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오웨이 주한타이베이대표부 대표 인터뷰
TSMC 등 첨단 반도체의 파운드리(위탁생산) 생태계를 앞세운 대만의 경제적 약진에 가속도가 붙었다. 중국의 강한 구심력과 외교적 고립 속에서도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거점을 장악하며 독자적인 반도체 신화를 쓰고 있는 대만의 성공 비결과 생존 전략, 한국과의 협력 공간 등을 알아보기 위해, 파이낸셜뉴스의 이석우 국제부장과 홍채완 국제부 기자가 추가오웨이 주한타이베이대표부 대표를 만났다.〈편집자 주〉
추가오웨이 주한타이베이대표부 대표.사진=박범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추가오웨이 주한타이베이대표부 대표는 반도체 산업과 관련, “한국과 대만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대만의 첨단 파운드리(위탁생산)와 한국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강점이 결합돼야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공급망을 지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국가 주도형 산업정책에 기반한 중국의 거센 추격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대만·일본·미국 간 기술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면서, 상호 4대 교역 상대인 양측은 투자보장협정 체결 등 비정치적·실용적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할 여지가 크다고 짚었다. 다음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주한타이베이대표부에서 진행한 추 대표와의 인터뷰 주요 내용.
“TSMC는 독식 아닌 연결”
―AI 시대에 대만 경제와 반도체 산업이 주목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대만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대만을 자주 찾는 것도 가족 때문만이 아니라 AI 공급망과 연결된 기업들이 대만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은 모두 반도체 강국이지만 산업 구조는 다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뿐 아니라 스마트폰과 가전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설계·제조·패키징 등 가능한 많은 공정을 한 회사 안에 통합하려는 경향이 있다. 필요하면 다른 회사를 인수해 계열사로 편입하기도 한다.
반면 TSMC는 설계 회사, 패키징 업체, 소재·장비 기업들과 협력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모델이다. 수백 개 중소기업이 TSMC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며, TSMC는 이들에게 기술·자금 지원을 하더라도 인수하지는 않는다.
―그런 협력 모델이 기술 유출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나.
▲주로 소재와 장비 분야 협력이다. TSMC는 핵심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소재·장비만 전문 기업들이 맡는다.
10여년 전만 해도 TSMC 공정에 필요한 소재와 테스트·세정 장비의 약 85%를 일본이나 유럽에서 들여왔다. 지금은 그 의존도가 60%로 낮아졌다. 대만 현지 업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5% 정도지만, TSMC의 투자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 비중도 중소기업에는 매우 큰 금액이다.
예를 들어 TSMC의 올해 투자액은 560억달러 규모다. 그중 소재 관련 지출을 30억∼50억달러로만 잡아도 대만 중소기업에는 엄청난 기회다. TSMC가 이들을 육성하지 않았다면 이 기업들은 전통 제조업에 머물렀을 것이고, AI 산업에 진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부가 인프라 깔고 기업은 빠르게 성장”…대만 과학단지 모델
―대만 정부는 반도체 산업 발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반도체 산업 발전은 민간 기업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과 대만은 1950∼1960년대 이후 경제 발전 모델이 상당히 비슷했다. 그러나 1970∼1980년대 한국이 자동차와 조선업을 발전시킬 때 대만은 자동차·조선 분야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대신 반도체 산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대만 정부는 1980년대 신주에 첫 번째 과학단지를 세웠다. 과학단지의 특징은 전기·수도 공급, 도로, 환경보호 인프라를 정부가 구축한다는 점이다. 기업이 개별적으로 이런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또 여러 기술 기업이 같은 단지 안에 모여 있어 협력과 공급망 구축이 쉽다. TSMC도 신주과학단지에서 탄생했다. 당시 TSMC의 기술력은 인텔보다 5∼10년 뒤처져 있었지만 이후 빠르게 격차를 줄였다.
AI 산업이 발전하면서 신주과학단지만으로는 부족해졌다. 대만 정부는 중부와 남부에도 같은 성격의 과학단지를 조성했다. 현재 대만에는 3개의 대형 과학단지와 16∼17개의 중소형 과학단지가 있다.
이들 단지는 토지·전기·수도·도로는 물론 폐수와 중금속 처리까지 지원한다. 첨단기술 기업에는 시간이 중요한 만큼 기업들이 생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다.
―대만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많은 지원을 하는 만큼, 기업들은 사회에 어떻게 환원하고 있나.
