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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이 건물로 들어왔다"…자연을 보고 쉼을 얻는 카페 [커피와 공간 '끽(喫)']

[구로 ‘9로평상’ 이야기]

자연을 안으로 끌어들인 한옥…한옥을 자연으로 확장시킨 ‘평상’

부산 기장 웨이브온 등 평상 도입…이뎀 곽희수 대표의 시그니처

구로 ‘9로평상’ 맞은 편 수목원 풍경…평상에서 ‘쉼’을 느끼는 공간

‘평상’ 공간 언어로 확장…2024년 건축가협회상·서울시 건축상

9로평상 쉼과 함께 누리는 맛…전문가가 만든 커피·빵·초콜릿

서울 구로구 항동 ‘9로평상’은 자연을 끌어들인 ‘평상’을 카페 안으로 가져왔다./사진=이뎀건축사사무소 제공

오스만튀르크 시절엔 ‘현자들의 학교’, 17세기 영국에선 1페니 내고 논쟁적 대화에 참여하는 ‘페니대학’이라 불렸습니다. 오스트리아 신경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랑스 철학가 장 폴 사르트르는 글을 쓰고 피카소는 예술을 말하며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겐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커피’를 대전제로 사람들이 모이는 유형의 공간, 우리는 ‘카페’라 합니다.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누리는 ‘끽(喫)’의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끽(滿喫)합니다.

주말, 그 공간에서 ‘건축’ 한 잔 어떠신가요.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한국의 전통 가옥인 한옥은 자연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철학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한옥의 마루는 그 철학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마루와 연결된 방은 방문을 여는 순간 바람과 햇살이 들어온다.

평상(平床). 그저 나무로 만든 이 야외 가구는 자연을 끌어들인 마루를 밖으로 옮겨 놓으며 공간을 확장시켰다.

낮은 나무 마루를 앞 마당에 놓으면 가족과 이웃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됐다. 마을 어귀와 정자 근처 크고 오래된 정자목(亭子木) 아래 놓인 평상은 마을 사람들은 물론 외지인들까지 쉬어가는 공간이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상을 ‘움직이는 마루’라 불렀다. 자연과의 공존, 공동체적 소통의 공간으로 기억되는 바로 그 평상이 현대 건축, 그것도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 평상에 앉다

부산 기장의 카페 웨이브온은 지난 2018년 카카오T앱 ‘이동 경로로 본 전국 맛집’ 순위에서 3위에 올랐다. 카페 중에선 가장 높은 순위다. /그래픽=챗GPT, 자료=카카오모빌리티

지난 2018년에 공개된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에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내용이 있었다. ‘카카오T’ 앱이 2017년 9월부터 2018년 8월까지 1년간 수집한 이동 관련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 속 ‘이동 경로로 본 전국 맛집’ 순위 데이터였다.

음식점도 아닌 카페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부산 기장의 ‘웨이브온’이었다. 그저 커피 맛이 좋고 바다뷰여서 인기 있는게 아니었다. 색다른 형태의 건축 공간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였다.

바로 ‘평상’이었다. 덕분에 웨이브온은 하루 평균 3000명이 찾을 정도로 핫플레이스가 됐고, 인구 16만명인 기장군에 연간 90만명의 외부인을 유입시켰다.

이 평상을 건축에 도입한 사람은 이뎀건축사사무소 대표인 건축가 곽희수 소장이다. 웨이브온 이후 평상은 수원 광교의 르디투어, 기장의 코랄라니, 충남 아산의 알레프 등을 거치며 곽 대표의 건축적 시그니처로 발전했다.

그는 “평상은 가장 한국적인 공용 공간”이라며 “신발을 벗고 앉을 수도 있고 걸터앉을 수도 있으며 모르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도 있다. 독립적이면서도 개방적이고 사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특성을 동시에 가진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지난 2023년 서울 구로구 항동엔 대놓고 ‘평상’이라는 이름을 내건 카페가 문을 열었다. ‘9로평상’이란 이름의 이 카페는 전통 가구인 평상을 건물 전체의 공간 언어로 확장한 실험적 건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이듬해 제47회 한국건축가협회상, 제42회 서울특별시 건축상을 받았다.

자연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서울 구로구 항동 ‘9로평상’은 자연을 끌어들인 ‘평상’을 카페 안으로 가져왔다./사진=서윤경 기자

카페의 시작은 평상이 아니었다. 박찬일 9로평상 대표는 항동 공공주택지구 끝 자락에 카페를 세우기 위해 20여명의 건축가를 만났다. 이들에게 제시한 정보는 지번, 베이커리 카페, 연면적 등 단 세 가지 뿐이었다. 그 중 한 명이 곽 소장이었다.

현장에 온 곽 소장에게 도로 건너편 10만㎡ 규모의 서울시립 푸른수목원과 우측에 자리한 천왕산이 보였다.

