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은 집에 묶이고 연금은 부족…은퇴 뒤 20년 넘는 ‘소득 공백’
주된 일자리에서 퇴사하는 나이는 평균 52.9세지만, 근로를 희망하는 나이는 73.4세라는 통계가 있다. 일을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때문이다. 국민 절반 이상이 연금을 받고 있지만, 이 것만으로 노후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파이낸셜뉴스]
일자리, 현금 흐름(연금), 건강
. 이미 은퇴를 한 사람은 물론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다. 은퇴를 하더라고 일을 계속 하고 싶고 여유롭지는 않더라도 생활은 할 수 있는 자금이 필요하고 또 가족과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낼 수 있는 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욕심이다.
한국에서 은퇴는 일을 완전히 그만두는 시점이 아니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와 더 불안정한 소득으로 이동하는 시점에 가깝다.
73.4세까지 일하고 싶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해 8월 발표한 ‘2025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를 보면 55~79세 취업 경험자가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일한 기간은 평균 17년 7개월이었다. 그 일자리를 그만둘 당시 평균 연령은 52.9세였다.
법정 정년인 60세보다 7년 이상 이르다. 1969년 이후 출생자의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인 65세와 비교하면 12년가량의 차이가 난다.
모두 정년을 채우고 나온 것도 아니다.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둔 이유는 사업 부진·조업 중단·휴업·폐업이 25.0%로 가장 많았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가 22.4%,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가 14.7%였다.
그러나 주된 일자리에서 나온 뒤에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같은 조사에서
55~79세의 69.4%는 앞으로도 일하고 싶다
고 답했
다.
희망하는 근로 연령은 평균 73.4세
였
다.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였다. 응답자의 54.4%가 이를 꼽았다.
52.9세에 주된 직장을 떠나 73.4세까지 일하고 싶어 한다.
두 숫자 사이에는 20.5년이 놓여 있다.
/생성형 AI 제미나이
한국에서 말하는 은퇴는 직장생활의 종료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일자리에서 나온 뒤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긴 과정이다.
같은 조사에서 2025년 5월 55~79세 경제활동인구는 1001만명으로 2005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 1000만명을 넘어섰다. 경제활동참가율은 60.9%, 고용률은 59.5%로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건강하게 오래 일하는 사람이 늘어난 결과이기도 하다. 다만 고령층의 높은 경제활동을 근로 의욕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일하고 싶다는 말과 일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다는 말이 섞여 있기 때문
이다.
일할 의사가 없어서가 아니다. 주된 일자리에서 나온 뒤 소득과 경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
연금은 있지만 생활비로는 부족하다
은퇴 후에도 일을 계속하려는 이유는 현금흐름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2025년 5월 기준 55~79세 가운데 지난 1년 동안 연금을 받은 사람은 51.7%였다. 이들이 받은
연금은 월평균 86만원
이었다. 여기에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개인연금 등 공·사적 연금이 포함된다.
연금을 받는 사람은 늘었지만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 10차 부가조사에서 50세 이상이 생각하는 개인 기준 적정 노후생활비는 월 197만6000원이었다. 최소 생활비도 139만2000원이었다.
부부 기준으로는 적정 생활비가 298만1000원, 최소 생활비가 216만6000원
이었다. 2024년 전국 50세 이상 가구원과 배우자 839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통계의 조사 대상과 연금 범위가 달라 차액을 그대로 부족액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연금만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노후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방향은 분명하다.
월평균 연금액 86만원은 개인 기준 최소 생활비에도 50만원 이상 모자란다. 적정 생활비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부족한 돈은 근로소득과 퇴직연금, 개인연금, 예금 등에서 채워야 한다. 은퇴 이후에도 일을 계속하려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다.
한국 은퇴자의 문제는 자산이 전혀 없다는 데만 있지 않다. 가진 자산이 매달 생활비를 만들어주는 형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자료 국가데이터처·한국은행·금융감독원 /생성형 AI 제미나이
국가데이터처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공동 작성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5년 3월 말 기준
가구당 평균 자산은 5억6678만원
이었다. 이 가운데
금융자산은 1억3690만원, 실물자산은 4억2988만원
이었다. 전체 자산의 75.8%가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자산이었다. 자산의 4분의 3이 집과 같은 실물자산인 셈이다.
