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예식, 장례… 가족에게 짐 대신 마음을 남기는 법]
장례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마지막 예식이다. 자신의 죽음 이후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전연명치료의향서를 쓰거나, 장례절차에 대한 의견을 남겨 놓는 게 좋다. 재산이 많지 않더라도 유언장은 써놓는 게 현명하다. 자식들 간의 분쟁을 막을 수는 없지만 줄여줄 수는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파이낸셜뉴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이정숙 씨(59)는 지난 5월 보건소를 찾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걸 작성하기 위해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관심은 물론 있는지조차 몰랐던 이 씨가 보건소를 찾은 것은 한 달 전 병원에서 본 지인 가족들의 모습 때문이다. 중환자실에서 지인에 대한 연명치료를 계속할 것 인지를 두고 가족들의 의견이 갈렸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도록 해야 한다’는 쪽과 ‘고통을 줄여야 한다’는 쪽이 맞섰다. “돈 때문에 포기하냐”, “너만 생각하는 거 같냐. 평소에 잘하지”, 가족인가 싶을 정도로 막말이 오갔다.
결국 결정은 늦어졌고 그 시간은 모두에게 힘든 기억으로 남았다.
‘남겨진 가족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이 씨는 “빠르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미리 해 놓는게 나을 것 같다.
내가 결정을 해야 아이들이 고생하지 않을 것 같다
“고 설명했다.
평균 수명 83.7세, 건강 수명은 그보다 짧다
기대수명 및 건강수명 추이 /그래픽=장기현 기자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평균 기대수명은 83.70세
다. 그러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강수명(유병기간 제외 기대수명)은 2024년 기준으로 65.50세
로 기대수명보다 18.20세나 짧다.
아직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또는 얼마 전 현직에서 물러난 X세대에게 죽음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이 숫자를 알고 준비하는 것과 모른 채 맞이하는 것은 다르다.
나이가 들수록 결혼식장보다 장례식장을 찾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지인들이 세상을 떠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아예 관심을 갖지 않을 수는 없다.
어떻게 떠날 것인가: 장례 방식
서울 관악구에 사는 박재현 씨(가명·57)는 올해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는 장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두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처음 상을 치르는 3형제의 갈등이 시작됐다. 화장이냐 매장이냐, 납골당이냐 수목장이냐, 빈소는 며칠로 할 것이냐, 장례 물품은 어떻게 할 것이냐 등. 아버지가 없는 장례식장에서 형제끼리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화장률은 92.9%다. 노인들이 선호하는 장사 방식은 ‘화장 후 납골당’이 38.0%로 가장 높고 ‘화장 후 자연장’ 23.1%, 매장 6.1% 순이다. 그러나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비율도 19.6%에 달한다.
결혼식은 본인이 직접 계획한다. 장례식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직접 말해두지 않으면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떠날 수 없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전장례의향서’
라는 것도 있다. 작성자가 자신의
사후 부고 범위, 장례 형식, 화장·매장 등의 장례 방식과 장소 등 당부 사항을 미리 적어 놓는 일종의 유언장
이다. 단,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
고통스럽게 떠나지 않을 권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이정숙 씨가 보건소를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본인이 결정을 해야 가족들이 편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는 19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임종 과정에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같은 연명 의료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 미리 본인의 의사를 문서로 남겨두는 것이다.
비용은 없다.
가까운 보건소나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기관을 방문해 신분증을 지참하고 작성
하면 된다.
등록기관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lst.go.kr)에서 찾을 수 있다. 작성 후 변경이나 철회도 언제든 가능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의 가장 큰 이유는 남겨진 가족들을 위한 것
이다.
인터넷 한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지인이 3개월 동안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3개월을 거의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있던 모습을 보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야겠다 싶었다.’
노인의 연명치료에 대한 생각 /그래픽=정기현 기자
이미 연명치료에 대한 반대 의견은 압도적이다. 보건복지부 2024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 중 연명치료에 매우 반대 비율이 46.1%, 반대가 38.0%로 84.1%가 부정적 입장이다.
실제 작성은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2020년 약 80만명이던 작성자는 2025년 8월 기준 300만명을 넘어섰다. 5년 만에 세 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작성 문턱은 앞으로 더 낮아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2일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를 열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온라인으로도 작성·등록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정비를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는 지정 등록기관을 직접 방문해야만 작성이 가능하다.
