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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날만 기다리는 가족, 나는 누구일까?"… 금요일 밤, '투명인간'이 된 가장들의 눈물 [어른의 오답노트]

-밖에서는 날카로운 업무능력으로 박수받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방해꾼’이 되어버리는 4050 가장들.

-금요일 밤, 가족의 웃음소리 밖에서 겉도는 아빠들의 서글픈 존재론적 오답노트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입니다

[파이낸셜뉴스] 금요일 밤 10시. 일주일의 치열한 마감을 마치고 돌아온 집. 거실에서는 아내가 7살 아이의 다음 주 학원 스케줄과 학습지를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아빠 왔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보지만, 돌아오는 건 “어, 왔어? 아이 문제 푸는 데 방해되니까 텔레비전 켜지 마”라는 핀잔 섞인 대꾸뿐이다.

씻고 나와 식탁에 차려진 식은 밥상을 마주한다. 밖에서는 ‘선배님’, ‘부장님’ 소리를 들으며 존재감을 뽐냈건만, 정작 가장 사랑받고 싶은 이곳에서는 내가 마치 공간만 차지하는 가구처럼 느껴진다.

냉장고에서 찬 음료 한 캔을 꺼내 홀로 소파 끝에 걸터앉는 가장들. 심리학과 통계는 이 감정을 단순한 서운함이 아닌, 중년 가장의 뼈아픈 ‘정서적 유배’라 진단한다.

◇ 통계가 증명하는 ‘투명인간’의 적나라한 현실

가장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결코 기분 탓이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족실태조사’ 등 각종 통계 지표를 들여다보면 4050 아빠들의 서늘한 현실이 숫자로 드러난다. 아버지와 자녀가 평일에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30분 미만’이라고 답한 비율은 매번 절반을 훌쩍 넘긴다.

더욱 뼈아픈 것은 대화의 ‘내용’이다. 자녀의 교육과 일상은 엄마가 전담하고, 아빠와의 대화는 용돈이나 학원비 결제, 혹은 물건을 사달라는 ‘경제적 요구’에 집중된다.

가족이라는 따뜻한 공동체 안에서 아빠의 자리가 ‘정서적 교감자’가 아닌 ‘경제적 조력자’로 전락해 버린, 이른바 ‘ATM 가장’의 비애가 통계로 증명된 셈이다.

◇ ‘기능적 고착’에 빠진 가족

인지심리학에는 ‘기능적 고착(Functional Fixedness)’이라는 용어가 있다. 어떤 대상이 특정 용도로만 고정되어 인식되어, 다른 가치를 보지 못하는 인지적 오류를 말한다. 슬프게도 많은 4050 가장들이 집 안에서 이 오류의 희생양이 된다.

가족들의 머릿속에 아빠는 ‘돈을 벌어오고 결제를 해주는 사람’이라는 기능적 존재로만 고착되어 버린다. 아이는 아빠의 고단한 하루보다 새로 나온 장난감에 더 민감하고, 아내는 남편의 지친 어깨보다 이번 주말에 함께 가야 할 마트 장보기 리스트를 먼저 내민다.

자신의 감정과 존재 그 자체보다 ‘공급자라는 기능’으로만 평가받을 때, 가장은 깊은 존재론적 허무에 빠질 수밖에 없다.

◇ 도구적 역할에 갇혀버린 중년의 딜레마

미국의 사회학자 탈콧 파슨스(Talcott Parsons)는 가족 내 역할을 외부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력을 책임지는 ‘도구적 역할’과, 감정을 교류하고 화합을 다지는 ‘표현적 역할’로 나누었다.

가장들은 평생을 거친 세상에서 피를 흘리며 ‘도구적 역할’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도록 강요받았다. 정작 금요일 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다정한 위로와 스킨십이라는 ‘표현적 애정’을 갈구하지만, 이미 돈 벌어오는 도구로 굳어진 아빠를 가족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른다. 결국 아빠는 주차장 차 안에서 20분씩 머물다 들어가거나, 집에서도 베란다로 겉도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린다.

◇ 당신이라는 가장 위대한 중력

금요일 밤, 오늘도 불 꺼진 거실에서 많은 가장들이 홀로 씁쓸함을 삼킨다.

사실, 당신의 존재가 공기처럼 투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당신이 가족들에게 그만큼 없어서는 안 될 ‘당연하고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공기의 소중함을 숨이 막힐 때서야 깨닫지만, 공기는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생명을 지탱한다.

현관문에 나란히 놓인 아이의 작은 운동화와 아내의 구두. 그 평온하고 당연한 풍경을 지켜내기 위해 온몸이 닳도록 버텨온 당신의 시간은 결코 투명하지 않다.

비록 당장 살가운 인사는 없을지라도, 당신이라는 묵직한 중력이 없다면 이 따뜻한 집은 단 하루도 온전할 수 없음을 기억하자.

당신은 치워야 할 짐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우주를 묵묵히 떠받치고 있는 가장 고독하고 위대한 기둥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