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까지 전국 2500곳 햇빛소득마을 추진
재생에너지 판매 수익을 주민이 나눠 갖는 ‘에너지 자립 마을’ 개념
기술·제도는 무르익었지만 공동체 역량과 계통망이 관건
제미나이.
[파이낸셜뉴스]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판매해 마을 주민이 소득을 나눠 갖는 ‘햇빛소득 마을’ 논의가 뜨겁다. 기술·경제 여건은 이미 무르익었다. 태양광 패널 가격이 10년 새 80% 이상 하락하고 에너지 협동조합 설립을 허용하는 법적 기반이 갖춰지고 경제성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부도 2030년까지 전국 2500곳에 햇빛소득마을을 조성하겠다며 국비 5500억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확산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속도’보다 ‘과정’이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주민 신뢰와 투명한 거버넌스, 계통 과포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태양광 패널은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지이다.
에너지 기회소득 마을 이천시 어석1리 햇빛발전협동조합 태양광 발전설비.뉴시스
마을 공동체가 태양광으로 소득
23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햇빛소득마을은 마을공동체가 주도해 마을 내 유휴부지·농지·저수지 등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운영하고, 전력 판매 수익을 주민이 공동으로 나눠 갖는 에너지 자립 마을 모델이다. 핵심은 △마을이 단순 전력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 전환된다는 점과 △그 생산에서 나온 수익이 마을 밖 기업이나 투자자가 아닌 주민 공동체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발전소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마을협동조합이나 주민공동체 조직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지붕 태양광’이나 대기업 중심 발전 사업과 구별된다.
전력 판매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생산한 전기를 한국전력에 판매하는 방식(발전차액지원제도, FIT)과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발급받아 에너지 시장에서 거래하는 방식이다. 마을이 자체적으로 쓰고 남은 전기를 팔아 수익을 얻고, 그 수익을 조합원 배당이나 마을 공동 서비스 운영비로 쓴다. 전기요금 절감이라는 ‘비용 절감 효과’와 전력 판매라는 ‘수익 창출 효과’가 동시에 발생하는 구조다.
이 개념이 빠르게 확산되는 배경에는 농촌 소멸 위기가 있다. 고령화와 인구 유출로 소득 기반이 무너지는 농어촌에서, ‘날씨만 맑으면 돌아가는’ 태양광 패널은 노동 없이 들어오는 소득원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경기 여주시 구양리 주민들의 ‘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은 마을 창고·주차장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고 판매 수익으로 마을회관 무료 점심과 마을버스를 운영하는 모델을 구현했다. 정부가 이 사례를 전국 확산의 벤치마크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월 2일 전북 진안군 ‘햇빛소득 마을 추진단’이 발대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뉴스1
기술·경제적 여건 충분
햇빛소득마을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기술·경제 측면에서만큼은 전문가들이 대체로 긍정적이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태양광 패널 가격의 급락이다. 10년 전만 해도 1킬로와트(kW)급 설치에 수백만 원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그 5분의 1 이하로 내려갔다. 공동 구매와 협동조합 방식을 활용하면 비용을 더 낮출 수 있다. 에너지 저장 장치(ESS) 가격도 하락세고, 인터넷 기반 원격 모니터링 기술 덕분에 전문 인력 없이도 발전소 관리가 가능해졌다.
경제성도 확연히 좋아졌다. 자체 소비로 전기요금을 줄이는 동시에 잉여 전력 판매로 현금 수익을 올리는 ‘이중 효과’가 현실화됐다. 일조량이 풍부한 남부 지방 농촌에서는 연간 발전량을 비교적 정확히 예측할 수 있어 안정적인 수입원이 된다. 전국 평균 일조 시간을 기준으로 1메가와트(MW)급 태양광 발전소는 연간 약 1억~1억5000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추산이다. 100가구 마을 기준으로 가구당 연 100만~150만 원 수준의 수익 배분이 가능한 셈이다.
