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경찰서 엄정연 경사
범죄피해자 보호 전담 경찰관
“마음의 문 조금만 열어주세요”
범죄는 하루아침에 한 사람의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사건 진술, 트라우마, 보복의 두려움 속에서 피해자가 짊어져야 할 무게는 아득하기만 하다. 법정 안의 온도 역시 차갑기는 마찬가지다. 피고인의 인권과 방어권이 보장되는 동안 피해자는 ‘증인’이라는 이름으로 잠깐 호출됐다가 방청석 한구석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범죄가 지나간 자리에서 피해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곁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경찰서별로 1~2명 남짓한 적은 인원이지만, 피해자의 회복을 돕는 ‘피해자 전담 경찰관’이다.
8일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만난 엄정연 경사(사진)도 피해자의 고립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엄 경사는 “갑작스러운 범죄로 무기력해지기 쉬운 피해자들이 다시 자기 삶의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곁에서 속도를 맞춰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피해자 지원은 사건 당시에 멈춰 선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일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이들에게 전문 심리상담을 연결하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이사 지원, 스마트워치 지급, 주거지 순찰 강화 조치를 실시한다. 엄 경사는 “어떤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의 보호 조치를 선택할지 결정하는 주체는 언제나 피해자 자신이어야 한다”며 “스스로 일상의 통제권을 되찾도록 돕는 편이 우선이기에 필요할 땐 법정 출석까지 동행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피해자들에게 스스로를 탓하지 말 것을 반복해서 말한다. 마음의 상처에 한 번 빠지면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기 어려워서다. 피해자들은 흔히 “왜 하필 나였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책하곤 한다. 엄 경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차이를 짚어주며 이들의 마음을 다잡아준다.
경찰관 개인의 사명감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엄 경사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경제적 지원의 타이밍 개선’을 꼽았다. 그는 “지원 예산과 집행 권한이 법무부, 검찰,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흩어져 있다 보니 현장에선 복잡한 행정 절차와 지연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때가 많다”며 “당장 치료비가 절박한 피해자가 정작 가장 필요한 시기를 놓치고 수개월을 버텨야 하는 현실이 가장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발목을 잡지만 엄 경사가 생각하는 피해자 전담 경찰관의 본질은 특별한 데 있지 않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필요한 지원을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전히 혼자서 긴 밤을 지새우고 있을 이들에게 엄 경사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혼자라고 느끼지 마시고 꼭 도움을 요청해 주세요. 마음을 열어주시면 필요한 지원을 찾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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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