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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R 시장, ‘한미일 분업’과 ‘중러 올인원’의 대결[이유범의 에코&에너지]

러시아의 독주 속 한미일의 뒤늦게 협력

“우리가 끝까지 책임진다” vs “각자 잘하는 걸 나눠 맡는다”

각서는 맺었지만 주계약자도, 이익 배분도 아직

조현(왼쪽부터) 외교부 장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이 7월 7일(현지 시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소형모듈형원자로(SMR) 도입 가속화를 위한 3국간 협력각서(MOC)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파이낸셜뉴스]소형모듈원자로(SMR) 수출 시장을 놓고 두 개의 진영이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한국·미국·일본이 지난달 협력각서(MOC)를 맺고 ‘패키지 수주’로 맞불을 놓은 상대는, 이미 세계 원전 시장을 사실상 장악한 중국과 러시아다.

중·러 ‘올인원’ 모델 vs. 한미일 ‘분업’ 모델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러시아는 원자로 건설부터 연료 공급, 사용후핵연료 처리까지 전 주기를 담당하는 국영기업 로사톰을 앞세워 세계 원전 건설 시장의 90%, 농축 우라늄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용후핵연료 처리까지 통째로 맡아주는 ‘올인원’ 방식은 자체 처리 능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에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한다. 원전을 도입하고 싶어도 폐연료봉을 처리할 기술과 시설이 없어 망설이던 나라들에, 로사톰은 “우리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패키지를 제시해온 셈이다. 중국 역시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원전 80기 가운데 39기를 중국이 맡고 있을 정도다. 두 나라 모두 국가가 자금과 외교력을 총동원해 수주를 지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로사톰은 이집트 다바 원전, 방글라데시 루푸르 원전 등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건설비 대부분을 러시아 국가 차관으로 지원하는 방식까지 동원해왔다. 인허가 기준을 자국 기준에 맞춰 통째로 이식하다시피 하는 방식도 로사톰의 강점으로 꼽힌다. 발주국 입장에서는 기술 검증, 자금 조달, 인력 양성까지 한 번에 해결되는 셈이어서, 원전을 처음 도입하는 국가일수록 이런 ‘원스톱’ 패키지에 끌리기 쉽다.

한미일의 접근은 다르다. 한 나라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대신, 각자의 강점을 조합하는 ‘분업형’ 컨소시엄을 택했다. 지난달 7일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튀르키예 앙카라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SMR 협력각서에 서명했다. 미국은 SMR 원천 기술에서 독보적이지만 1979년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시공 경험이 끊겼고,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 공급망이 위축됐다. 반면 한국은 국내 원전을 꾸준히 지어온 데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경험으로 해외에서도 납기와 예산을 지키는 ‘온타임 온버짓’ 역량을 증명했다. 미국이 기술과 인허가 표준을, 한국이 시공 능력을, 일본이 정밀 기자재와 자금력을 보태는 구도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달 13일 브리핑에서 “동일 모델 여러 기를 연속으로 건설하는 ‘플리트 디플로이먼트’ 방식의 프로젝트를 우선 지원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일 SMR을 하나씩 파는 대신, 표준화된 모델을 규모 있게 묶어 팔아 건설 비용과 리스크를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무부의 ‘책임 있는 SMR 기술 사용을 위한 기반 인프라(FIRST)’ 프로그램에 1000만달러 이상을 신규 지원하기로 했다. 협력 범위는 우선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한정되지만, 3국은 이 지역에서의 성과를 발판 삼아 향후 다른 지역으로 협력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중·러가 이미 상당수 진출해 있는 중동·아프리카·중남미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할지가 다음 단계의 관건으로 꼽힌다.

지난 6월 24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전기산업엑스포를 찾은 관람객이 소형모듈원자로(i-SMR)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초기 몇 건이 수십 년을 좌우

두 진영이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는 시장의 성격 때문이다. 세계원자력협회(WNA) 등은 SMR 시장이 2040년까지 최대 158GW, 2050년에는 418GW 규모로 성장해 전 세계 원전 수요의 3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본다. 문제는 원전이 한번 짓고 나면 이후 수십 년간 유지·보수와 연료 공급이 이어지는 장기 인프라 사업이라는 점이다. 초기에 몇 건의 수주 실적을 확보한 쪽이,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지는 후속 계약과 관계망까지 사실상 독점할 가능성이 크다. 로사톰이 개도국 시장에서 오랫동안 공들여온 것도, 중국이 최근 몇 년 새 건설 물량을 빠르게 늘린 것도 이 초기 선점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한미일이 협력각서 체결 직후 곧바로 우선 지원 프로젝트 유형까지 구체화한 것 역시, 이미 벌어진 격차를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위기감의 표현으로 읽힌다. 게다가 SMR은 대형 원전보다 건설 기간이 짧고 초기 투자 부담도 낮아, 전력망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거나 재정 여력이 크지 않은 국가일수록 매력적인 선택지로 꼽힌다. 이런 국가들이 앞으로 5~10년 사이에 어느 진영의 손을 잡느냐가, SMR 시장 전체의 세력 구도를 사실상 결정지을 가능성이 크다.

(출처=연합뉴스)

각서는 맺었지만, 실제 수주로 이어질까

다만 협력각서가 곧바로 수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MOC 체결 이후 여러 인도·태평양 국가에서 환영과 관심을 표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지만, 관심과 계약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한미일 컨소시엄은 3국 기업 중 누가 주계약자를 맡고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부터 정해야 하는데, 이 조율 과정이 매끄럽지 않으면 로사톰처럼 단일 주체가 전 과정을 책임지는 모델과의 경쟁에서 오히려 복잡성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컨소시엄 차원에서 어떻게 보완할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로사톰처럼 처리까지 책임지는 조건을 내걸 수 없다면, 한미일은 대신 기술 검증의 신뢰성이나 사업 완주 실적 같은 다른 강점으로 승부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SK·HD현대·두산 등이 이런 흐름에 맞춰 SMR 사업을 넓히고 있고, 정부도 부산 기장군 SMR 실증사업(2035년 준공 목표)으로 국내 트랙 레코드를 쌓고 있다. 국내에서 SMR을 실제로 설계·인허가·건설해본 경험 자체가, 해외 수주전에서 내세울 수 있는 실적이 된다는 점에서 국내 실증사업과 해외 수주 전략은 사실상 하나로 맞물려 있다. 정부가 하반기 슬로건으로 내건 ‘전기국가’ 구상에서도 원전과 SMR은 AI·반도체발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핵심 축으로 거론돼온 만큼, 이번 한미일 협력은 국내 원전 확대 기조가 해외 수출 전략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한미일의 ‘분업 모델’이 중·러의 ‘올인원 모델’을 상대로 실제 수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는, 협력각서의 문구가 아니라 앞으로 나올 첫 컨소시엄 구성과 첫 수주 대상국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이유범의 에코&에너지]

가 이번 주를 기점으로 매주 연재에서 비정기 연재로 전환합니다. 지난 10개월간 매주 한 번씩 독자 여러분을 찾아뵀는데, 앞으로는 기후·환경·에너지 분야에 꼭 짚어야 할 이슈가 생길 때마다 찾아뵐 예정입니다. 매주는 아니어도, 더 무게 있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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