남겨지는 사람들을 위한 편지: 유언장
유언장
, 뭔가 거창하다. 재산이 많아야 남겨줄 게 있어야 유언장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다.
재산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써야 한다.
유언장이 없으면 사망 즉시 민법 법정상속분대로 나뉜다. 배우자와 자녀가 있으면 배우자가 1.5, 자녀들이 각 1의 비율이다. 부모가 생전에 ‘큰아이한테 집을 줘라’고 말해둔들 법적으로는 아무 효력이 없다.
서울 마포에 사는 정명희 씨(가명·61)는 2년 전 공증사무소를 찾았다. 재산은 소형 아파트 한 채와 적금 7000만원. 두 딸에게 반씩 나누되 집은 큰딸에게 조금 더 가도록 했다. 큰딸이 결혼하지 않고 10년 가까이 곁에서 함께 살았기 때문이다.
정 씨가 유언장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숫자가 아니었다. ‘왜 이렇게 나누는지’ 이유를 설명한 문장이었다. “언니가 이만큼 희생했으니 이렇게 나누는 것이 공평하다고 써뒀어요. 둘째가 나중에 읽고 수긍해줄 거라고 믿어요.”
유언장의 법적 효력이 가장 강한 방식은 공정증서 유언
이다. 공증인 앞에서 증인 2명이 참여한 가운데 유언 내용을 직접 말하고 공증인이 기록·낭독·확인하는 절차다. 사후 법원 검인 절차 없이 즉시 효력이 발휘된다. 비용은 재산 규모에 따라 다르며 관할 공증사무소에서 사전 확인이 가능하다.
유언장은 분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도구다. 그리고 이유를 남긴 유언장은 줄이는 힘이 훨씬 크다. 유언장은 살아있는 동안 언제든 바꿀 수 있다. 나중에 쓴 것이 앞선 것보다 우선한다.
비밀번호 없이 떠나면 통장도 못 찾는다: 디지털 정리
그리고
비밀번호.
가장 많이 빠뜨리는 항목이다.
사망 이후 가족이 가장 먼저 막히는 것이
금융 계정이다. 어느 은행에 계좌가 있는지, 증권사 계좌는 어디인지, 보험은 몇 개인지.
가족은 금융감독원의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 서비스’를 통해 전체 금융자산을 조회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과 서류가 든다.
준비해둬야 할 것들이 있다.
주거래 은행과 계좌번호, 증권·보험 계약 목록, 카드 및 자동이체 내역이다. 비밀번호 자체를 남기기 부담스럽다면 ‘비밀번호는 000 안에 있다’는 식으로 위치만 알려두는 것도 방법이다.
SNS 계정도 정리 대상
이다. 사망 후 방치된 SNS는 도용되거나 지인들에게 불필요한 혼란을 준다. 페이스북은 사전에 기념계정 관리자를 지정할 수 있고, 인스타그램은 사후 유족 요청으로 전환·삭제된다.
카카오계정은 사망 후 가족이 탈퇴를 요청
할 수 있다.
잘 헤어지는 것도 준비가 필요하다
이정숙 씨는 보건소에서 나오면서 생각했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잘 헤어지기 위한 준비다. 그리고 잘 헤어진다는 것은 내가 사라진 자리에 혼란 대신 마음이 남는 것이다. 남겨진 가족이 대신 결정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게 준비의 전부다.
잘 헤어지기 위해 준비해야 할 4가지
△장례 방식 결정:
내 마지막 모습은 내가 정한다(화장, 안치 장소, 빈소 규모).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가족에게 ‘결정의 짐’을 지우지 않는다(무료, 신분증 지참 방문).
△이유가 있는 유언장
: 숫자는 물론 ‘왜’도 남겨 가족 간의 갈등을 방지한다.
△디지털 유산 정리
: 금융 계정 목록과 SNS 계정 처리 방식을 미리 메모해둔다.
‘은퇴=퇴장’이라는 낡은 공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평균수명 83세 시대, X세대가 본격적인 은퇴를 맞이하면서 기존의 은퇴 개념 자체가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담은
[은퇴자 X의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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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