제도적 기반도 마련됐다. 협동조합기본법과 전기사업법 개정으로 마을 단위 에너지 협동조합 설립이 법적으로 허용됐다. FIT와 REC 시장을 통한 수익 실현 경로도 열려 있다. 여기에 정부가 태양광 설비 투자비의 최대 85%까지 장기 저리 융자를 제공하고 국비 5500억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초기 자본 조달이라는 가장 큰 장벽이 낮아지게 됐다는 평가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7일 서울 서초구 한강홍수통제소에서 햇빛소득마을 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국내외 성공사례도 적지 않아
이 모델의 실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국내외 사례는 이미 적지 않다. 전남 신안군은 가장 선진적인 국내 모델로 꼽힌다. 2019년부터 ‘태양광 이익 공유제’를 도입해 발전 수익 일부를 주민에게 토지 임대료와 배당금 형태로 지급하고 있다. 현재 군민의 49%가 가구당 최대 378만 원의 연금을 수령 중이며, 이 소득이 지역 인구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나이에 월급 받는다’며 기뻐하는 고령 어르신들의 모습은 농촌 에너지 전환이 단순한 정책 구호가 아님을 보여준다.
충남 홍성의 풀무 에너지자립마을은 내구성 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례다. 20년 이상 주민 주도로 태양광과 바이오매스 등을 결합해 에너지를 생산·관리해왔다. 짧게 반짝하고 사라진 것이 아니라, 두 세대에 걸쳐 이어진 자립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기 포천 마치미마을도 2015년부터 태양광 수익을 창출해온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해외 사례로는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의 소도시 펠트하임이 세계적 모범으로 꼽힌다. 인구 145명에 불과한 이 마을은 태양광과 풍력을 결합해 2010년 전기·난방을 100%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완전 자립을 달성했다. 그 결과 에너지 비용이 인근 도시보다 30~40% 낮아졌고, 소멸 위기였던 인구도 오히려 늘었다. 덴마크 삼쇠 섬도 풍력·태양광으로 섬 전체 에너지를 자급하면서 세계적인 에너지 교육 관광지로 탈바꿈한 성공 사례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지역 목장의 태양광과 풍력시설.뉴시스
계통망·공동체·규제, 세 겹의 과제
기술과 경제성이 갖춰졌다고 해서 사업이 순탄하게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과제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계통망 과포화다. 농촌 송전망은 대용량 재생에너지를 수용할 여력이 부족해 계통 연계 신청 후 수년을 기다리는 사례가 속출한다. 정부가 우선 연결을 약속했지만 이미 포화 상태인 지역에서는 출력 제한이 불가피하다. ‘고속도로는 뚫어준다지만 톨게이트가 꽉 막혀 진입하지 못하는 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동체 역량도 중요하다. 패널을 올리는 것은 기술자의 일이지만 20년 넘게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수익을 투명하게 배분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수익 분쟁, 토지 소유권 갈등, 경관 훼손 민원 등으로 좌초된 사업이 적지 않다. 독일·덴마크의 성공 마을들은 공통적으로 착수 전 2~3년의 주민 조직화 기간을 먼저 거쳤다. 결국 투명한 정보 공유, 지방정부 간 경험 공유, 수익 재투자 의무화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규제 공백도 해결해야 한다. 현행 전기사업법은 마을 간 P2P 전력 거래를 사실상 금지하고 있어, 이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수익 구조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인허가 절차도 지자체마다 달라 사업 예측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주민의 자발적 조직화 역량과 마을 단위 신뢰 형성,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중간지원 생태계를 촘촘하게 짜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2030년까지 2500개소라는 목표를 물량 중심의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경우, 설비만 올리고 운영 역량이 따라오지 못해 초기 수익 분쟁으로 해체되는 ‘반짝 마을’이 속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환경과 에너지는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입니다. 에너지의 생산 방식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거나, 반대로 기후나 환경의 변화가 에너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줍니다.
[이유범의 에코&에너지]
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기후·환경 및 에너지 이슈를 들고 매주 토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취재 일정 상 1주일 쉬고 6월 6일자에 찾아뵙겠습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