▲TSMC는 오랫동안 이익의 약 6%를 직원들과 나누는 방식을 운영해왔다. 하지만 최근 이익 규모가 급증하면서 같은 비율이라도 지급액이 지나치게 커졌고, 회사는 고정 금액 방식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과 다른 점은 TSMC에는 노조가 없고, 성과급이 모든 직원에게 배분된다는 것이다.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은 청소 직원이든 고위 엔지니어든 같은 복지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약 15년 전 TSMC가 이익 감소로 어려움을 겪을 때 당시 CEO가 1000∼2000명을 감원한 적이 있다. 회사 설립 이후 첫 감원이었다. 큰 충격이 있었다. 그 일이 발생한 뒤 모리스 창은 다시 이사회로 돌아와 회장직을 맡았고, 첫 번째 조치로 감원을 단행한 해당 CEO를 해임했다. 두 번째 조치로 해고된 직원들을 모두 다시 불러 재고용했다. 당시 지급된 퇴직금은 그대로 두고 근속연수도 인정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TSMC 직원들은 회사가 자신들을 돌봐줄 것이라는 신뢰를 갖고 있다. 다만 최근 성과급 구조 변경으로 내부 불만이 생겼고,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아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
추가오웨이 주한타이베이대표부 대표.사진=박범준 기자
“中, 손해 봐도 생산해 경쟁자 무너뜨려…韓·대만·日·美 기술동맹 필요”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대만과 한국에 어떤 위협인가.
▲중국은 반도체를 비롯한 전략 산업에서 완전한 자급자족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산업정책을 주도한다는 점이다. 전기차가 대표적인 예시다. 미국의 포드, 한국의 현대차,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 기업들은 시장 수요에 맞춰 생산하지만, 중국은 세계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비용을 따지지 않는다. 팔리지 않아 손해를 보더라도 계속 생산한다. 목표는 경쟁자를 먼저 무너뜨리는 것이다.
LED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한국·일본·대만이 주도했지만 중국의 대규모 보조금 정책 이후 시장 구조가 바뀌었다. 한국은 OLED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로만 이동했고, 현재 기본 LED 시장은 중국 업체들이 장악했다.
지금 중국은 메모리 생산과 연구개발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기술 수준은 아직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뒤처져 있지만, 2∼3년 뒤 어떻게 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웨이퍼 제조도 중국은 대만과 한국보다 3∼5년 뒤처져 있지만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한국·대만·일본·미국이 기술 동맹 차원의 협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산업 발전을 더 빠르게 만들고, 중국의 영향을 피할 수 있다.
―그러면 대만은 중국 시장 의존도를 어떻게 줄여왔나.
▲과거 대만의 주요 수출시장은 중국 대륙과 미국이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많은 대만 기업과 자금이 중국 대륙으로 들어갔다. 대만에서 연구개발을 하고, 중국에서 저비용으로 생산한 뒤 미국에 판매하는 모델이었다. 이 때문에 대만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2016∼2020년 사이 40%대까지 올라갔었다.
그런데 2016년 민진당이 집권하면서 중국 정부가 대만에 대한 일부 무역 혜택과 왕래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대만 정부도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 농담처럼 말하자면 중국이 군대를 보내지 않고도 무역만 통제하면 대만을 압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에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대만과 동남아, 미국으로 투자를 옮기도록 유도했다. 덕분에 코로나19 봉쇄나 미중 무역갈등 충격도 예상보다 적게 받았다. 중국에서 회수한 자금이 최근 AI 산업 투자로 이어진 것도 대만 기술산업 성장의 배경 중 하나다.
“실리콘 방패보다 중요한 건 지리…대만해협과 한반도 안보 연결돼”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이른바 ‘실리콘 방패’ 역할을 할 수 있나.
▲대만 반도체 산업이 중국의 침공을 억제하는 ‘실리콘 방패’ 역할을 한다는 평가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대만의 지정학적 위치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장악하면 다음 단계는 남중국해 통제 시도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과 일본이다.
대만해협과 한반도 안보도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 대만 침공을 시도할 경우 북한을 활용해 한반도 긴장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봉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대만 정부가 강조하는 경제·방어 회복탄력성의 핵심은 봉쇄 상황에서도 얼마나 오래 자체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예를 들어 LNG 비축량은 한국이 60∼70일, 일본이 약 120일 수준인 반면 대만은 약 30일에 불과하다. 중국이 주변 해역을 봉쇄해 LNG 수입이 막히면 소재 공급보다 전력 생산이 먼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TSMC 같은 반도체 공장도 정상 가동이 어려워진다.