집은 노후의 중요한 안전판이다. 살 집이 있다는 것은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자산가치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집값이 5억원이라고 해서 매달 200만원의 생활비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집을 팔아 규모를 줄이거나, 임대를 놓거나, 주택연금 등을 활용해야 현금흐름으로 바뀐다. 집을 그대로 보유하면서 생활비까지 얻기는 어렵다.
평균의 함정도 있다.
같은 조사에서
전체 가구의 57.0%는 순자산이 3억원 미만
이었다. 평균 자산이 5억원을 넘는다고 해서 대다수 가구가 그 정도 자산을 가진 것은 아니다. 자산 상위 가구가 평균을 끌어올린다.
은퇴 후에는 자산 총액보다 매달 들어오는 돈이 중요하다. 부동산 5억원과 월 200만원이 나오는 연금은 장부상 가치가 비슷하더라도 은퇴자에게 전혀 다른 자산이다.
오래 살고 싶은데 건강은 먼저 흔들린다
일자리와 돈만 준비된다고 은퇴생활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고령층이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둔 이유 가운데 ‘건강이 좋지 않아서’가 22.4%를 차지했다. 사업 부진과 폐업 등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건강은 은퇴 이후의 문제가 아니라 은퇴 시점을 앞당기는 원인
이기도 하다.
몸이 좋지 않으면 예정했던 것보다 일찍 직장을 나와야 한다. 소득은 줄고 국민연금 가입 기간도 짧아질 수 있다. 재취업을 하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의 범위가 좁아진다.
건강 악화는 소득을 줄이는 동시에 지출을 늘린다.
국가데이터처 2025년 고령자통계를 보면 2023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530만6000원
이었다. 이 가운데 본인부담금은 125만2000원이었다. 모든 고령자가 매년 같은 돈을 쓴다는 뜻은 아니다. 건강 상태와 연령에 따라 의료비 차이는 크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의료와 돌봄 비용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간병이나 장기요양이 필요해지면 건강보험 진료비만으로는 전체 부담을 설명하기 어렵다.
기대여명도 길어지고 있다. 같은 통계에서 2023년 기준 65세의 기대여명은 21.5년이었다. 남자는 19.2년, 여자는 23.6년이었다.
65세까지 일하더라도 평균적으로 20년 넘는 시간이 남는다. 주된 일자리에서 나오는 평균 연령인 52.9세부터 계산하면 안정된 직장 밖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은 30년을 넘어설 수 있다.
단순히 오래 산다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건강하게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간보다 생활비와 의료비가 필요한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일자리와 돈, 건강은 필수
일자리와 현금흐름, 건강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건강해야 더 오래 일할 수 있다. 일을 계속하면 자산을 꺼내 쓰는 시기를 늦출 수 있다. 일정한 현금흐름이 있으면 건강 관리와 치료에 쓸 수 있는 여력도 커진다.
반대로 건강이 먼저 무너지면 일자리와 소득이 함께 흔들린다. 연금이 부족하면 몸이 좋지 않아도 일을 계속해야 한다. 집에 자산이 묶여 있으면 의료비나 생활비가 필요할 때 대응하기 어렵다.
셋 가운데 하나만 준비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많은 사람이 은퇴 준비를 자산 규모로 판단한다. 집이 얼마인지, 퇴직금이 얼마인지, 금융자산을 얼마나 모았는지를 먼저 계산한다.
그러나
은퇴 이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자산 총액만이 아니다.
몇 살까지 일할 수 있는지, 연금과 금융자산에서 매달 얼마가 들어오는지, 건강이 악화돼 일을 그만뒀을 때 얼마 동안 버틸 수 있는지가 더 중요
하다.
지나간 퇴직 시점과 연금 가입 기간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을 더 일할지, 가진 자산에서 매달 얼마를 만들지, 건강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은퇴 준비가 늦었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시간은 줄었지만 선택은 남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인생 2막’ 은퇴 후 삶에 대한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을 찾았던
[은퇴자 X의 설계]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은퇴 준비 쯤은 이미 마치신 분도, 아직 갈 길이 먼 분도
‘마음만은 평화로운 노후’
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email protected]
김기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