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 3곳, 200여명 생활…여전한 탄내·분진에 “집에 가도, 여기서도 아프다”
의료지원·피해보상 안내 혼선…주민 “설명은 없고 영수증부터 준비하라고 한다”
지난 28일 화재감식이 있던 인천 서해구 쿠팡 32물류센터 인근은 아파트와 빌라 등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화재로 쿠팡 물류센터가 까맣게 보인다. /사진=서윤경 기자
낙동강 페놀 유출부터 태안 기름유출, 고성·속초 산불까지. 최근 쿠팡 32물류센터 화재는 기업의 관리부실로 발생한 ‘광역재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기업들은 제대로 된 재난 지원을 했을까. 그 과정과 과제를 톺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인천=서윤경 기자]
“오늘따라 냄새가 더 심하네요. 화재 감식하면서 안을 들춰내서 그런가 봐요.”
인천 쿠팡 32물류센터 화재 발생 후 화재감식이 있던 지난 28일. 뉴스 속 쿠팡 화재는 점차 잊혀가고 있지만, 집에서 긴급 피신한 지 11일째인 이날 화재 현장 인근 임시대피소에 머물고 있던 주민들의 대화는 여전히 그때의 ‘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날 기준 신현초등학교, 신현북초등학교, 신현여자중학교 등 3곳의 임시대피소에는 약 200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었다. 화재는 주민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현장을 찾아 차에서 내리자마자 코를 찌르는 탄내부터 느껴졌다.
오후 12시, 텐트의 지퍼가 열렸다
오후 12시가 되자 인천 서해구 신현북초등학교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주민들이 도시락을 챙기기 위해 적십자 텐트에서 나왔다. 열흘 넘게 주민들은 식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챙기고 있다./사진=서윤경 기자
신현북초등학교 강당에 빼곡히 세워진 42개의 적십자 텐트에서 오후 12시가 되자 사람들이 나왔다. 현재 이곳 대피소에 있는 주민은 73명이다. 일주일 전인 지난 23일 52가구, 96명에서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들은 일상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대피소에 있는 주민들은 점심시간이 되자 쿠팡이 제공하는 도시락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한 주민은 “열흘째 도시락만 먹고 있다. 소화도 안 되고 입에 물리기도 하다”며 현장에 있는 서해구청 직원에게 “죽이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전자렌지로 간단히 데울 수 있는 시판 즉석 죽을 받아 들었다.
올해 여든인 안모씨는 남편 도시락까지 챙긴 뒤 텐트로 이동했다. 그는 쿠팡 물류센터가 바로 보이는 원흥아파트에 살고 있다.
안씨는 “화재가 나고 창틀을 손으로 한번 슥 문질렀더니 분진이 새까맣게 묻어났다. 비누칠을 두 번, 세 번 해도 잘 닦이지 않았다”고 당시를 떠올리더니 “대피소에 있으면 병날 거 같아 가끔 집에 간다. 집에 있어도 병날 것 같고, 대피소에 있어도 병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원센터 생겼다는데…그런 게 있었나요”
쿠팡풀필먼트서비스가 대피소 주민들에게 배포한 안내문(왼쪽)과 안내문의 부족한 내용을 지적하며 대피소 직원이 강당 문에 부착한 안내문./사진=서윤경 기자
무엇보다 주민들이 입을 모은 건 쿠팡의 태도다. 쿠팡이 화재 피해자인 건 이해하지만, 이유없이 쿠팡의 화재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 대한 대응은 별개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그 중에서도 쿠팡이 화재 직후 주민들에게 배포한 ‘주민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립니다’라는 무성의한 안내문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당 안내문은 날짜도, 대표자 명의도 없이 쿠팡풀필먼트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배포됐다. 여기에 긴급 의료지원센터를 2주간 운영하고 병원 진료비와 약값을 지원하며, 피해 접수 콜센터를 11월 30일까지 운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주민들은 “피해가 11월에 끝나는 것도 아닌데 왜 콜센터 운영을 한시적으로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원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 준다는 건지 구체적인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 27일부터 운영을 시작한 피해지원센터 역시 대피소에서는 “피해 회복이 체감되지 않는다”, “지원센터가 생긴 줄도 몰랐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일부 주민들은 “강당 마룻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생활하는데 쿠팡 직원들이 구두를 신고 들어와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허탈했다”며 배려 부족도 지적했다.
쿠팡풀필먼트서비스는 29일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 중인 피해 주민을 대상으로 전문 출장 청소 서비스를 시작했다. 임시 대피소 3곳에서 출장 청소 신청을 받고 있으며 접수 순서에 따라 지원을 진행할 계획이다.
“77만원, 병원이 먼저 내면 나중에”
인천 서해구 쿠팡 32물류센터 인근 상생마을 곳곳엔 화재 피해 주민신고서 접수 안내와 함께 ‘호흡기 안과 피부과 진료 차량 운영을 요청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사진=서윤경 기자
현장 주민들의 불만이 집중된 부분은 의료 지원이다. 한 대피소 주민이 쿠팡의 부적절한 대응을 짚기 위해 자체 제작해 강당 입구에 붙인 안내문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해당 안내문엔 병원 진료를 받을 때 쿠팡 직원의 확인 절차와 진료 세부내역서, 다음날 재방문 후 소견서까지 받아야 한다고 짚었다. “향후 치료비나 교통비에 대한 설명은 없고, 물어봐야 그때서야 안내해준다”는 불만도 담겼다.
실제 신현북초등학교 대피소에서 만난 김모씨(59)는 화재 이후 기침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가 진료비 77만원의 영수증을 받아들었다.
김씨는 “호흡기 전문 의료진이 없어 상급병원 진료를 권유받았다. 진료의뢰서가 없어 응급실로 가서 진료를 받다보니 검사와 약값까지 포함해 큰 돈이 나왔다”고 말했다.
현재 긴급 의료지원센터는 신현초등학교 1곳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인터뷰 중에도 기침을 멈추지 못한 그는 “쿠팡은 병원비를 일단 제 카드로 결제한 뒤 영수증을 제출하면 검토 후 주겠다고 했다. 화재 이후 일도 못 하고 있는데 병원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화재가 발생한 지역 곳곳 골목과 아파트 입구에는 피해 신고 접수와 함께 호흡기·안과·피부과 진료 차량 배치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사과보다 필요한 건 체감되는 지원”
쿠팡은 최근 전문 출장 청소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지원센터에서는 진료비와 청소비 등을 접수받아 사실관계 확인 후 지원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사과나 지원 계획이 아니다.
열흘 넘게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 받을지 모르는 보상이 아니라 당장 숨 쉬고, 치료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화재는 진압됐지만 주민들의 일상은 아직도 복구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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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