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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화면 갈무리
[편집자주]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세 차례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자본시장 개혁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주주 권익 강화 조치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국내 상장사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보호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논란과 한국형 베어허그 제도, 전자주주총회 도입 등을 계기로 국내 상장사의 경영권 방어 실태와 제도적 보완 과제를 짚어본다.
(서울=뉴스1) 손엄지 기자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주주 권익 강화를 위한 상법 개정은 세 차례 이뤄졌지만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입법은 제자리걸음이다. 기존 경영권 방어 수단의 활용이 제한된 상황에서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 등 대안 도입 논의는 10년 넘게 뚜렷한 진전이 없다.
주주 권익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을 뒷받침할 제도적 보완이 뒤따르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정치권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이 세 차례 이뤄졌다.
주주 보호는 속도전…자사주 소각까지 세 차례 개정
지난해 1차 상법 개정에서는 기존에 회사였던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로 확대했다. 기업의 합병·분할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최대 주주뿐 아니라 일반주주의 이익도 공평하게 고려하도록 한 것이다.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는 내년부터 전자주주총회 도입이 의무화된다.
2차 개정에서는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의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대상을 확대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보유 주식 수에 선임할 이사 수를 곱한 만큼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제도로,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어 소수주주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을 높인다.
올해 3월 시행된 3차 상법 개정에서는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했다. 그동안 기업들은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매각하는 방식 등으로 경영권 방어에 활용했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며 이러한 수단으로 활용이 제한됐다.
여기에 인수 제안을 받은 기업의 이사회가 이를 검토하고 주주에게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이른바 ‘한국형 베어허그’ 제도와 주가 누르기 방지 관련 입법도 논의되고 있다. 주주 권익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편이 전방위적으로 추진되는 모습이다.
포이즌필은 10년 넘게 논의만…경영권 방어 입법 제자리
주주 권익 강화를 위한 상법 개정이 세 차례나 이뤄지는 동안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보완하기 위한 입법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월 대표발의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3건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들 법안은 차등의결권과 포이즌필 도입, 타 회사 주식 취득 시 통지 기준 강화, 집중투표제 청구 요건 강화 등을 골자로 한다.
차등의결권은 주식 종류에 따라 의결권 수를 달리해 창업자 등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제도다. 앤트로픽, 스페이스X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차등의결권을 통해 회사의 장기적 목표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한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발생했을 때 기존 주주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취득할 권리를 부여해 인수자의 지분 확보를 어렵게 하는 방어 수단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기업의 경영권 보호 필요성과 기존 경영진의 지배력 고착화 우려가 맞서면서 10년 넘게 논쟁만 반복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회사의 경영권이 불안하면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할 수가 없다”며 “일반 주주 권익 강화 법안만 만들어지면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섀도우보팅 폐지 때도 혼란…’사후약방문’ 우려
과거에도 제도 개편 과정에서 주주 권리 보호라는 취지와 달리 기업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발생하자 보완책이 마련된 사례가 있다.
지난 2017년 말 섀도우보팅(의결권 대리행사) 제도가 폐지된 이후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감사 선임 등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2018년에는 76개 상장사에서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안건이 부결됐고, 이 중 56개 사는 감사 선임에 실패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후임 감사를 선임하지 못해 기존 감사가 직무를 계속 수행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혼란이 이어지자 2020년 상법 개정을 통해 전자투표를 도입한 기업에 대해서는 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정족수 요건을 완화하는 보완책이 마련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섀도우보팅 폐지는 감사 선임에 차질이 생기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번 상법 개정은 기업의 경영권 안정성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주주 권익 강화라는 취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예상되는 부작용을 검토하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