박 대표는 “곽 소장은 대지를 잠깐 보고 두 시간 동안 푸른수목원을 걷더니 뜻밖의 제안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곽 소장은 “좋은 커피보다 더 강력한 자산은 창밖의 풍경이다. 카페는 쉬러 오는 공간이니 커피기계보다 멋진 전망을 보여 줘야 모두가 만족하는 건축”이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 항동 ‘9로평상’은 카페 안으로 자연을 가져왔다. 화장실 안에서도(왼쪽), 외부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자연을 마주한다./사진=서윤경 기자

“뉴욕 브라이언 파크 3배 면적의 정원을 바라본다는 자체만으로도 이 건축은 조망 중심으로 설계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후 박 대표는 웨이브온 등 곽 소장이 설계한 카페들을 방문하고 마음을 굳혔다.

건축주-건축가가 끌어온 풍경

서울 구로구 항동 ‘9로평상’은 경사로를 따라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층마다 배치된 창을 통해 자연을 볼 수 있다./사진=서윤경 기자

9로평상은 수목원과 천왕산의 풍경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가로로 길게 낸 창과 세로로 좁게 뚫린 창, 바깥 풍경을 액자처럼 끌어들이는 프레임 창이 층마다 배치됐다.

곽 소장은 이를 “풍경을 모으고 중첩시키는 건축”이라 말했다.

오르내리는 과정도 특별했다. 마치 골목길을 걷듯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거나 계단과 테라스, 복도와 평상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층마다 다른 창과 다른 시선, 다른 풍경을 마주했다.

서울 구로구 항동 ‘9로평상’은 자연을 끌어들인 ‘평상’을 카페 안으로 가져왔다. 3층과 4층을 이어주는 평상(위)과 루프톱에 배치된 평상. /사진=서윤경 기자

평상도 바로 그 풍경을 바라보는 방식에 쓰였다. 건물 안팎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배치됐다. 3층과 4층을 이어주는가 하면 4층 테라스와 루프톱의 공간을 연결하기도 했다.

위치한 곳에 따라 소재와 쓰임도 달리했다. 3층과 4층 사이에 설치된 대형 평상 스탠드는 공연장과 휴게 공간, 계단과 객석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다. 아기들이 누울 수 있도록 평상 바닥은 원목과 쿠션을 결합했다.

구로에 거주하는 최은정씨(가명·32)는 친정 어머니, 4개월 아들과 함께 9로평상을 찾았다. 아기는 쿠션 위 아기 담요에 편하게 누워 있었고 친정 어머니는 신발을 벗은 채 다리를 뻗고 있었다.

서울 구로구 항동 ‘9로평상’은 ‘평상’을 카페 안으로 가져왔다. 평상은 단순히 좌석의 기능 뿐 아니라 공연장 관람석이 되기도 하고 아기들이 편하게 노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2층 화장실엔 기저귀 교환대와 함께 다양한 아기 용품들이 구비돼 있다. /사진=서윤경 기자, 인스타그램 캡처

최씨는 “온라인에 아기들과 가기 좋은 곳이라는 내용을 보고 왔는데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거 같다.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에 물티슈, 예비 기저귀까지 있다”며 “2주 뒤 산후조리원 동기들과 함께 올 생각”이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4층 테라스와 루프톱엔 검은 화강암인 오석으로 만든 온돌 평상이 자리했다. 겨울철에도 이용하도록 바닥 난방 기능을 적용했다.

서울 구로구 항동 ‘9로평상’은 자연을 끌어들인 ‘평상’을 카페 안으로 가져왔다. 특히 1층 가로변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평상을 만들었다. /사진=서윤경 기자

특별한 공간에 특별한 평상도 있다. 1층 가로변에 설치한 평상은 마치 정자목 평상처럼 모두에게 열려 있다.

박 대표는 “산책을 하는 지역 주민부터 등산객까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가족들이 평상에 앉아 가져온 도시락을 먹고 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 건축주 박 대표의 결단도 중요했다. 곽 소장의 생각을 따라가는 데서 나아가 스스로 나서기도 했다. 2층 베이커리 쇼케이스와 일부 테이블에 사용한 스테인리스 상판은 일반적으로 쓰는 두께의 두배인 10㎜다. 평상 원목과 오석을 찾은 사람도 박 대표다. 오석을 구하려고 충남 보령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서울 구로구 항동 ‘9로평상’은 소재에도 신경을 썼다. 바테이블의 상부엔 10㎜ 두께의 스테인리스 상판(왼쪽)을 썼고 4층에서 루프톱으로 올라가는 평상 바닥은 충남 보령의 오석(오른쪽 위)을 썼다. 3~4층을 연결하는 평상도 두께감 있는 원목을 가져왔다. /사진=서윤경 기자

층을 올라가는 계단의 너비도 일반 카페보다 넓다. 덕분에 뻥 뚫린 느낌을 준다.