최근 중국은 대만 동쪽 해역에서 봉쇄 훈련을 실시하며 일부 국제 화물선에 목적지와 출발지 보고를 요구하기도 했다. 훈련이었지만 향후 실제 봉쇄 상황을 염두에 둔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중국은 최근 대형 해경 선박도 대폭 늘리고 있어 대만에는 새로운 잠재적 위협이 되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가 거론된 데 대한 우려도 있나.
▲미중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무역이었지만 대만 문제 역시 중요한 관심사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만 무기 판매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힌 뒤 미국 학계와 의회에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대만의 안보 정책 핵심은 현상 유지다. 충분한 방어 능력을 갖춰 중국이 침공 자체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중국의 압박 때문에 현재 미국을 제외하면 대만에 방어용 무기를 판매하려는 국가는 많지 않다. 한국 역시 전차와 자주포, 군함, 항공기 등 우수한 방산 기술을 갖고 있어 대만은 교류를 희망하지만 국제정치 현실상 공개 논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결국 대만은 미국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만큼,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가 미중 협상의 카드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추가오웨이 주한타이베이대표부 대표.사진=박범준 기자
“외교관계 없어도 사람은 오간다…韓·대만 관광 300만명 돌파”
―끝으로, 한국과 대만과의 관계도 궁금하다. 한국과 대만의 교류는 어느 수준인가.
▲한국과 대만 간 공식 외교관계는 없지만, 국민 간 교류는 매우 활발하다. 지난해 양측의 관광객 규모는 300만명을 넘었고 올해도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내가 지난해 7월 한국에 부임한 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의 고위급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들이 업무상 이유로 본인은 대만에 가기 어렵지만, 가족들은 안심하고 대만에 보낸다는 점이었다.
경제 관계도 밀접하다. HBM 분야에서는 한국이 세계 선두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점유율을 합치면 70%에 가깝다. 한편 대만은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칩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두 기술이 결합돼야 AI 서버에 필요한 CPU와 GPU를 생산할 수 있으며, 실제로 SK하이닉스가 TSMC에 HBM을 공급하고 TSMC가 이를 활용해 AI 칩을 생산하는 공급망이 구축돼 있다.
양측은 서로에게 네 번째로 큰 무역 상대이기도 하다. 한국은 지난해부터 대만의 최대 무역 적자국이 됐다. 지난 20년간 대만의 최대 무역 적자국은 일본이었는데, 이번에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다.
―반도체 산업 외에, 양측 간 제도적 협력은 충분한가.
▲관광과 무역이 늘어나면 무역 장벽, 분쟁, 국민 간 사법 문제 등 작은 문제들도 생긴다. 이를 해결하려면 소통 채널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대표부는 경제·문화·관광·해상 구조·항공 등 비정치적이고 기능적인 협력을 더 많이 구축하기를 희망한다.
예를 들어 투자보장협정이 필요하다. 대만은 계속 한국과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하기를 희망했고, 초안도 이미 보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받았다고만 하고 아직 진전이 없다. 한국은 FTA를 많이 체결해 ‘경제 영토’가 넓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의 10대 교역국 가운데 대만처럼 기본적인 경제 관련 협정이 부족한 나라는 드물 것이다.
해상 긴급구조 협력도 필요하다. 대만과 한국 모두 양측의 수역을 오가는 어민과 상선이 있다. 조난이나 고장이 발생했을 때 서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추가오웨이 주한타이베이대표부 대표 약력 △64세 △주한타이베이대표부 대표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외교학과 학사·석사 △대만·미국업무위원회 사무총장 △총통부 제3국 국장(의전장) △외교부 국회실 집행장 △주세인트키츠 네비스 대사 △주케이프타운 총영사 △외교부 국회실 전문위원 △주베트남 대표부 서기관 △외교부 인사처 과장 △외교부 북미국 서기관 △주샌프란시스코 판사처(총영사관) 서기관 △주휴스턴 판사처(총영사관) 서기관 △주부산 총영사관 부영사
whywani@fnnews.com 홍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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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대만 반도체, 경쟁보다 협력해야…中 대응할 기술 동맹 필요”
TSMC 등 첨단 반도체의 파운드리 생태계를 앞세운 대만의 경제적 약진에 가속도가 붙었다.
반면 TSMC는 설계 회사, 패키징 업체, 소재·장비 기업들과 협력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모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