대 교수는 2010년 기존 상장기업의 후속 주식 발행, 즉 유상증자 사례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시장 타이밍과 기업의 성장 단계가 주식 발행 결정에 모두 영향을 미치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단기 현금 수요가 더 중요한 발행 동기라고 결론 내렸다.

조사 대상 기업 가운데 62.6%는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지 않았다면 이듬해 현금이 바닥났을 것으로 분석됐다. 81.1%는 정상 수준보다 낮은 현금을 보유하게 될 것으로 추산됐다. 주식을 비싸게 팔려는 목적보다 사업을 지속하거나 투자를 집행하기 위한 현금 확보 필요성이 더 컸다는 의미다.

고평가된 기업이 모두 증자를 선택하는 것도 아니었다. 시장가치가 높고 주가가 크게 오른 기업 가운데 대다수는 실제로 주식을 발행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시장 타이밍만으로 기업의 증자 결정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성장 단계에 있을수록 대규모 투자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상장 1년 차 기업이 증자할 가능성은 9%로, 상장한 지 20년 이상 된 기업의 2.5%보다 높게 나타났다. 시장 고평가 여부보다 기업의 성장 단계와 자금 수요가 증자 가능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 투자 1조달러 시대…’고점 매도’와 ‘성장 투자’ 사이

최근의 주식 발행을 둘러싼 논쟁도 결국 AI 산업의 막대한 자금 수요와 맞닿아 있다.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센터 건설, 첨단 반도체 확보 등에 필요한 투자 규모가 급증하면서 기술기업들은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만으로 투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주요 AI·클라우드 기업의 연간 자본지출이 조만간 1조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알파벳과 반도체 기업들이 주식과 채권을 동시에 발행하는 것도 이 같은 투자 수요 때문으로 보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주가가 크게 오른 시기에 자금을 조달하면 같은 금액을 확보하면서도 더 적은 주식을 발행할 수 있어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시장에선 기업이 주가 상승기를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시장 타이밍과 실제 투자 수요는 서로 배타적인 게 아니라 주가가 높아 자금 조달에 유리한 시점에 AI 투자에 필요한 실탄까지 확보하는 두 가지 목적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견조한 기업 실적과 경제 성장세가 이어지고 AI 투자가 생산성 향상과 새로운 이익으로 연결된다면 신규 주식 물량을 소화하면서 강세장이 더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국내 전문가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순환금융을 이야기했다. 순환금융은 빅테크가 AI 스타트업 등에 투자한 뒤 그 자금이 다시 클라우드·하드웨어 구매 등으로 돌아오는 걸 말한다. 즉 투자금이 매출로 전환되는 구조를 뜻한다.

박 대표는 “빅테크 사이에 서로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하는 ‘순환금융’까지 가시화되고 있다. 끌어모을 수 있는 건 다 끌어모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구글은 지난해 앤스로픽에 텐서처리장치(TPU)를 장기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고, 올해 4월에는 100억달러를 앤스로픽에 투자했다. 엔비디아도 오픈AI 등과 비슷한 형태로 계약을 맺고 있다.

다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일단 내년엔 1조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한 상태다. 문제는 2028년 이후인데 그때 버블이 꺼지느냐는 점”이라며 “그 사이 빅테크 기업들은 피지컬 AI 개발을 통해 확장성을 키우고 결실을 맺게 되는 만큼 버블이 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