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 뒤, 더 자주 시작되는 부부 말다툼
집 대출 갚는 남편, 장보기 카드 긁는 아내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가장 가까운 사이여서 더 쉽게 다투고, 또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생활비, 육아, 집안일, 부모 부양처럼 매일의 일상이 가족 안에서 갈등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이웃의 집 안에서 벌어지는 작고도 오래된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이번 달 생활비 벌써 다 썼어?” , “카드값이랑 애 학원비 빠지면 남는 게 없어.”
30대 맞벌이 부부의 말다툼은 월급날이 지나고 며칠 뒤 더 자주 시작됐다. 남편은 매달 공동 생활비 통장에 정해진 금액을 넣었고, 아내는 그 돈으로 식비와 아이 준비물, 병원비, 장보기 비용을 처리했다.
남편은 “나는 매달 넣을 만큼 넣고 있다”고 했지만, 아내는 “생활비가 부족하면 결국 내 카드로 메운다”고 말했다.
맞벌이는 이미 흔한 가족 형태가 됐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해 6월 발표한 ‘2024년 하반기 지역별고용조사 맞벌이 가구 및 1인 가구 취업 현황’에 따르면 유배우 가구 1267만3000가구 가운데 맞벌이 가구는 608만6000가구였다. 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유배우 가구 393만7000가구 중 맞벌이 가구는 230만4000가구였다.
함께 버는 가구가 많아졌지만 월급을 어떻게 관리할지는 집마다 다르다. 한 통장에 합치는 부부도 있고, 각자 월급을 관리하면서 생활비만 공동으로 내는 부부도 있다. 이 방식은 소득과 지출이 안정적일 때는 문제가 적지만, 아이가 태어나거나 대출 상환이 늘면 갈등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아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큰 문제 없었지만
이 부부는 결혼 초부터 각자 월급을 관리했다. 공동 통장에는 일정 금액만 넣고, 나머지는 각자 저축과 개인 소비에 쓰기로 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식비와 관리비, 보험료 외에도 병원비, 어린이집 준비물, 경조사비, 주말 외식비가 붙으면서 생활비 통장은 월말 전에 비는 일이 늘었다.
국가데이터처가 2월 발표한 ‘2025년 4분기 및 연간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년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93만9000원으로 전년보다 1.7% 늘었다. 2025년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300만80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6% 증가했다. 매달 나가는 돈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동 통장에 정해진 금액만 넣는 방식은 예상 밖 지출에 취약해질 수 있다.
아내는 “생활비 통장 돈이 부족하면 일단 내가 결제하고 넘어갔다”며 “나중에 말하면 남편은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한다”고 했다. 남편은 “얼마가 부족한지 알아야 더 넣든 줄이든 할 수 있는데, 카드값 나온 뒤에야 듣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카드값 나온 뒤에야 보인 부족분
생활비 갈등은 소득이 적어서만 생기지 않는다. 어디까지를 공동 지출로 볼지 정하지 않으면 같은 지출도 다르게 남는다. 남편은 본가 경조사비와 자동차 보험료를 개인 지출로 봤고, 아내는 장보기와 아이 병원비, 생필품 구매를 생활비로 봤다. 한쪽은 “나도 따로 나가는 돈이 많다”고 했고, 다른 한쪽은 “집에 필요한 돈은 내 카드에서 더 자주 나간다”고 했다.
월급이 들어와도 생활비가 빠르게 줄어드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매달 나가는 돈은 비슷해 보여도, 결제하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더 크게 남는다. 공동 통장에 돈을 넣은 사람은 “이미 냈다”고 느끼고, 부족분을 카드로 막은 사람은 “계속 메우고 있다”고 느낀다.
전세대출과 장보기 카드값이 부딪힐 때
AI로 생성한 인포그래픽.
대출 상환일이 다가오면 말다툼은 다시 커졌다. 집 전세대출 원리금은 남편 계좌에서 빠져나갔고, 생활비와 아이 관련 지출은 아내 카드에 더 많이 쌓였다. 남편은 “대출까지 합치면 내가 부담하는 돈이 더 많다”고 했고, 아내는 “대출은 집 문제고, 매일 쓰는 돈은 내 카드에서 나간다”고 맞섰다.
부채가 있는 가구에서는 이런 갈등이 생활비 문제로만 끝나기 어렵다. 정부(국가데이터처)가 작년 12월 발표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년 3월 말 기준 가구의 평균 부채는 9534만원으로 전년보다 4.4% 증가했다. 2024년 가구의 평균 처분가능소득은 6032만원이었다. 대출 상환금이 매달 빠져나가는 집에서는 생활비를 누가 냈는지와 집을 유지하는 비용을 누가 부담했는지가 함께 계산된다.
이렇다 보니 생활비 갈등은 돈이 모자란다는 말에서 시작됐지만, 싸움은 금액보다 인식 차이에서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남편은 대출 상환과 보험료를 자신의 몫으로 봤고, 아내는 장보기와 아이 병원비처럼 반복되는 결제를 생활비 부족으로 받아들였다. 같은 집에서 나가는 돈이었지만 결국 두 사람의 계산서는 달랐다.
아내는 “돈을 더 달라는 말로 들릴까 봐 생활비 얘기를 꺼내기 어려웠다”고 토로한다. 이에 남편은 “나는 통장에 넣은 돈만 보고 있었던 것 같다”며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말을 공격처럼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의 돈 싸움은 월급 액수보다 서로 무엇을 집안 비용으로 보고 있었느냐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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