박 대표는 “공간을 고민하기 위해 과감하게 포기할 건 포기하고 부담할 건 부담하기로 했다. 계단을 좁히면 더 많은 테이블을 놓을 수 있지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간 안 의외의 풍경…커피·초콜릿 공장

서울 구로구 항동 ‘9로평상’은 풍경에 집중할 수 있도록 로스터는 유리벽 너머 공간을 분리한 곳에 넣었다. 건축가는 이를 ‘유리 속 유리’라는 개념이라 설명했다. /사진=이뎀건축사사무소 제공

풍경을 선택한 카페지만, 본질은 잊지 않았다. 바로 커피였다. 2층 입구로 들어 서면 진열된 빵 옆 특별한 공간이 보인다. 커피 생두를 볶는 로스팅 기계다.

20여 년 전부터 로스터기와 생두를 수입해 ‘커피 로스팅’ 개념을 대중화하는데 일조한 박 대표의 바램이 구현된 공간이었다. 커피가 맛있어 마니아들이 찾게 되는 바로 그런 카페였다.

대신 기계를 보여주는데 건축가는 색다른 개념, ‘유리 속의 유리’를 적용했다.

로스팅 설비는 유리 진공관처럼 별도의 유리 공간 안에 배치해 소음을 차단하면서도 방문한 사람들이 생산 과정을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진공관은 뻥뚫린 윗층까지 이어진다. 3층 평상 옆엔 바로 이 진공관을 둘러싸듯 바테이블이 놓여 있다.

서울 구로구 항동 ‘9로평상’은 풍경에 집중할 수 있도록 로스터는 유리벽 너머 공간을 분리한 곳에 넣었다. 건축가는 이를 ‘유리 속 유리’라는 개념이라 설명했다. /사진=이뎀건축사사무소 제공

4층으로 올라가면 또다른 공장이 나온다. 초콜릿 공장이다. 2층 두 대의 로스터 중 한 대는 커피 생두, 나머지 한 대는 카카오 생두를 볶는다. 4층은 로스터로 볶은 카카오로 초콜릿을 만든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건 테이블 배치다. ‘쉼’과 ‘풍경’을 보는데 집중하도록 의자는 바테이블을 제외하고 모두 공장을 등지게 뒀다.

맛이 궁금해진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9000원이라는 게 부담스러울까봐 늘 걱정”이라는 박 대표의 말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쓴 맛은 없고 커피 본연의 맛이 느껴진다. 여기에 커피 한 잔 마시면, 공짜로 한 잔을 더 마실 수 있다.

커피값보다 더 놀라운 건 빵 값이다. 제과 장인이 직접 반죽해 구운 빵인데도 동네 프랜차이즈 빵집과 비슷한 수준이다.

여자 친구와 함께 온 남주형씨(27)는 “점심도 먹고 공부도 하려고 왔다.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에 산딸기 바게트, 초콜릿 식빵까지 구매하는데 3만원도 안 들었다”며 “커피 두 잔을 공짜로 더 마실 수 있으니까 큰 부담 없다”고 전했다.

서울 구로구 항동 ‘9로평상’은 풍경에 집중할 수 있도록 ‘평상’을 가져오면서도 카페 본연의 역할도 했다. 20년 넘게 커피 사업을 해온 박찬일 대표는 로스팅한 원두로 커피를 내리고 제과기능장은 빵을 만든다. 최근엔 초콜릿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무첨가’ 초콜릿도 선보였다./사진=서윤경 기자

제대로 된 초콜릿 맛도 볼 수 있다. 박 대표는 카카오 생두를 볶아 초콜릿을 만드는 일명 ‘빈투바’ 개념을 9로평상에서 확장시키고 있다.

박 대표는 “커피는 생두를 볶고 갈아서 내리면 되는데 초콜릿은 더 복잡하다. 생두를 볶아 카카오닙스와 껍질을 분리해 분쇄한 뒤 카카오버터를 녹여 액상 형태로 바꾼다. 이후 질감과 맛을 살리기 위해 얇게 펴는 템퍼링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동안 우리는 카카오버터를 추출하고 남은 카카오파우더에 설탕, 팜유 등을 넣고 만든 초콜릿을 먹었다. 제대로된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카카오버터를 빼지 않은 카카오닙스와 설탕, 분유만으로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커피와 초콜릿의 유사성도 알려줬다.

박 대표는 “커피를 로스팅하면서 사람들은 원산지에 따라 커피맛의 차이를 알게 됐다”며 “초콜릿도 도미니카산은 바디감이 느껴지고 베네수엘라는 깊이 있는 풍미, 페루는 산뜻한 산미를 맛볼 수 있다.

그걸 사람들이 알게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사람들이 쉼을 얻고 이야기를 나누는 9로평상은 카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 역사를 듣기 위해 다음에 갈 곳은 유럽의 첫 카페로 알려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이다.

/이미지=챗GPT·이뎀건축사사무소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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